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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불빛 / 고임순

불빛 / 고임순

 

 

 

사람들은 대낮에도 불빛의 고마움을 모른다. 또 빛의 형체조차 상상을 못한다. 그러나 어두운 밤길을 더듬을 때 눈앞을 밝혀주는 한 줄기 불빛은 바로 구원으로 두 눈을 환하게 열어준다. 그리고 어둠 속에 부각되는 여러 가지 불빛의 모양과 색채도 분별할 수 있다.

인류 문명의 시원을 열어준 불,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바로 이 불의 사용이었다. 인류의 지혜는 돌과 돌, 나무와 나무의 마찰에서 반짝하는 섬광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 부싯돌의 불을 나무에 점화하여 횃불로 밤을 밝히기도 하고 차츰 기름을 이용하여 등잔불로 이어지며 때로 촛불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의 불빛은 전력이다. 이 전기의 고마움은 어찌 불빛뿐이랴. 우리가 애용하는 라디오, 텔레비전, 에어컨, 전화, 세탁기, 선풍기에 이르기까지 전력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의 문명의 이기를 움직이는 근원인 이 전력은 또 무슨 물품을 만드는 생산공장의 에너지가 되고 있다. 전력은 국가 경영에 없어서는 안될 기간산업의 중추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올 여름 전력 부족의 위기를 맞았다. 소득은 적으면서 전기를 흥청망청 소비했기 때문이다. 전력 성수기의 여름철 절전은 발등의 불로 떨어져 부랴부랴 에너지 절약운동을 펴기에 이른 것이다.

도심 상가의 밤의 네온사인도 규제하고 집집마다 에어컨과 선풍기 대신 부채 사용을 권장했다. 전력난 극복의 지름길은 바로 아껴 쓰는 지혜만이라는 것을 모두들에게 각성시켰다. 그래서 절전의 생활화로 익숙해진 우리의 눈은 너무나 현란한 불빛 앞에서는 늘 불안했다.

예술과 꽃의 도시 파리, 이번 여름 다녀온 파리의 여름밤은 온통 눈부신 불빛의 축제였다.

내 가슴을 불빛으로 하여 온통 뜨겁게 타오르게 했던 파리의 여름밤.

서쪽 하늘에 곱게 노을이 지는 어스름에 나는 낭만의 유람선을 타고 센 강을 미끄러져갔다. 상업문화 중심지인 이 도시의 한가운데를 휘어져 굽이 흐르는 센 강. 왼쪽은 상업지구이고, 오른쪽은 학문의 요람인 대학과 화랑이 즐비한 곳이라고 안내방송은 영어와 일어로 각기 살명해주고 있었다.

시원한 강바람을 마시며 바라보는 노틀담 사원이 이체로웠다. 도시의 건물은 대부분 가지런한 7층 정도여서 하늘이 넓게 보이는 파리. 서울의 4분의 1정도밖에 안되는 도시지만 고층건물이 없어서인지 밤하늘은 훤하게 트여있었다.

두 시간 남짓의 유람 끝에 선착장에 돌아오니 밤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자연의 정경을 뭉게버린 것은 휘황찬란한 불빛이었다. 여러 척의 유람선이 경쟁하듯 장식된 선박 둘레의 불빛으로 반사된 강물은 마치도 불바다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우뚝 밤하늘에 솟은 에펠 탑의 눈부신 불기둥, 프랑스혁명 백주년인 1889년에 세워졌다는 높이 307미터의 에펠 탑은 줄줄이 꼭대기가지 불빛의 보석옷을 걸친 파리의 여왕이었다. 그 아래 대낮처럼 환한 공원에는 탑 꼭대기까지 올라가 파리의 야경을 보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 풍요로운 불빛, 인간의 혈맥처럼 이어내려온 불빛이 스며 있는 도시. 그 불빛은 세월을 밝히며 이 땅에 위대한 예술을 낳게 했음인가. 하늘과 강만이 나눌 수 있는 파리의 비밀을 안고 센 강의 물결만이 말없이 출렁대고 있었다.

불야성의 도시, 불빛에 모여든 불나방처럼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은 불빛에 현혹되어 부유하고 있었다. 파리이기에 조금도 불안하지 않은 불빛을 나도 가슴 가득 담아본다. 이 풍부한 전력은 바로 이 나라의 국력임을 입증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루브르 미술관과 퐁피두 미술관 그리고 로댕 미술관에 줄을 서서 들어가면 한국어, 영어, 일분어, 중국어, 등 각기 자기나라 말로 설명하는 안내원 앞에 무더기로 모여 있는 사람들로 삑빽했다. 유명한 작품 앞에는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 언덕, 무명화가들이 그림을 늘어놓고 팔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는 거리는 마치도 재목 전날의 남대문 시장처럼 붐볐다. 파리 시민들은 모두 피서를 떠난 텅 빈 거리에서 각종 인종의 관광객들만이 부딪치니 마치도 한 도시에 세계를 축소해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과연 관광왕국다운 이 풍부한 관광자원, 이 외화수입으로 더욱 높은 국민소득의 나라. 그래서 이곳의 불빛은 더욱 강렬하게 불타 관광객을 사로잡는지 모른다. 불빛에 현혹되듯 작품에 빠져들었고 예술작품에 도취한 눈을 밤의 불빛은 더욱 환하게 열어주었다. 그래서 예술을 낳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민족임을 절실히 느꼈다.

그러나 파리의 불빛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그것은 하룻밤의 꿈에 지나지 않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를 반겨주는 나의 집 희미한 외등을 바라보며 현관문에 즐어서자 나는 비로소 현실과 부딪쳤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새생활 새질서 캠페인. 열띤 목소리는 한 집에 한 등 끄기운동을 실천하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전국 천만 가구에서 60촉 전등 하나씩만 소등하면 발전소 일기를 새로 짓는 효과와 건설비 5천억 원이 절감된다고.

지하자원도 없는 좁은 방에는 인구만 늘어나고 외국인에게 자랑할 문화유산도 없는 우리 나라. 고층건물과 자동차 홍수, 이러한 외형만이 나라 발전이 아니었다. 그저 아끼고 저축하는 길만이 우리의 살 길이며 국력을 키우는 길임을 이번 여행에서 절감했다.

외등과 거실의 전등을 끄고 안방에 앉아 태극선으로 바람을 일으키니 그지없이 내 마음이 가라앚았다. 가물가물 인정이 감도는 희미한 불빛. 그 불빛은 창호지문에 스며드는 지등(紙燈)처럼 오래 전 우리 선조들이 사랑한 불빛이 아니었던가. 번들거리지 않는 순박한 문화예술을 가꾸어온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스민 값진 유산이다.

아직도 아롱거리는 현란한 파리의 불빛을 조용히 밀어내며 가물거리는, 가난하지만 내 나라 내 집의 희미한 불빛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