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 박인희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기(旗)를 꽂고 산들, 무얼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얼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터
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
온 밤내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르는데…
가슴에 돌단을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다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보고 싶다는 단 한마디
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
언 듯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
쉽게 헤어져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늘을 돌아 떨어진 별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날
남이 뵈기 싫은 까닭이다
'수필세상 >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시]꽃 / 김춘수 (0) | 2010.02.11 |
---|---|
[명시]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0) | 2010.02.10 |
[명시]즐거운 편지 / 황동규 (0) | 2010.02.07 |
[명시]황활한 고백 / 이해인 (0) | 2010.02.05 |
[명시]꼭지/문인수 (0) | 2009.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