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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버리며 사는 나날 / 권남희

버리며 사는 나날 / 권남희 

 

 

낙엽을 몰고 오는 바람은 역시 낙엽 빛깔이다. 그런 울적한 낙엽 빛의 바람이 내게로 스며들어 가슴을 헤집을 때면 나는 빈 들에 선 나무가 된다. 가지 끝에 매달린 갈잎의 떨림으로 몸을 가눌 수가 없어진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갇힌 일상의 반복과 가져도 가져도 성 차지 않는 욕망으로 마음이 뒤흔들리는 날은 으레 그렇다. 그럴 때면 나는 버릇처럼 손때 묻은 지난날 소지품들을 끌어내 놓곤 소중하게 매만지기도 하고 속절없이 버리기도 하며 마음을 달래곤 한다. 한참 동안을 그러노라면 흐트러진 마음이 채곡채곡 개켜지기도 하고 곰삭은 감정의 찌꺼기들이 걸러지기도 하니까.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취할 것은 다부지게 끌어안을 줄 아는 현명, 그게 현대인의 지혜라던가……. 

 

사람은 항상 마음 한구석을 비워 두는 것이 좋다. 다소의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 물이 차면 넘치는 것처럼 가득하기만 바란다면 이내 기울어지는 것이다.  

 

채근담의 충고처럼 우리는 물질이나 정신에서나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있다. 무엇이든 자기 것으로만 채우려 함에 다함이란 있을 수 있을까. 원하던 것이 손에 들어와도 며칠이 못 가서 또 새로운 것에 욕심을 드러내는 우리의 일상임에랴. 미련과 애착으로 쓸모 없는 것에 매달려 되새김만 한다면 그 얼마나 탄력 잃은 일상이 되고 말 것인가.

 

그런 저런 까닭에서인지 나는 십여 년이나 모아 두었던 내 구두를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아마도 어머니 젖을 빨 때부터라고 생각해 본다. 내 것에 대한 소유의식이 싹트면서 나는 뭐든지 버리지 못하고 모아 두는 습성을 갖게 되었다. 그런 버릇은 예민한 신경 탓으로 약간 귀에 거슬리는 말만 들어도 가슴에 접어 두곤 하는 성격과 일맥상통하여 나를 더욱 내성적으로 만들었다.

 

책상서랍은 늘 껌 포장지나 사탕을 쌌던 비닐, 알록달록한 헝겊조각과 다 쓴 볼펜 등이 차 있었다. 소중하게 모아 두었던 그것들은 한 번도 무언가에 제대로 씌어진 적은 없다. 결국 먼지가 쌓인 채 달을 넘기고 해를 보낸 뒤 신선한 감각의 새로운 소지품에 밀려 버려지곤 했다.

 

구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삼 년 신다 보면 유행이 지나고 낡아서 새 구두를 사들이면서도 선뜻 버리지를 못했다. 구두를 신고 다닌 세월만큼의 가버린 내 젊음을 묶어 두기라도 할 듯 헌 구두를 간직해 두곤 했다. 쌓이는 먼지와 어둠 속에서 묵묵히 기다려 준 구두들이지만 한 번도 다시 햇빛을 본 일이 없다. 빛 바랜 구두에는 서로 다른 마음이 고집스레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도 헌 구두에는 습하게 웅크려 털어내지 못한 추억들이 담겨 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어머니 …” 윤동주의 시구처럼 구두하나 하나에도 별의 얼굴이 걸려 있다. 한쪽에 조심스럽게 놓여 있는 까만 구두는 처음으로 교단에 설 때의 떨림을 달래며 신중하게 골랐던 구두였다. 그 구두는 출근 시간 전 시아버님이 닦아 두어서 앞부리가 유리알처럼 빛났다. 현관 밑 디딤돌이 대리석이라 차갑다며 난로 옆에 두었다가 신게 하셨다. 만원버스를 타고 가며 구두를 밟히지 않으려고 애쓰던 기억이 새롭다.

 

뒷굽이 코르크로 된 슬리퍼 모양의 샌들도 눈에 띈다. 모양새가 새침하다. 처녀 선생인 줄 알고 호감을 보이던 남선생과 걷던 플라타너스 길이 햇살 아래 부서지고 있다. 목이 짧은 브라운 색 부츠는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눈이 유난히 많이 내린 겨울 시내에서 뒷굽 한쪽이 떨어져 수선할 곳을 찾느라고 남편에게 업혀 다니던 기억이 생생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구두가 있다. 남편의 대학축제 때 신고 갔던 구두다. 복고적이고 클래식한 분위기가 내 마음처럼 남아 있다.

 

모닥불과 솜사탕 그리고 잔디에 어우러져 피어 오른 청순한 젊음의 러브 로망이 살아 숨쉬는 듯하다. 슈베르트의 ‘숭어’처럼 생동감 있게 파닥거리면서…….

 

차마 버리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딸에게 나의 유물로 빨간 구두를 남겨 줄까도 생각했지만 부질없는 애착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언제까지나 내 소유의 공간만 채우고 넓히며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어느 한때 러브 로망이 깨뜨려졌다고 하늘이 무너진 양 고통스러워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상대방의 가슴에 번지는 황혼녘 허무를 내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지금이다. 이런 걸 마음의 여유라고 할는지. 참신했던 젊음이 빛 바래짐은 마음 아프지만 의연히 묻어 두고 싶다. 남편의 등에 업혀 다녔던 젊음의 러브 로망도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사는 삶이 더욱 아름답겠지.

 

아이들을 업고 내일로 활기차게 달리는 생활인으로서의 꿈이 소중할 것이다.

 

시간의 흐름 탓인지 아름다운 추억들이 담긴 구두를 버린다고 해서 내가 가진 순수를 잃게 되거나 마멸당하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이 선다. 그렇다면 과감히 버려야겠다. 가장 귀한 내일에 대한 꿈 하나를 간직하기 위해서라도 병적이니 집착과 이기적 아집일랑 아낌없이 버려야겠다.

 

물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는 이런 방법으로나마 일상의 한 모퉁이를 방황하는 사념들을 비워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