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다래 / 류영택
말다래를 바라본다. 말다래는 말을 탈 때 흙탕물이 발에 튀기지 않게 안장에 드리워진 제구다. 수천 년 세월의 수줍음인가 천마는 쉬이 모습을 들어 내지 않는다.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말다래 속의 그림, 분명 색각이 아닌데 푸른색과 붉은색을 구분 못해 쩔쩔매는 사람처럼 한동안 서 있을 뿐이다. 왜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 눈을 바짝 붙이고 있던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다시 응시한다. 안개에 가려진 사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듯 숨어 있던 천마의 모습이 어렴풋이 윤곽을 드러낸다.
백화수피(白樺樹皮) 천마도(天馬圖)가 그려진 채화 판은 자작나무껍질을 여러 겹 겹치고 맨 위에 고운 껍질로 누빈 후, 가장자리에 가죽을 덧대어 만든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중앙에는 흰색으로 천마가 그려져 있으며, 테두리는 흰색·붉은색·검정색의 덩굴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하늘을 날듯 꼬리를 세우고 달리는 모습, 다리 앞뒤에는 고리모양의 돌기가 나와 있고 혀를 내민듯한 입의 모습은 수천 리 길을, 아니 수천 년 세월을 달려왔고 앞으로도 쉼 없이 달려갈 것처럼 보인다. 언제부터 저 모습으로 달려 왔을까.
역사학자들은 천마총에 묻힌 주인공이 지증왕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럼, 지증왕이 살았던 그 시대는 어떠했을까. 당시 신라와 주변국의 실상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고구려가 만주의 일부분과 한반도의 북반부를 차지하고 중국의 강대한 세력과 서로 겨누어 나가고 있을 때 신라는 아직 힘이 없는 나라였다.
백제가 한강유역, 한반도의 심장부를 차지하고 북쪽의 강국 고구려와 대항하고 있을 때 신라는 혼자의 힘으로는 바다건너로부터 침입해오는 왜(일본)의 세력을 막아낼 수 없을 만큼 약소했었다.
육 세기에 들어 임금의 자리에 오른 지증왕은 나라의 이름을 신라라고 중외에 선포하고 그동안 써오던 마립간 대신 비로소 중국식의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다음 왕인 법흥왕 때에는 안으로는 체제가 갖추어지기 시작하였고 국가질서의 사상적인 기반으로서 불교를 공인하였다. 건원이라는 연호를 세워 대외적으로 국가의 체면을 세우고 밖으로는 더 많은 영토를 확장하게 되는데, 낙동강 하류의 본가야(김해)를 합쳤다. 다음 임금인 진흥왕 때에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으니 그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백제의 근초고왕에 비길만한 신라 대외발전사상의 위대한 임금이었다.
진흥왕은 한강유역을 차지하며 중국과 통할 수 있는 편리한 교통수단을 얻게 되었고, 동으로는 동해안으로 뻗어 올라가 함흥까지를 완전히 제압하고 남으로는 대가야(고령)를 쳐서 낙동강의 유역을 점령하는 일대의 위업을 달성했다. 오늘 날도 남아있는 네 개의 순수비는 그 기념물이다. 무수한 곤란을 무릅쓰고 안으로는 국가의 체제를 갖추어 가며 밖으로는 줄기차게 세를 확장하던 그 시대에 신라는 슬기롭고도 용감한 장군과 지방을 다스릴 정치가가 필요했다.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 세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던 그 시대, 세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셨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말다래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려면 당시 말을 탔던 사람을 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요즘도 섬나라 일본이 독도에 대해 심심찮게 헛소리를 할 때마다 부르는 노래, '지증왕 십삼 년 신라장군 이사부' 애국가요에도 나오지만 동 시대를 산 사람이 이사부(異斯夫)장군이다.
이사부는 왕족인 김 씨 집안사람이다. 신라 귀족인 진골의 몸에서 태어난 이사부는 그의 고조부 되는 이가 김 씨 왕권을 확립한 내물왕이었고, 그가 섬기던 법흥왕과는 몇 촌간 되는 형제반열이다. 그는 지증왕 법흥왕 그리고 진흥왕 삼대에 걸쳐서 활약한 당시의 대표적인 장군이다. 국가의 중심이 되는 진골의 몸으로 태어났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겠지만 이사부는 능히 그러한 시대의 요구에 응할 만한 인물이었었다. 그러면 이사부가 생을 누리던 시대는 어떠했으며 그 시대가 이사부에게 바라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이사부는 그 당시 귀족자제들이 그러했듯이 어렸을 때부터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을 배웠다. 훗날 변경 지방에서 군사 중책을 맡게 된 이사부는 부하들에게 말을 타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 있어서 말이란 현대전에 있어서의 탱크나 전투기 이상으로 중요한 전쟁무기였다. 조금 과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몽고의 칭기즈칸이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대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역시 초원에서 말을 타는 유목민이었다는 사실과 우연한 일치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지증왕 육년 이사부는 실직주(지금의 강원도 삼척의) 군주가 되었다. 당시에는 전쟁이 쉴 새 없이 계속되는 때였던 만큼 군인을 지방장관으로 임명할 필요가 있었다.
지증왕 십삼 년 이사부는 하슬라주(강릉)의 군주가 되었다. 하슬라는 고구려와 국경을 접하는 최전선이라 늘 문제가 발생하는 곳이었다. 신라 눌지왕 때에는 사냥을 하는 고구려 장군을 하슬라 성주가 죽인 일이 있어 이 일로 말미암아 고구려가 신라를 치려고 함으로 신라는 하는 수 없어 사죄를 하여 무사히 넘겼다고 한다. 이사부가 이렇게 문제가 많은 최전선의 군주로 임명되었다는 것은 그의 뛰어난 역량에 믿는바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라가 함흥평야까지 진출하는 기초가 이미 이때부터 다져졌을 것이다.
앞서 잠시 언급한 바 있지만, 이사부는 동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우산국(宇山國) 울릉도를 정복하여 신라의 영토로 편입하였다. 해상에서 멀리 떨어진 우산국은 외딴 섬이고 지리가 험한데다, 사람들 또한 사나운 파도와 싸워온 터라 여태껏 누구에게도 항복한 적이 없었다. 이사부는 그들을 항복시키기 위해 교묘한 전략을 수립하였다. 어리석고 사나운 사람들을 힘으로 제압하는 것보다 계교로 하는 편이 쉬울 것이란 생각에서다. 이에 이사부는 나무로 사자 상을 만들어 '만일 그대들이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들을 풀어서 물어 죽일 것이다.' 하고 위협을 해서 항복을 받아냈다.
이때부터 울릉도는 영원히 우리나라의 영토가 되었으니 그 공은 이사부에게 있는 것이다. 사자라는 동물은 우리나라에도 중국에도 없는 동물이다. 멀리 아프리카에 사는 이 맹수가 이미 신라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외국과의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 하고도 남으리라.
진흥왕 이년 이사부는 병부령이 되어 신라의 군사를 장악하게 되었고, 아울러 그는 신라의 국사를 편찬할 것을 주창하였다. 당시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백제에는 고흥(高興)박사가 편찬한 서기(書紀)라는 국사가 있었다. 홀로 후진국인 신라만이 역사책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국가의 체면에 관계되는 일이기도 하고 무어보다도 왕실의 권위를 위하여 필요한 일이었다. 이리하여 그는 진흥왕에게 '국사는 임금과 신하의 선악을 기록하여 자손만대에 보여서 그 잘못을 알리어주는 것이오니, 만일 국사를 편찬하지 않으면 후대에 무엇으로 지난날의 일을 알 수 있게 하오리까?' 하고 말하였다. 이에 진흥왕은 이 말을 옳게 여겨 거칠부(居柒夫)를 위시한 많은 문사들을 모아 국사편찬을 시켰던 것이다.
요컨대 이사부가 살았던 그 시기는 신라가 국가적으로 비약의 발전을 이룬 시기로, 밖으로는 동해안 지역의 경영, 우산국의 정복, 한강으로의 진출, 그리고 가야의 정벌 등 허다한 군사적인 활동이 있었으며 안으로는 국사를 편찬하는 천년신라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였다.
말다래에 그려진 천마는 과연 그 시대의 무엇이었을까? 고구려의 삼족오(三足烏)처럼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였을까. 대통령을 상징하는 상상속의 봉황 같은 존재였을까. 그도 아니면 '잘살아보세' 보다 나은 내일에의 꿈을 키우는,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근면, 자조, 협동 뜻을 새겼던 새마을 마크 같은 것이었을까.
독수리와 별과 닻, 전역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붉은 바탕에 노란색 부대 마크가 새겨진 깃발을 보면 피가 끓어오르다 못해 가슴이 찡해오는 내게 물어온다면,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 지칠 줄 모르는 천마의 기상처럼, 천마는 그 시대 전장에 나가는 신라 군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군기(軍旗)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나를 따르라!' 종횡무진 적진을 향해 말을 몰았던 천마총의 주인공이 생시처럼 말을 달리고 싶어 혹시 유언을 하지나 않았을까? 껴묻거리(부장품)에 '군기와 내가 썼던 말안장도 포함시켜 묻어라.' 오랜 세월을 지나옴에 군기는 삭아 없어지고, 백화수피(白樺樹皮) 방습효과가 좋은 자작나무 천마도만 남은 것은 아닌지. 말다래에 흙을 튀기며 적진을 향해 내달리는 천마의 말발굽 소리가 귀청을 울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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