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매기 장(醬) / 류영택
큰집 장독은 유독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난초가 그려져 있는 다른 독과 달리 붉은 독은 표면도 꺼칠꺼칠 했고 아무런 그림도 없었다. 하필이면 못생긴 독을 간장독으로 쓸까. 이쪽저쪽, 아래위를 쳐다봤지만 코흘리개 내 눈에 비친 장독은 밋밋하고 볼품없었다.
큰어머니는 음식솜씨가 좋았다. 물론 손맛이 좋아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은 그 맛의 비결은 간장 때문이라 생각했다. 큰집 장은 맛도 좋았지만 그 양이 변함이 없었다. 큰어머니는 할머니가 그래왔던 것처럼 묵은 장독에 장이 줄어든 만큼 햇 장을 채웠다.
햇살 좋은날, 장맛을 보던 큰어머니는 고개를 바짝 치켜든 채 서있는 내게, 너도 한 번 맛볼래? 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는 엄마소의 젖꼭지를 빠는 송아지모양 간장이 맺힌 손가락을 자그시 깨물며 쪽 빨아 당겼다. 까맣게 익은 꽈리가 탁하고 터지듯 달싹하면서도 짭짤한 장맛이 혀끝을 자극해왔다. 자꾸만 구미를 당기는 그 맛에 나는 혀를 날름거리며 입술을 훔쳤다.
삽짝을 들어서자 뚜껑을 열어놓은 간장독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따라 장독대에는 큰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저 속에 뭐가 들었기에 우리 집 장맛보다 좋은 걸까.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장독대로 다가갔다. 하지만 키가 닿지 않아 독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작은 항아리 위에 올라서서 양손으로 독 테두리를 붙들고 돋움 발을 했다. 여전히 키가 닿지 않았다. 양손으로 힘껏 몸을 끌어올려 독 테두리에 턱을 걸쳤다.
간장이 가득 담겨져 있는 독 안은 붉은색을 띠고 있는 겉모습과 달리 거멓게 보였다. 표면에 어른거리는 내 얼굴이 마치 어둠속에서 면경을 보는 것처럼 아득하게 보였다. 순간 겁이 났다.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몸이 빨려들어 갈 것만 같아 온몸이 오싹해져왔다. 겁에 질린 나는 천 길 낭떠러지 같은 디딤돌에 몸을 내려놓느라 두 발을 바동거리다말고 울음을 터뜨렸다. 얼마나 소리가 컸던지 집안 식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간장독에 대롱대롱 매달려 울고 있는 내 모습에 식구들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뭐한다고 들다 봤노!" 야단치는 어머니보다 훌쩍이고 있는 내 모습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는 큰어머니의 눈빛이 더 무서웠다.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일침을 주느라 무서운 표정을 지었겠지만, 어린 내 눈에 비친 큰어머니의 앙다문 얼굴 모습은 나보다 간장독을 더 염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이후 장독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지만, '장맛이 좋아 그렇다.'는 마음 사람들의 그 말은 큰어머니의 음식솜씨를 깎아내리려고 괜히 지어낸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어머니가 애지중지하는 장독은 여느 종갓집처럼 오랜 세월 전통을 이어온 되매기 장과 다르다. 처음 붉은 독을 사왔을 때는 장독대에 두지 않았다. 햇볕이 들지 않은 컴컴한 골방구석에 놓아두고 보리쌀을 넣어두거나, 그것도 아니면 농사일에 쓰일 잡다한 물건을 넣어두었다. 오랫동안 그렇게 써오던 붉은 독을 간장독으로 쓰게 된 것은 육이오가 나던 해부터였다.
피난길을 떠나기 전 큰어머니가 제일 먼저 챙긴 것이 식구들이 먹을 식량이었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었지만 혹시 모를 일이라며 보리쌀을 볶아 디딜방아에 찧어 미숫가루를 만들고, 골방에 들어가 양식이 될 만한 것은 다 챙겼다. 하지만 장독을 짊어지고 가기에는 여의치 않았다. 생각다 못한 큰어머니는 담장 아래 구덩이를 파서 골방에 있던 붉은 독을 땅속에 묻고 간장을 옮겨 부었다. 간장이 가득 든 독 위에 가마니를 깔고 흙을 덮었다. 행여 남의 눈에 띨세라 그 위에 나뭇짐을 올려놓았다.
피난길에서 돌아왔을 때 집안에는 남아난 게 아무 것도 없었다. 폭격에 집은 허물어지고 장독대에는 깨진 옹기만 널려있었다.
시누 여섯에 슬하의 자식들 그리고 우리가족, 온 식구가 긴긴 엄동설한을 그나마 반찬걱정 않고 날 수 있었던 건 간장이었다. 갱죽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멀건 시레기국에 보리밥을 말아 먹을 때면 큰어머니는 상위에다 간장 종지를 올려놓았다. 각자 입맛에 맞게 간을 맞추라는 것이었다. 그 후부터 큰어머니는 묵은 장은 붉은 독에, 햇 장은 새 독에 담갔다. 햇 장을 아끼느라 큰어머니가 묵은 장을 고집하면서부터 되매기 장이 된 것이다.
묵은 간장이 익어 단맛을 내기 시작할 쯤, 큰집도 대농 집안으로 변해있었다. 큰집의 재산이 늘어날수록 묵은 장독대를 바라보는 큰집식구들의 눈빛도 달라졌다. 가지런히 늘어선 옹기에는 좌르르 윤기가 흘렀고, 장독대 한곳에 턱하니 자리 잡고 있는 붉은 장독은 뭔지 모를 기운이 서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큰어머니는 집안이 발복한 것은 집터가 좋아 그런 게 아니라 장독대 터가 좋아 그런 것이라며 붉은 장독을 상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게 됐다.
근검절약, 할머니가 재산을 모았다면 집안을 일으킨 사람은 큰어머니다. 큰어머니는 자식들을 도회지에 보내 공부를 시켰다. 사촌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 집안에 큰일이 있거나 고비가 닥칠 때면 큰어머니는 장독대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빌고 있었다.
붉은 장독의 영험이 있어 그렇게 됐는지 사촌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큰어머니는 도시에 나가 공부하는 자식들에게 양식을 보내는 날이면 커다란 소주병에 묵은 간장을 담아 보냈다. 묵은 간장을 덜어낸 양만큼 붉은 독에는 햇 간장으로 되매기를 했다. 그 일은 수 십 년 동안 이어졌다.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게 부모마음이겠지만, 올망졸망 두레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던 자식들이 각자 둥지를 틀어 떠나자 장독대를 바라보던 큰어머니의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자식이 많다보면 그 중 한 사람은 고향집을 지키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촌들 중 어느 누구도 거기에 합당한 사람이 없었다. 하나 같이 '출세'를 한 것이다. 이율배반적이게도 큰어머니가 너른 집을 홀로 지키는 건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자식 잘되기를 너무 빌어 그렇게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막강산, 초저녁잠에서 깬 큰어머니는 긴긴 밤을 무슨 생각으로 지새웠을까. 반질반질 닦아놓은 자신의 손때가 묻은 세간들, 날마다 소 등짝 쓸어내리듯 행주질을 하던 옹기들, 긴 가뭄에 샘물이 마를지언정 결코 그 양이 줄지 않았던 묵은 장독, 한 자식이라도 집을 지켜주었으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 아쉬움에 한숨을 내려놓다가도, '시방 세월이 그런데 그렇다고 자식을 집으로 불러들일까.' 쓸쓸함을 달래기보다 장독 앞에 서서 자식들이 잘 되기만을 빌고 또 빌지 않았을까. 큰어머니는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
되매기 장, 커다란 장독에 간장 몇 종지 퍼낸다고 눈에 띠게 양이 주는 것은 아니다. 퍼낸 양만큼 햇 장을 섞는다고 맛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되매기 장은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자식에 대한 큰어머니의 사랑이며, 긴긴 세월 농익어 깊은 맛을 내는 것은 자식에게 쏟는 정성의 결실과도 같다.
가끔 고향에 내려 갈 때마다 이제 고인이 된 큰어머니를 대신해 내가 큰집 삽짝 앞을 기웃거린다. 하지만 나는 삽짝을 넘어서지 않는다. 그 집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대문 앞을 서성이며 옛 모습 그대로 장독대가 온전히 남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달싹하면서도 짭짤한 맛, 큰어머니의 손끝에 맺힌 되매기 장을 음미하듯 날름 혀끝으로 입술을 훔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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