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표 인사 / 전희숙
이른 아침인데도 공항 대합실에는 마중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도 그들 틈에 섞여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즈음 남편과 나는 호주에 머무르고 있었고, 아들은 방학이 되어서야 우리를 만나러 오는 길이었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풍선과 꽃, 인형 등을 안고 들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나도 아들 만날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다.
입국심사를 마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젊은 서양인 부부가 아이를 안고 나왔다. 그들은 아는 이를 발견했는지 함박꽃이 되었다. 마중 나온 이들이 그들의 얼굴을 감싸 안고 뺨에 쪽 소리까지 내며 뽀뽀했다. 아이도 번갈아 안기며 퍼붓는 뽀뽀 세례를 익숙하게 받고 있었다.
다음은 금발의 중년부부였다. 미처 줄을 빠져 나오기도 전에 지인들이 몰렸다. 탄성을 지르며 얼싸안더니 뺨을 비비고 뽀뽀를 했다. 뒷사람들은 걸음을 멈춘 채 그들의 인사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지만 싫은 기색이라곤 없었다.
곧 내 뒤에서 갈색머리 여자가 튀어나왔다. 두리번거리고 있는 키 큰 남자를 안고 입술과 뺨에 번갈아 키스를 했다. 연인인 듯한 두 사람은 걸으면서도 감격에 겨운 키스를 그칠 줄 몰랐다.
그즈음 꽃다발과 풍선을 안고 있던 무리에서도 환성이 터졌다. 새로운 젊은이들이 그들과 섞이더니 남자와 여자 구분 없이 서로 안고 뺨에 키스를 했다. 모두 행복한 얼굴이었다. 서양인들의 자신감은 저렇게 사랑을 많이 받아 다져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번에는 젊은 동양 여자가 또박또박 걸어 나왔다. 순간 호기심이 일었다. 동양인은 서양나라 공항에서 어떤 인사를 할까. 마중 나온 사람은 좀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동양 여자였다. 마주치자 인사말 한마디씩이 오가는가 싶더니 가방을 챙기는 척, 주차권을 찾는 척 딴청을 부리는 것이 보였다. 반갑기는 한 것인지, 마지못해 하는 인사인지 보는 이까지 심드렁해졌다.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표현에 서투르기도 하지만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형식을 너무 중시하다보니 마음이 빠지는 경우도 있다. 고유의 인사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작아진 옷처럼 불편하고 그렇다고 서양의 것을 따라하기에도 멋쩍다.
나는 어정쩡한 인사 대신 아들에게 사랑 넘치는 포옹을 해주리라 마음먹었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지고 나서도 한참이 흘렀다. 드디어 나의 시야에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동트는 해처럼 내 앞에서 점점 크고 뚜렷해졌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내 눈이 너무 빛나고 있음을 눈치 챘는지 아들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다가가 안으려 하자 큰 키를 더욱 늘였고, 내 뺨이 아들의 뺨은커녕 가슴에도 닿기 전에 빠져나갔다. 이해는 하지만 섭섭하기 그지없었다.
그날 공항을 나오며 나는 마음먹었다. 따끈따끈한 ‘사랑표 인사’ 하나 만들어 아들과 틈틈이 연습하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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