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을 품은 바다 / 김응숙
가슴에 벼랑을 품은 이는 동해바다로 갈 일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툭 끊어지고, 그 아스라한 끝점에 한 발을 디딘 사람, 하루와 하루의 틈 사이로 까마득한 바닥이 보이는 사람은 말이다. 가서 그 푸르고 푸른 물결 앞에 주저앉을 일이다. 한사코 몰려오는 파도가 당신을 적시도록 그저 자신을 내어줘 볼 일이다.
동해바다의 파도는 뿌리가 깊다. 심해에서 자라난 해초처럼 너울거리다 무릎을 세우며 달려 나와 포말을 터트린다. 터트리는 순간 물거룸으로 흩어지는 하얀 불꽃이다. 되돌이표로 가득한 악보라도 뿌리에 새겨져 있는 것일까. 소멸로 이어지는 끝없는 불꽃 너머로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가 하늘에 닿아 있다. 동해 바다가 푸른 것은 수심이 깊기 때문이다. 평균 수심이 1700m에 이른다. 하얀 해안선을 기준으로 지도를 반으로 접는다면, 태백준령이 족히 잠길만하다. 거꾸로 박혀 있던 금강, 설악, 태백의 산봉우리들을 해산하고서도 힘이 남았는지 바다의 맥박은 여전히 푸르다. 그러나 저만치 유난히 짙푸른 곳은 깊이 품었던 것들을 잃은 뒤에 생긴 심연이 아닐까. 어쩌면 동해바다 또한 나처럼 가슴에 벼랑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벼랑을 가슴에 품은 까닭은 벼랑을 마주보고 있어서이다. 돌아누운 남편의 등줄기가 태백준령만큼이나 높았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이건만, 그 준령에서 흘러내리는 서늘한 냉기에 매번 손을 움츠리곤 했다. 그의 등 너머에서 나 또한 삶의 중력에 한껏 웅크린 채 등을 보이며 모로 돌아누웠다. 등과 등 사이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벼랑이 가로 놓였다. 돌아누워서 나는 아득한 벼랑을 마주 보았다.
애초 재미로 시작한 적은 투자가 적잖은 수익을 몰고 온 것이 화근이었다. 평생 누구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남편이었다. 나이 스물이 되자마자 가난한 집안의 장남 아닌 장남 역할을 도맡아 하느라 여윳돈이라고는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저 한 달 성실히 일해서 한 달 생계를 꾸리는 생활이었다. 아내 자리를 차고 앉은 나 역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맏딸이었다.
빼곡한 살림을 낫 하나로 길을 내며 나아가듯 빠듯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겉으로는 꿋꿋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지치기도 했을 것이다. 곤고하기만 한 하루하루가 투기를 부추긴 탓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유형무형의 모든 자산이 주식에 투자되었다.
나는 겉으로는 반대하는 시늉을 했지만 내심으로는 한 탕을 바라마지 않았다. 투자금액이 커질수록 한 탕의 크기도 부풀어갔다. 남편도 가끔씩 기대의 눈빛을 던지는 나의 속내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눈빛이 불안으로 흔들리기 시작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남편이 투자한 종목의 그래프가 아래를 향해 내리 치닫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가까스로 멈춰선 그가 내게 쥐어준 것은 빈통장뿐이었다.
폭풍에 바닥까지 뒤집어진 바다가 포효하듯 나는 울부짖었다. 모든 것이 바위에 부딪힌 파도의 포말처럼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식당을 운영하느라 손에 물마를 새가 없었던 십여 년의 세월이, 혼기가 찬 딸아이를 염두에 두었던 얼마간의 결혼자금이, 노후에 비빌 언덕이라도 마련할 양이었던 최소한의 비상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폐허의 자리에 크고 작은 빚 덩이들이 들어앉았다.
확실한 공범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편을 벼랑 끝까지 몰아댔다.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이 간다지만, 가난한 사람이 망하면 하루의 지는 해 너머로 바닥이 보인다. 막상 벼랑 끝에 서니 누구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청할 곳이 없었다. 게다가 어리석었던 탐욕의 결과가 아닌가. 한없이 낮아져서 세상의 가장자리로 떠밀려가는 기분이었다.
바닷가는 지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다. 해발 0m, 저 높은 산봉우리에서 아래로만 흐르던 물줄기들도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곳이다. 바닷가는 지상의 맨 끝 가장자리이다. 뭍에 발을 두어야만 살 수 있는 종족들은 더 이상 디딜 곳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가장자리, 그곳에 동해바다가 누워있다.
철 지난 모래사장 저편의 바다색을 닮은 빈 소주병 하나가 비스듬히 묻혀 있다. 나처럼 낮은 곳을 찾아 흘러든 누군가가 여기서 속을 비우고 간 흔적이다. 나도 소주병처럼 모래에 엉덩이를 묻고 앉는다.
모래사장에는 지난 여름에 찍힌 수많은 발자국들이 하얗게 말라있다. 파도가 밀려와 아직도 뜨거운 기억으로 뒤척이고 있는 모래사장을 쉼 없이 다독거린다. 한동안 달래다가 그만둘 법도 한데, 한사코 앞으로만 달려오는 파도이다. 포기를 모르는 바다는 결코 등을 보이는 법이 없다.
모래사장을 적시던 파도가 서서히 차올라 내 발등을 적신다. 초라한 맨발을 어루만지며 연신 속삭여댄다. 등을 보이지 않는다면 벼랑은 사라진다고, 빈 소주병 같던 내 가슴에 동해의 푸른 바다가 들어앉은 듯 갑자기 먹먹해진다.
유구한 세월을 태백준령의 등을 바라본 동해바다일 터이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아득한 어느 때인가 산맥들이 그의 품을 박차고 뛰쳐나와 서쪽으로 달리다, 길게 등을 보이며 돌아누웠다. 산맥이 빠져나간 깊이만큼 가슴속에 벼랑이 들어섰을 게다. 한때는 시퍼런 숨을 토해내며 포효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 벼랑은 깊고 깊은 품이 되어 바다의 뭇 생명들을 품고 있다.
등을 바라보면서도 등을 보이지 않는 동해바다. 끝없이 푸른 손을 내밀어 괜찮다, 괜찮다 돌아누운 등줄기를 다독이며, 비록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마주볼 뜨거운 가슴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희망의 노래를 멈추지 않는 동해바다이다.
가슴에 품은 가파르고 위태로운 벼랑의 골짜기로 바다의 묵언이 뜨겁게 흘러든다. 서로의 가슴을 베며 시퍼렇게 날이 섰던 상처의 비늘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의 잔물결처럼 잦아든다. 나는 두 다리에 힘을 주며 일어선다. 이제는 돌아누운 당신을 바라보며 든든한 뒷배가 되어보리라. 등줄기 솟구쳐 다시 일어설 당신을 말없이 기다려보리라. 돌아서는 등 뒤로 푸른 손 마주치며 응원하는 동해바다의 손뼉소리가 파도소리가 되어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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