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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인고의 맛은 달다 / 박월수

인고의 맛은 달다 / 박월수

      

 

 

삼월에 먹는 음식 중에 '파강회'만큼 식욕을 돋우는 게 또 있을까. 겨우내 언 땅과 함께 제 몸도 얼었다가 설핏 따뜻한 기운이라도 비치면 녹기를 거듭한 움파의 맛은 달다. 날카로운 매운맛은 모두 버리고 순한 단맛만을 간직한 채 삼월이면 보드라운 새 잎을 피운다. 파장다리가 올라오기 전의 움파를 캐서 더운물에 살짝 데치고 찬물에 헹군 후 깡총하게 돌돌 말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잃었던 입맛이 일시에 되살아난다.

 

우리 지역의 곳곳을 찾아 그곳 촌로들의 삶을 전해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다. 획일화된 표준말을 강요받는 방송이 아니라 어딜 가든 고향 사투리가 툭툭 튀어나와 눈길을 끈다. 머슴처럼 차려 입은 투덕투덕한 얼굴의 사내와 때때옷을 입은 소녀가 시골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어르신들을 만나고 위무한다. 사내가 어깨에 두른 커다란 북을 '두둥' 소리 나게 울리면 소녀는 구성진 트로트 가락을 뽑아낸다. 신명이 난 할아버지는 덩실거리며 어깨춤을 추고 수줍음 타는 할머니는 박수를 치며 뜨덤뜨덤 노랫가락을 따라 부른다.

 

앉은뱅이 의자에 쭈그려 앉은 더벅머리 사내가 노부부의 손을 다정히 쥐어주며 우리 탯말로 소곤거릴 때 나는 괜히 눈물이 흐르곤 한다.

 

"아버지예, 지금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 번 해 본 적 없으시지예, 우리 어무니한테 요래 두 손 꼭 잡고 사랑한다꼬 함 해 보이소."

 

부끄러워서 말로는 못한다고 우기던 어르신이 할머니의 눈을 바라보며 평생토록 하지 못한 그 말을 할 때 어느듯 할머니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힌다.

 

지난 시절, 할아버지가 할머니 애 먹인 이야기를 털어놓으라고 조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섬주섬 흘러간 일을 주워섬긴다. 인물이 잘 생겨서 여자 문제로 속을 섞였거나 힘든 농사일과 아이들을 부인에게 떠맡긴 채 떠돌았다는 이야기. 욱하는 성미에 밥상을 엎지르거나 술병을 끼고 살아 속을 태우고 병으로 쓰러져 아내를 고생시키기도 했다는 이야기들이다.

 

애꿎은 세월을 살면서도 여러 대의 냉장고에 갖은 먹을거리들을 넣어 놓은 걸 보여줄 땐 주고 또 주어도 더 줄게 없나 돌아보는 게 부모 마음인 걸 다시금 느낀다. 디딜방아에 손가락을 찧어 잘라내야 했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오래도록 가슴이 먹먹했다. 어려운 살림에 칠남매를 키우던 할머니는 수술을 하면 한 해 동안 일을 할 수 없지만 잘라내면 한 달만 쉬어도 된다기에 그리 했단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 어디까지인지 감히 헤아리기도 힘들다.

 

시골로 이사 혼 후 조손가정을 자주 접한다. 부모가 헤어지는 바람에 할머니가 아이들을 돌보는 경우이다. 못살고 갈라선 사정이야 내 알 바 아니나 그들 때문에 힘든 할머니와 아이가 눈에 밟혀 따뜻한 봄볕마저 시다. 내가 아는 아이 하나는 어릴 적 또래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는 얘길 하며 귓볼이 빨개진다. 일찍부터 허망함의 깊이를 알아버렸을 그 아이의 슬픔이 내게도 옮아와 갈비뼈 아래가 뻐근하다. 지금은 씩씩한 청소년이 되었지만 퍼렇게 멍든 아이를 지켜봐야 했을 그 아이의 할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또 입맛이 씁쓰레하다.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풍파는 있게 마련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영원히 바람이 멈추지 않거나 삼백예순다섯 날을 높은 파도가 치는 곳은 없다. 언제 건 움파의 속처럼 봄물들 날은 돌아온다. 바람 불고 파도치는 날은 내 인생에 겨울이려니 생각하면 어떨까. 둘러보면 나보다 더 혹독한 겨울 가운데서 맨몸으로 떠는 이도 숱하게 많은 게 세상살이다.

 

이른 봄의 파밭에서 삼동의 매운 기억을 버리고 달큼하게 기지개 켜는 움파를 본다. 질박하게 살아온 우리의 '어무이'들이 거기 서 계시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