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꽃에 눈을 더 준다 / 박양근
일 년 사시사철을 가리지 않고 자연에서는 언제나 꽃이 핀다. 한여름의 염천과 폭우 속에서도 해바라기는 몸을 세우고 한겨울 눈발 속에서도 설중매는 하얀 꽃잎을 숙이지 않는다.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크든 작든 수많은 꽃이 제 자리에서 핀다. 그들은 피어나야 한다는 사실만 지킬 뿐, 예쁘고 아름답게 피어나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피어서, 피어나야 아름다운 것이다.
사막 벌판도 비어있지 않다. 황사가 휘몰아 다니는 황야에 생명이 없는 듯하지만, 그곳에도 꽃이 피어난다. 고개를 땅에 대고 자세히 살펴보면 맨눈에 뜨이지 않던 작은 꽃들이 지열을 이겨내며 피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을 삭막한 대지에 떨어뜨린 신의 장난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어쩌다 찾아오는 나그네에게 계속 걷고 싶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다. 아름답게 핀 것이 아니라 피어나서 고귀하고 거룩한 것이다.
모든 꽃은 오직 피는 일에만 열중한다. 다른 꽃이 더 아름다워도 시기하지 않고 자신이 못났다 하여도 화를 내지 않는다. 오직 피워 올려야 한다는 의지만으로 핀다. 그러기에 자연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의 눈길을 붙들고 식물학자들로부터 이름을 얻는다. 그가 이름을 얻는 이유는 오직 꽃이 아니라 자책만을 위하여 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어느 특정한 꽃이 아니라 꽃이라는 이름을 지닌 모든 꽃을 사랑한다.
어디 꽃만 그런가. 나무가 그러하며 돌이 그러하며 새들도 마찬가지다. 존재는 존재 자체로서 아름답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만 나누고 떼어낸다면 결국엔 아름다운 것 하나만 남을 것이다. 그 아름다움마저 이내 아름답지 않게 될 것이다. 단 하나의 존재는 존재로서 의미가 없다. 존재란 상대가 의식할 때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란 아름답게 글을 쓰려는 사람이 아니다. 글을 쓰기 때문에 아름다운 사람이다. 오직 글을 쓴다는 마음을 지키려 하므로 걸음이 아름답고 뒷모습도 거룩하다.
물론 세상에는 질적 저하가 보이는 글이 적지 않다. 문단에서 연륜을 중시하는 이유는 짧은 재주보다 글을 써온 이력에 의하여 글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종 함부로 남의 글을 폄훼하는 경우를 보고 듣는다. 문단 선배라면 먼저 남의 글을 존중하는 자세부터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남의 글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앞서야 할 것인데, 자신의 우월감을 과시하려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 사람들은 “문단의 말석”이라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여한 한다.
꽃들은 다른 꽃들에게 “넌 못난 꽃”이라고 비웃지 않는다. 묵묵히 제 모습 그대로 꽃을 피워갈 따름이다. 그런 꽃의 마음과 자세를 배우지 않으면 결코 아름다운 글 한 줄 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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