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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바람난 아내의 고백 / 신수옥

바람난 아내의 고백 / 신수옥


 

 

나는 지금 바람을 피우느라 정신이 없다. 늦바람이다. 남편은 나를 처음 만난 날 이후 40여 년간 여자라고는 하늘 아래 나 한 사람밖에 없는 줄 알고 살아왔고, 나 또한 단언컨대 이날까지 한눈 한 번 판 적이 없다. 오직 그 한 사람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변함없이 사랑하며 살아왔다. 그것은 우리 둘뿐 아니라 주변의 모두가 인정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조신하던 아내가 바람이 났으니 그이 마음이 오죽할까. 하지만 늦바람은 태풍만큼이나 강하게 나를 휘몰아간다. 내가 앞뒤 가리지 않고 정신없이 빠져드니 남편도 어쩔 수 없이 먼발치서 바라만 볼 뿐이다.

대낮에도 말할 것도 없고 밤에도 남편 곁에 누워 사랑해요. 고마워요.” 속삭여 가며 그이를 재워놓고 살그머니 이불을 빠져나와 그에게로 달려간다. 기쁨과 반가움으로 가슴을 설레며 그와 마주 않는다.

내가 왜 너를 진즉 만나지 못했을까. 조금만 젊어서 너를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그를 붙들고 매일 되풀이해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면 그는 늘 이렇게 대답한다. “이제라도 만났으니 다행이지. 늦게 만난 만큼 우리 더 열심히 사랑하자. 그럴 수 있지? 어서 들어와.”

나는 지체 없이 컴퓨터를 켜고 몇 번의 클릭을 거쳐 글쓰기 폴더를 연다. 때로는 시()를 때로는 수필을 펼쳐놓고 사랑의 대화를 이어간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는 심심하던 내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줄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해 무한한 애착을 갖게 해준다. 남편이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느라 나를 외롭게 해도 상관없다. 자식들이 바쁘다고 자주 안 찾아와도 전혀 서운치 않다. 오히려 자신들의 일을 열심히 하며 내게 관심 갖지 말고 그냥 나는 바람이나 피우며 살게 내버려 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나는 전과는 또 다른 행복 속에 살고 있다.

살아온 날에 비해 살아갈 날이 훨씬 적게 남은 이 나이의 내게, 사랑을 쏟아 부을 수 있는 무언가가 찾아왔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문학이 내게 오지 않았다면, 내가 문학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시간을 메우며 늙어가고 있을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한잠 자고 깬 남편이 내 방으로 온다. “당신, 웬만큼 하구려. 몸 생각도 해야지.”

문학이란 놈에게 마음을 빼앗긴 아내를 그래도 몸 상할까 염려해주는 저 착한 사람. 나는 돌아다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의 그 무엇이 남편만 할까. 나는 얼른 컴퓨터를 끄고 그를 따라가 곁에 눕는다. 남편의 지지를 받으며 문학과 애타는 사랑을 나누는 나는 지금 저녁놀이 아주 붉고 아름다운 황혼의 시간을 그이와 함께 걸어가고 있다. 이불 속에서 내 손을 꼭 잡아주는 남편의 손이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