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숨 소리 / 윤상기
휘영청 뜬 보름달이 창문 앞에 걸려 있는 밤이다. 책상 앞에 붓 한 자루와 한지韓紙를 올려놓았다.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갈며 묵묵히 앞에 펼쳐진 한지를 바라본다. 반상 위에 펼쳐진 흰 종이에 천지의 맑고 깊은 기운이 스며있는 것 같다.
벼루에 있는 농도 짙은 먹물에 붓을 담갔다. 적당히 먹물을 훑어낸 붓을 들고 접지하는 순간, 갑자기 한지가 존재를 송두리째 드러낸 사람처럼 느껴졌다. 종이는 온몸이 하얗게 내 마음속에 비쳐들면서 숨을 쉬고 있는 생물과 같다. 문득 먼 세상에 계신 아버지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아버지는 시골유생이었다. 어릴 때부터 익힌 한학과 서예를 즐기셨다. 어머니는 아버지 청년시절 일을 가끔 이야기해주셨다. 아버지는 스무 살 때, 농촌 일에 실증을 느끼고 서울로 가출하셨다고 했다. 서울 모 한의원에 취업해서 새로운 생을 개척하기 시작하셨다. 장남이 가족을 버리고 가출하자, 할아버지는 상심하여 몸져 누웠다 한다. 할아버지 병환 소식에 아버지는 서울 생활을 접고 일 년 만에 귀향하고 말았다. 운명으로부터 분리된 꿈의 소멸, 희망이 사라지는 현실 앞에서 아버지의 긴 방황은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농촌일을 거들어 보지 않고 매일 술친구들과 어울려 두루마기에 바람을 묻히고 지냈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주벽에 어머니의 앞치마는 한숨 진 얼룩이 마를 날이 없었다. 서른 살에 장손이 태어나고서야 마음을 잡고 다시 농촌 생활로 되돌아왔다 한다.
내 어린 시절, 아버지는 인근 마을 모정 현판이며 동네사람들 새로 지은 집, 살량上樑에 글을 써주었다. 마을 장례식 명정銘旌글씨는 늘 아버지의 몫이었다. 집에서 시간이 날 때면 붓을 잡았다. 나는 말뚝에 고삐 맨 송아지처럼 아버지 곁에서 먹을 갈아야 했다. 이미 내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골목길 양지바른 고샅에서 친구들이 제기 차고 신나게 팽이 치는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먹은 빨리 간다고 갈아지는 것이 아니다.' 급하게 갈수록 손에 묻고 먹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이놈'하며 조급한 마음으로 먹을 갈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먹물을 적당히 갈아 앞에 내 놓으면 항상 야단을 맞았다. 벼루에 갈아 논 먹물을 힐끔 쳐다본 아버지는, 단번에 먹물의 농도를 알아보았다.
"아직 멀었다. 먹물은 그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 녹아져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먹을 다 갈자, 아버지 곁에 앉으라 하였다. 아버지도 객석의 관중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내려쓰는 붓놀림을 보았다. 마분지馬糞紙에 내가 전혀 읽지 못하는 한문을 몇 번이고 연습하였다. 어느 정도 필력이 다듬어지자, 한지를 정성스럽게 펼치고 종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긴 호흡을 여러 번 하였다. 그때 아버지의 모습은 세상의 기를 전부 모으는 기인처럼 보였다. 몇 글자를 쓰고 나서 큰 소리로 '후유'하고 참았던 날숨을 토해냈다.
다음 장에서 획이 빗나가자. '아'하면서 쓰던 종이를 구겨버렸다. 아까운 한지는 그걸로 생을 다하며 상실의 아픔을 체험하고 있었다. 똑같은 글씨를 열두어 장을 쓰고 나서야 붓을 내려놓았다. 한 장 한 장 유심히 펼쳐보다 마음에 들지 않은 글씨를 여지없이 버렸다. 매번 남아 있는 것은 달랑 한두 장, 어느 때는 한 장도 남기지 않고 버렸다. 본바탕이 정확하지 않으면 아무리 날아갈 듯 쓴 글씨도 무용지물이었다.
어느 날, 책장 속에서 누렇게 바랜 서첩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아버지가 생전에 남겨 놓은 단 한 권의 책, 집안의 족보를 적어놓은 가승家乘이다. 족보를 펼치자, 세필細筆붓으로 쓴 콩알 같은 글씨들이 스멀스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나라면 도저히 붓으로 흉내낼 수 없는 작은 글씨들이 도열한 병정처럼 차렷 자세로 줄지어서 있다. 내림의 핏줄은 못 속인다 했던가. 아버지의 혼이 슬며시 나를 깨웠다. 어느 날, 나는 필연처럼 붓을 잡았다.
서예 기본인 'ㅣ, ㅡ'를 수만 번 그렸다.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입문한 서예는 붓을 들 때마다 매번 버거운 상대로 나를 괴롭혔다. 한 획을 내려 긋다가 한순간 호흡을 참지 못하고 숨을 쉬면 획은 여지없이 빗나가 버렸다. 나는 절대적으로 정지를 필요로 하는 하는, 한 순간을 참지 못하고, 어느새 숨을 쉬고 만다. 붓글시를 쓰면서 몇 번인가 접고 싶은 생각이 굴뚝의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참으로 서예란 가슴에서 얻어지는가. 손에서 얻어지는가. 처음에 어느 곳이 중심이고 어디가 주변인지 모든 체 헤매기만 하였다. 서예의 문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그 길은 아주 멀고 먼 길이었다.
아버지는 서예란 고난과 같은 가시밭길에서 어떻게 인내와 몰입을 승화시키며, 날숨을 극복했을까. 농촌에서 생의 쓰라리고, 서럽고, 응어리진 상처를 달래기 위해, 거친 숨결로 토해내는 분노로 붓을 잡았을까. 아니면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붓끝에 삭혔을까. 날숨은 복식호흡으로 이어지는 기氣이다. 기란 힘과 행함[力行]이다. 서예에서 기란 정지된 숨을 오래 참으로 붓 끝에 끝없이 변화하는 경지를 깨우친다는 말이다. 아버지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한 구절이 있다. 아버지가 즐겨 쓰시던 사자성어는 '광이불요光而不曜' - 빛은 있으나 고요히 숨긴다 - 다.
이런 달밤이면 빛을 숨기고 초야에 묻혀 생을 보내신 아버지의 날렵한 붓놀림이 잠자는 내 혼을 자꾸 일깨운다. 오늘도 묵향의 글밭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다. 글씨는 바로 조형적인 표현을 본질로 하여 시각적으로 느끼는 살아 있는 생명체여야 한다. 손끝의 풍경만 있는 글씨는 정신이 담기지 않는다. 숨을 억누르며 붓끝을 통해 눌러지는 힘, 빠르고 느림, 먹의 짙고 옅음, 짜임새의 안정을 위해 필선의 여백과 행간에 아낌없이 점, 획을 터트려본다. 한번 붓질로 이루어낸 묵선의 형상이 기묘하다. 바탕에 밴 먹물은 단순한 무채색의 검정이 아니라 다채로운 검은 색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완강한 침묵으로 절벽처럼 우뚝 선, 아버지의 '후유'하고 내뿜는 날숨소리가 허공에 울림이 되어 번지는 달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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