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말의 아름다움 / 김형규
옛날 우리 선조들은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내세웠다. 이는 사람의 됨됨이나 재능을 시험하여 관리를 선발하는 중요 척도로 첫째로 신체의 건강과 체격 용모 몸가짐, 둘째로 사람과의 대화능력과 말솜씨 언변, 셋째로 문장력과 문필, 넷째로 시비를 가릴 수 있는 올바른 판단력과 논리를 살핌으로써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였다. 과거에 급제해도 바로 등용되지 않았다. 임용되기 위해서는 성적도 성적이려니와 신언서판(身言書判)의 4가지를 두루 갖추어야 하고 이것들이 모두 갖추어지면 또한 덕행이 있어야 했다. 덕은 재주와 함께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재주는 노력과 함께 균형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신언서판에 다소의 결점이 있다고 해서 시험이나 임용에서 결격사유는 되지 않는다. 오직 시험성적만으로 가리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합리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품행과 인성을 고려하지 않음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시대의 변화와 함께 사회의 다양화, 개별화, 전문화, 세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에 있어서는 이러한 기준도 변화되어가고 있다.
그러면 왜 사람을 평가할 때 그 기준에 몸과 말을 먼저 들었을까?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몸이라고 믿는다. 우리의 몸이야 말로 인간성의 기본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궁극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몸은 내가 단지 소유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몸이 곧 내 자신이기 때문이다. 몸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고 아무것도 쓸 수가 없다. 몸이란 대단히 미묘한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이면서도 추상적이다. 그것은 살갗이며 머리카락이고 목소리며 느낌이고 감정이다. 그러기에 외형적인 아름다운 용모만이 아니라 내면적인 심상(心像)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몸에 해를 끼치는 것들이 수 없이 많다. 공해, 전쟁, 폭력, 범죄, 나쁜 주거 환경, 열악한 노동 환경, 교통 사고, 불량 식품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이러한 몸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자기 몸과 남의 몸을 존중할 줄 아는 태도다. 폭력은 그 자체로 인간성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살상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몸을 함부로 굴리거나 이성의 몸을 단순한 욕망의 대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 주위의 디지털 미디어를 한 번 살펴 보라. 만화 영화에서 온라인 게임에 이르기까지, 쏘고, 부수고, 때리고, 죽는 장면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폭력에 대해서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관용적이다. 인간성의 기반인 몸을 함부로 파괴하는 장면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서, 몸의 노출에 불과한 성 표현물에 대해서는 신경질적인 과민 반응을 보인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방대한 정보 중에서 외설물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음란도서와 전자 영상 매체인 영화에 훨씬 더 외설물이 많다. 음란물이 곧 바로 성폭력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성폭력의 원인은 단순히 성욕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폭력의 원인이 근육에 있지 않듯이, 그것은 체질화된 폭력이 성적으로 발산하는 것뿐이다. 만화 영화에서부터 코미디, 연속극, 영화, 비디오게임, 인터넷이 이르기까지 때리고 부수고 죽이고 죽는 장면 만큼은 이제 몰아내야 한다.
요즈음은 마음에 들지 않는 신체 부위를 고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대인관계·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나 취업을 대비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과거의 성형수술은 흉터, 문신 제거, 모발 이식 등이 주를 이뤘지만 지금은 쌍꺼풀 수술부터 코를 높이거나 주름 제거등까지 다양하다. 능력 본위의 가치관이 확립된 현대사회에서도 외모에 대한 판단 기준만 달라졌을뿐 그 중요성을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이어트나 성형수술은 외형적인 아름다움보다는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내딛는 첫 걸음이어야 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로 첫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말을 조심하고 아끼면서 품위가 있고 거칠지 않은 말로 자신의 뜻을 밝히라는 뜻이다. 설날 덕감도 남의 복을 빌어주는 미덕에서 비롯된다.
'혀 아래 도끼가 들어 있다'는 옛말 그대로 말의 힘은 무섭다. 사용하기에 따라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사람을 죽이는 무시무시한 무기도 된다. 혀는 칼이 아니어도 능히 사람을 벤다. 칼은 빼서 사람을 베지 않고 도로 칼집에 꽂을 수 있어도, 말은 한번 내 뱉으면 절대로 주워담을 수 없다. 당신의 입안에 있으면 말은 당신의 노예지만, 입밖에 나오면 당신의 주인이 된다.
말은 정신의 호흡이요, 사상의 옷이다. 말하는 사람은 조각하는 칼날과도 같다.
눌변이냐 달변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청산유수와 같은 말은 더더욱 아니다. 상대방과 때와 장소에 맞춰 간결하고 명확하게 구사하는게 참된 말솜씨다. 입을 열면 침묵보다 뛰어난 말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 게 낫다.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지적결정체며, 품격의 외적 표현이다. 꽃에만 향기가 있는게 아니라 말에도 향기가 있다. 기교나 임기응변에서 나오는 말은 비록 화려해 보여도 향기 없는 꽃이나 다름없다. 깊은 지혜를 갖고 있으면 있을수록 말은 간결해진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하는 말은 겨누지 않고 총을 쏘는 것과 같아 많은 사람이 다친다. 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사람이 다친다. 말을 한 사람의 신분이 높을수록 더욱 많은 사람이 다친다.
말에 관한 수많은 성현의 가르침을 종합해보면 으뜸은 당연히 '침묵은 금'으로 귀결된다. 그렇지만, 말을 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불가능하기에 '적게 말하기'와 '올바르게 말하기'가 참으로 아름다운 말솜씨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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