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에게 미안해 / 김덕림
연도 소리 구슬픈 어느 성당 장례식장. 줄 이은 초상으로 장례식장 방문이 잦은 요즈음이다. 환절기 탓인가. 일교차가 심해지면서 감기와 같은 환절기 질환에 쉽게 노출되어 체력이 약한 어르신들이 많이 세상을 떠나는 것 같다. 오늘 고인은 아흔을 넘긴 교우로 그다지 애석해할 형편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서의 이별은 우리 마음을 아리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연도 소리에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연도, 즉 위령기도는 천주교에서 세상을 떠난 교우들을 위해 바치는 기도로 성경의 시편을 가사로 하여 우리나라의 고유한 음률과 곡으로 양편이 서로 화답하며 부른다. 고인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노랫소리인 것이다. 신자가 선종을 하면 상가에 가서 기도해 주는 천주교의 아름다운 전통이기도 한다. 그 좋은 전통을 한동안 외면한 적이 있었다. 10년 전 친정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이다. 그때는 상가에 가면 기도보다는 울음이 먼저 터졌기에 연도를 꺼리게 된 것이다.
어제 친정어머니를 만났다. 책장에서 책을 찾다가 책 뒤쪽에 숨어계셨던 어머니를 보았던 것이다. 충북 음성 어머니의 야외 납골당에 걸었던 빛바랜 사진이었다. 어느 시인이 “고인의 모습, 냄새, 소리, 감촉들이 불현 듯 되살아나곤 할 때, 죽음은 다시 현재적 사건이 된다.”고 했다. 뜨거운 태양이 형체를 거의 다 지워버린 어머니의 모습이지만 나에게는 생시의 어머니같이 또렷하게 다가왔으니 시인의 ‘현재적 사건’이란 말이 실감이 되었다.
죽음에서 친정어머니를 소환해 놓고 나는 나의 죽음을 생각했다. 흔히 웰빙이라 불리는 참살이와 더불어 현대사회의 화두가 된 웰다잉을 말이다. 여기저기 웰다잉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넘쳐난다. 한마디로 잘 죽고 싶은 것이다. 아름답고 행복하게 죽고 싶은 것이 요즈음 너나없이 나이 먹어감에 따른 소원이다.
2004년 첫 수필집 『목련, 별이 되다』의 작품 「목련, 별이 되다」에서 ‘여고 시절 석굴암에 이르는 산길을 따라 피어 있던 산 목련이 하늘의 별처럼 와르르 내 가슴으로 떨어져 내리던 기억’이 있었다고 했다. ‘그 목련 별은 30대 중반이 된 이즈음에도 목련이 필 때쯤에 어김없이 떠올라 나의 가슴을 환히 비춰주고 일상의 뜨락에 와 반짝이는 별이 된다.’고 썼었다. 그러면서 정원이 있는 집을 지으면 목련나무를 많이 심겠다고 약속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충주에 마당 있는 집을 지었고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목련을 심지 못했다. 아니, 심지 않았다. 충주 조정지댐 입구에 서 있던 목련나무, 봄바람을 휘감은 나무는 도도했으며 가지 끝마다 피워 올린 꽃들은 봄 햇살과 더불어 황홀했다. 그 눈부신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던 시선이 나무를 내려와 머문 곳은 땅에 떨어진 목련꽃잎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꺼멓게 흉물스런 모습으로 변해가는 꽃잎은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모든 꽃들이 한창때의 아름다움에 비해 지는 모습이 어찌 아름다울 수가 있으랴마는 유독 목련꽃의 뒷모습은 볼수록 실망스럽다.
젊은 날 내 눈에는 지는 목련은 안중에도 없었다. 아니 떨어진 목련의 추한 모습은 상상을 못했었다고나 할까. 아니 분명히 존재했었으나 보이지 않았던 것이리라. 18살 여고생의 낭만과 30대 중반의 혈기왕성한 젊음과 이제 환갑을 맞이한 중년의 현실은 이렇게 하늘과 땅의 차이로 멀어져 왔단 말인가.
목련에게 미안하다. 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고 마음이 바뀐 것이 미안하다. 아니 이제는 아름답게 지고 싶은 간절함의 핑계가 된 목련이게 더욱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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