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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갇힌 음표 / 이혜경

갇힌 음표 / 이혜경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남편과 마주 앉으니 처음인 듯 새롭다. 데이트를 하면서는 가끔 노래방을 찾았지만 결혼 후에는 단 둘이 갈 기회가 없었다. 모처럼 갖는 오붓한 시간이라 설레기도 하지만 남편과 노래방에 와서 좋은 이유는 따로 있다. 눈치 보지 않고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어서다.

지긋한 연배의 사람들과 노래방에 오면 참기름 바른 트로트 판이라 마이크를 들기 어렵다. 손바닥이 따갑도록 박수를 쳐 봐도 도무지 감정이 살지 않는다. 아직은 구성진 멜로디에 몸이 저절로 녹아들만큼 연륜이 쌓이지 못한 탓이다. 반대로 어린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속사포 랩이라도 읊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에 마이크를 피하게 된다. 빠른 템포의 노래는 취향이 아닐뿐더러 시종일관 뻣뻣하게 서서 노래를 부르는 나에게 댄스곡은 빌려 입은 옷처럼 어색하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는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어중간한 템포의 곡이다. 한때는 신곡이었으나 어느덧 세월에 밀려 두꺼운 책자 한가운데 파묻힌 구닥다리 신세가 됐다. 하지만 비슷한 시간을 걸어온 남편 앞에서는 묵은내 나는 노래도 추억을 나누는 공유기가 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익숙한 전주가 깔리자 자신있게 마이크를 집어 든다.

너무 오래 쉰 탓일까. 첫 박자를 놓치며 시작부터 노래가 삐걱거린다. 자타가 공인하는 몸치이긴 해도 음정은 제법 맞추는 편인데 음이 쳐지다 못해 주르륵 흘러내린다. 클라이맥스까지 한참 남았는데 벌써 목소리가 여러 겹으로 갈라져 쇳소리가 난다. 조금 빠른 노래를 부를 때는 목까지 숨이 차서 핏대가 도드라진다. 아무리 공백이 길었다고는 하지만 이토록 망가졌을 줄이야.

학창 시절, 합창부에서 노래를 했던 적이 있다. 새 악보를 받을 때마다 낯선 음표의 배열 앞에서 묘한 설렘을 느꼈다. 새로운 과제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울퉁불퉁하게 튀던 노래가 부드럽게 다듬어지는 과정은 즐거운 작업이었다. 합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박자와 음정이다. ​튀는 목소리를 내거나 박자를 놓치지 않도록 늘 규칙대로, 정해진 박자대로 충실하게 따르려 노력했다. 노래뿐 아니라 학교생활에서도 오선지를 벗어나지 않고 정해진 악보대로 규칙을 따르는 학생이었다.

아가씨 때는 여럿이 소리를 맞추며 하는 합창보다 혼자 부르는 노래가 더 좋았다. 학생이라는 꼬리표를 뗀 순간부터 정해진 음정과 박자를 따르는 것이 따분하게 여겨졌다. ​나만의 소리와 박자로 멋을 부리며 돋보이고 싶었다. 유행가 가사들은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이 하고픈 말을 대신해주었다. 사랑에 빠졌을 때도, 사랑이 끝났을 때도 설렘과 슬픔을 실은 노래로 가슴을 토닥였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또 다른 신곡에 금방 밀려나는 유행가처럼 화려한 청춘의 시간은 짧게 끝나버렸다.

결혼이라는 악보를 받아든 뒤부터는 내 마음대로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시간에 맞춰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시계 볼 틈도 없이 하루가 지나갔고 도돌이표처럼 똑같은 일상이 되풀이되곤 했다. 반복되는 생활이 지겹다고 느낄 새도 없이 아내와 엄마로서의 연주에만 몰두했다. 오선지에 갇혀 그저 남들이 살아가는 음표와 박자에 비슷하게 맞추어 똑같은 음에 머물려 지내왔다. ​

품에 안고 키우던 아이가 훌쩍 자라면서 똑같은 악보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마침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터라 사이사이 쉼표가 생겼다. 정해진 오선지에서 벗어날 순 없더라도 더러 박자를 바꾸기도 하고 군데군데 쉼표를 그려 넣고 싶었다. 생활에 쫓겨 밀쳐두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도 나만의 음표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살림밖에 모르던 주부가 새롭게 일을 벌이는 것은 모험에 가까웠다. 늦게 시작한 공부가 아무리 중요해도 가족이 우선순위라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원칙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을 거쳐야 하는 크고 작은 집안 일과 아이들 챙기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짬을 내기란 쉽지 않았다. 괜찮다가도 내가 나갈 일이 생기면 아프다고 하는 아이와 가정의 울타리에 충실하길 원하는 남편의 눈치를 살피느라 몸과 마음이 두 배로 바빠졌다.

생활에 떠밀려 지내느라 자각하지 못했지만 내 안에는 작은 불씨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스스로 원해서 시작한 공부라 그런지 몸과 마음이 바빠져도 힘든 줄 몰랐다. 과제를 하느라 새벽까지 깨어 있을 때도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설렘에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의욕의 속도만큼 따라주지 않는 굳은 머리 때문에 가끔 속상할 때도 있었지만 그 또한 행복한 고민으로 받아들이니 한결 편해졌다.

좋아하던 노래는 가사도 박자도 그대로인데 노래를 부르는 나는 많이도 변했다. 엊그제 일처럼 옛 추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건만 내 목소리는 기억에서 간격이 한참 벌어져 있다. 중간에 끊어 부르지 않으면 호흡이 가빠져 노래 뒤쪽은 몽땅 날아가 버릴 정도가 되었다.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을 즐겨 찾는 나이가 되었지만 나만의 곡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꼭 새로운 곡이 아니어도 좋다. 같은 악보도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맛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기분에 따라 사분음표를 십육분음표로 바꾸기도 하고 그러다 숨이 차면 쉼표를 넣어 잠시 호흡을 가다듬기도 하면서 연주할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들면 좋겠다. 고음이 힘들면 내 목소리 톤에 맞게 키를 바꾸기도 하고 때로는 화음을 넣어 전혀 다른 분위기로 만들기도 하면서 나만의 악보를 그려나가고 싶다. ​

한 시간이 훌쩍 흘러 벌써 마지막 곡이다. 어떤 노래로 마무리할까 고민하다 예전에 같이 불렀던 듀엣곡을 고른다. 좋아하는 가사가 나오면 불쑥 끼어들어 낚아채기도 하고, 내가 숨이 차면 남편이 받아서 노래를 이어간다. 오랜 시간 한 울타리에서 지내며 우리의 호흡도 서로에게 맞추어 편곡이 된 모양이다. 지금 이 순간, 정해진 음정과 박자에서 벗어난들 무슨 상관있으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