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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강아지 똥 마을에서 / 김정근

 

강아지 똥 마을에서 / 김정근

 

 

돌담 위에 소담스레 쌓인 눈을 참 오랜만에 본다. 담장 아래 뒹구는 강아지 똥도 모처럼 예쁜 눈꽃을 피우고 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눈이 오지 않아 아쉬웠는데, 삼월 하순에 이곳에서 함박눈을 보게 되다니. 계절을 넘어선 몽환적인 풍경에 속절없이 분주했던 몸과 마음을 눈송이에 실어 살포시 내려놓는다.

모처럼의 눈 소식에 안동의 시골 마을 조탑리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아름다운 설경에 대한 기대와 눈처럼 순수하고 따뜻했던 동화 작가 권정생 선생의 흔적을 오롯이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순백의 무채색 세상이 펼쳐진다. 고샅길에 들어서니 문득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이대로 이 풍경 속에 머물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지금, 이 순간 이곳에 있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을을 감싸고 있던 모든 경계가 사라지고 하나의 색깔로 변해간다. 그 새하얀 풍경에 내 마음도 어느새 경계를 허물고 아름다운 설경의 한 조각이 된다. 경계가 사라진 탓일까. 마을의 풍광이 더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이곳에 살았던 권정생 선생은 생전에 한민족이 휴전선이라는 경계를 두고 대치하는 상황을 몹시 애통해했다. 그래서일까, 돌아가시며 거액의 인세(印稅)를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하라고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선생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여전히 넘기 힘든 장벽으로 단절된 한반도의 상황이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이 땅의 비극적인 역사가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바랐던 선생의 소망처럼 남북한이 서로 미워하고 상처 주는 일이, 더는 없으면 좋겠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마을이 안고 있는 오랜 시간과 그 안에 담긴 소소한 이야기들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평소에는 관심조차 끌지 못하던 보잘것없는 것들도 설경 속에 묻히니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멋진 풍광이 된다. 뷰 파인더에 비치는 포근한 설경 덕분에 추위에 시린 몸과 답답하던 마음에 어느새 훈훈한 온기가 돌고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권정생 선생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에게 평생 애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한겨울 혹한 같은 상황 속에서도 따뜻한 동화를 통해 세상 밑바닥에 있는 약자들이 삶의 훈훈한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다독여 주었다.

이제 세상은 선생이 사시던 시대보다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물질 만능, 능력 중심 무한 경쟁의 사회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나 관심은 약해지는 것 같다. 이렇듯 삭막해지는 세상인심에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닌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시골집 담벼락에 그려진 선생의 동화 속 인물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며 인사를 건넨다. 골목길을 따라 이어진 벽화가 마치 뭇 생명을 향한 선생의 따뜻하고 애정 어린 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먹먹해지고 애틋해진다. 처절한 고통의 시간 속에 꿋꿋이 한 시대를 살아낸 그들의 이야기에서, 모진 세파를 헤치고 억척스럽게 삶을 이어갔던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듯해 코끝이 찡해진다.

힘겨웠던 그 시절, 권정생 선생도 깡통을 들고 구걸하는 거지로 살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 지독한 가난과 병마 속에서 생존하기에도 급급했을 텐데, 선생은 어떻게 동화를 쓸 수 있었을까. 어쩌면 동화를 통해 자신을 위로하며 그 힘든 상황을 헤쳐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동화 속 주인공들한테서 권정생 선생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눈부신 설경에 취해 추위도 잊은 채 걷다 보니 어느덧 권정생 선생이 살던 집이 보인다. 지금 무너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허름하기 짝이 없는 흙집이다. 거액의 인세 수입이 있었음에도 이렇게 작고 궁색한 집에서 살았다니. 선생의 소박하고 검소한 삶이 마음을 울린다.

선생께서는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며 동화 속 강아지 똥처럼 힘든 삶을 살았다. 그의 동화 ‘강아지 똥’에서 예쁜 민들레 꽃을 피운 강아지 똥은 바로 선생 본인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초등학교 학력에 지독히 가난했던 그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강아지 똥과 다름없는 존재였으리라. 하지만 동화 속 강아지 똥이 예쁜 민들레 꽃을 피운 것처럼, 작은 시골 교회의 가난한 종지기로 살아가던 그도 마침내 아름다운 명작 동화를 탄생시키지 않았는가.

선생의 집을 뒤로하고 강변길로 나오니 하얀 설경에 묻힌 일직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한 시대를 짓눌렀던 가난과 슬픔을 껴안고 병약한 몸을 이끌며 흙집과 교회를 오갔던 선생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 세상의 가장 약하고 버려진 존재들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동화 속에 담으려 끊임없이 고뇌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마침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강아지 똥이 예쁜 민들레 꽃을 피운 동화 ‘강아지 똥’을 탄생시키지 않았는가.

‘눈밭에선 앞서가는 이의 발자국이 길이 된다.’라고 했던가. 설경 속에서, 작고 보잘것없는 것조차 귀하게 여겼던 권정생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걸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선생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조탑리를 떠나려는데, 문득 ‘강아지 똥’의 한 구절이 머리를 스친다.

“하느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인가에 귀하게 쓰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