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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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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다시 듣고싶은 호랑이의 꾸중 / 김 학 다시 듣고싶은 호랑이의 꾸중 / 김 학 긴 장마철 내내 방구석에 갇혀 책과 함께 시간을 죽였다. 책과 나는 시간을 죽인 공범이다. 영원한 고전이라는 연암 박지원의 <호질虎叱>을 다시 읽었다. 호랑이가 사람을 꾸짖는다는 내용의 고전소설이다. 이솝우화 못지 않게 재미가 있었다. 연..
[좋은수필]새끼비들기 / 오창익 새끼비둘기 / 오창익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수백 마리의 비둘기가 있다. 본관 옥상에 지어준 집에서 자고 먹고 번식을 하며 사이좋게 모여서 산다. 아침 출근을 할 때 쯤 되면 그들도 둥우리를 떠난다. 몇바퀴인가 운동장을 기분좋게 선회하고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앞서 가는 한 마리의..
[좋은수필]분꽃 / 박규환 분꽃 / 박규환 늦여름에서 늦가을에 이르도록 분꽃들은 핀다. 제법 화단에 어엿한 자리를 차지할만치 그 지체가 높을 것도 없어서 분꽃은 하냥 장독대의 가장자리거나 아니면 담벼랑 아래 남몰래 자란다. 그러나 그 척박한 토양이 그 성장과는 상관이 없는 듯 잡초처럼 건장해서 노동에 ..
[좋은수필]봄 / 피천득 봄 / 피천득(皮千得) '인생은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사월은 천치(天癡)와 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온다.' 이러한 시를 쓴 시인이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렇게 읊은 시인도 있다. 이들은 사치스런 사람들이다. 나같이 범속(凡俗)한 사람은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무겁..
[좋은수필]죽음에 대하여 / 허창옥 죽음에 대하여 / 허창옥 안방 장롱 문양이 십장생 돋을 새김이다. 전체적인 느낌이나 색상, 나무의 질 따위를 두고 요모조모 뜯어 본 뒤에 선택한 것이다. 문양의 내용을 보고 사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누워서 가만히 보니 그저 산이려니 나무이려니 했던 것이 십장생이 다 모여 있었..
[좋은수필]생수 두 병 / 최순옥 생수 두 병 / 최순옥 '딩동' 조그맣게 들려오는 벨소리에 문을 열고 나가 보니, 같은 층에 사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서 계셨다. 큰 물병은 안고 양손에 하나씩 비닐통과 유리병을 들고서 말이다. 벨소리를 단번에 듣지 못하고 뒤늦게 야 문을 열게 되어 미안한 얼굴로 받아든 것은, 미처 식지..
[좋은수필]목련꽃 하얀 그늘 / 오혜정 목련꽃 하얀 그늘 / 오혜정 화사한 봄날이다. 목련이 단아한 자태로 발돋움하고 있다. 해마다 부활절 무렵이 되면 뜰안의 정적을 깨우는 꽃이다. 15년 세월을 한 울안에서 애환을 나눈 유정이 또 한 차례 사색의 향연장으로 이끌고 있다. 모과나무 앵두나무 라일락 산도화 보리수나무 향나..
[좋은수필]참 빗 / 강숙련 참 빗 / 강숙련 경주의 어느 콘도에 여장을 풀기로 했다. 체크 인 시간이 두어시간 남았기에 몇 군데 민속 공예점을 기웃거리다가 반가운 물건을 만났다. 그것은 살이 아주 가늘고 고운 진소(眞梳)였다. 얼레빗(月梳)과는 달리 대나무 살이 실낱같이 섬세한 빗이다. 빗살이 촘촘하고 가지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