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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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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아버지와 감꽃 / 김정미 아버지와 감꽃 / 김정미 반질거리는 옹기항아리가 크기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을 선 친정집 장독, 그 장독대 옆엔 대문을 훌쩍 넘어선 감나무 한그루가 있다. 애초부터 그 감나무는 장독대 옆에 심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와 절친한 친구분께 얻은 붓 자루만한 크기였으므로 마..
[좋은수필]뿔 / 김동수 뿔 / 김동수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홀로아리랑'노랫말이다. 우리는 어째서 아리랑 가락에 실어 독도의 안부를 묻는 걸까. 어쩌면 너와 나도 생의 바다에 떠 있는 조각배, 주먹만한 심장 하나로 ..
[좋은수필]안개 / 김창식 안개 / 김창식 안개는 불온하다. 희뿌연 장막을 헤치며 앞으로 나선다. 견고해 보이던 바리케이드는 허물어지고 순순히 길을 내준다. 그러나 정작 목표한 지점에 닿으면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등진 채 침묵하는 사물은 가라앉고 모호함은 또 저만치 앞서 있다. 안..
[좋은수필]명쾌한 정답 / 조재은 명쾌한 정답 / 조재은 빨간색에 홀려 정신이 타들어 가 주위에 있는 빨간색은 보이는 대로 집어 들었지요. 빨간 지갑, 빨간 코트, 마지막 신지 말아야 할 빨간 구두까지 신었습니다. 스스로는 벗어날 수 없는 신발이었습니다. 빨간 구두를 신으면 계속 춤을 추는 두려운 동화의 꿈에 자주 ..
[좋은수필]민들레 / 박종희 민들레 / 박종희 큰 우산을 쓰고 그 아이가 지나간다. 우산이 커 아이의 전면을 가려버렸다. 멀리서 보면 우산이 아이를 데려가는 것처럼 움직이는 신발만 보인다. 밀리는 차 때문에 승용차 안에 있는 사람들의 눈은 모두 여자아이한테 쏠린다. 자기를 쳐다보는 사람들을 의식해서인지 잠..
[좋은수필]바람난 아내의 고백 / 신수옥 바람난 아내의 고백 / 신수옥 나는 지금 바람을 피우느라 정신이 없다. 늦바람이다. 남편은 나를 처음 만난 날 이후 40여 년간 여자라고는 하늘 아래 나 한 사람밖에 없는 줄 알고 살아왔고, 나 또한 단언컨대 이날까지 한눈 한 번 판 적이 없다. 오직 그 한 사람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변함..
[좋은수필]허(虛) / 이금태 허(虛) / 이금태 빈집의 슬픔을 아는가. 배꼽을 닮은 그곳에 쇠붙이를 찔러 넣는다. 딸깍 금속음 소리에 녀석은 꼬리가 떨어질듯이 흔들어댄다. 반갑겠지. 하루 종일 홀로 있었으니, 충성스런 사랑마저도 피곤한 느낌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현관 앞 신발에 코를 박고 킁킁 거리며 내 ..
[좋은수필]옛 정 / 정해경 옛 정 / 정해경 비서가 바뀌었다. 미스 신과 미스 구. 이 바닥에서 비서를 들일 때는 갓 취업을 나온 신출내기를 선택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미스 신은 이미 한 줄 경력이 있다. 얼마 전 아들에게 뽑혀 온, 그에게는 비서라기보다는 연인이었던 그녀, 아들은 그런 미스 신을 내게 넘기고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