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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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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숲 속의 길 / 정경자 숲 속의 길 / 정경자 긴 장마가 잠시 숨고르기를 하던 날이었다. 드라이브나 하자는 옆집 정아엄마의 말에 의견 일치를 본 두 가족은 차 한대에 몰아서 타고 길을 나섰다. 계획도 목적도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은 일행들을 가벼운 흥분으로 들뜨게 했다. 넓고 편한 국도를 벗어나 우측 ..
[좋은수필]종택(宗宅) / 석민자 종택(宗宅) / 석민자 한 때는 문중의 중심으로 자리해오던 종택이 세월의 무게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기왓장 사이에서 잡초가 뿌리를 내리는가 싶다보면 빗물이 새어들기 시작하면서 제대로 된 균열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종택의 건재를 그 가문의 흥망과 맞물려 있다고 보는 것도 틀..
[좋은수필]간이역 / 임만빈 간이역 / 임만빈 추석차례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고향집을 나섰다. 어젯밤 아버지가 거처하시던 흙벽의 안방에서 잠을 잤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방에서 잠을 자서인지 몸에서는 흙냄새가 풍겼다. 왜 이제야 흙냄새가 난다는 것을 인식하는지 모르겠다. ..
[좋은수필]푸른 휘파람 / 구활 푸른 휘파람 / 구활 쌈은 예술에 가깝다. 예술 중에서도 미술 쪽이다. 쌈거리가 푸짐한 식탁을 대하면 붓을 들고 캔버스 앞에 앉은 것처럼 엷은 흥분이 일곤 한다. 밥과 반찬은 입맛 당기는 대로 입에 넣어 씹으면 되지만 쌈은 그렇지 않다. 재료를 차례대로 손바닥에 쌓아 올려야 하고 된..
[좋은수필]마지막 수업 / 조이섭 마지막 수업 / 조이섭 아이가 소파를 짚고 위태롭게 서 있다. 혼자 선 것이 아니라 제 아빠의 의지로 세워 놓은 것이다. 아이는 잔뜩 겁먹은 낯빛이다. 다리에 힘을 모아 보지만 얼마 못 버티고 스르르 무너지고 만다. 그런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아들에게 가르친 마지막 ..
[좋은수필]빈집 / 박종희 빈집 / 박종희 알맹이를 빼먹어 속이 빈 소라껍데기가 어항 속에 있다. 쫄깃쫄깃한 소라 살을 빼 먹고 나니, 그 큰 소라는 속이 비어 빈집이다. 내장까지 모두 비운 소라껍데기를 씻어 어항 속에 넣어 두었더니 파도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한 때는 바다에서, 바다가 키워주는 대로 짠 소금..
[좋은수필]수련 / 조경숙 수련 / 조경숙 "수련을 어디다 치웠나?" 남편의 한 마디로 느긋한 주말이 산산조각 났다. 부리나케 아파트 화단으로 뛰어나가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더니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경비실에 CCTV가 있어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주말이라 기계조작을 할 줄 아는 사람..
[좋은수필]콩값에 보태려고 쓴 글 / 정성화 콩값에 보태려고 쓴 글 / 정성화 우리 집 밥상에는 두부와 콩나물로 만든 음식이 자주 등장한다. 음식을 만드는 나의 식성이 아무래도 그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모양이다. 어릴 때 가장 많이 했던 심부름이 두부나 콩나물을 사오는 것이었다. 집으로 오는 동안 두부가 부서지거나 콩나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