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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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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박수칠 때 싸워라 / 이혜숙 박수칠 때 싸워라 / 이혜숙 드디어 우리 가정에도 여문 평화가 오려나보다. 자식들이 싸우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얼마나 기다렸던 일인가. 무슨 엄마가 자식 싸움을 바라느냐고 하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어린 시절 치고받고 해야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해진다는 게 내 지론이다. 싸우다..
[좋은수필]죽음에 빚진 삶 / 조병렬 죽음에 빚진 삶 / 조병렬 오늘도 산길을 걷는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젖어들며 청량한 물소리를 따라 출발은 활기차다. 오랜 세월 함께한 삶의 역정(歷程)처럼 아내와 나는 자연스럽게 속도를 조절하며 이따금 힘든 표정을 살핀다. 험한 언덕을 오를 때면 서로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 준..
[좋은수필]옹이 / 권예란 옹이 / 권예란 겨울이 되니 배롱나무 한 그루가 미끈한 속살을 드러낸다. 나무는 제가 가진 것을 다 떨어뜨리고 나서야 고스란히 본 모습을 내보인다. 배롱나무의 짙은 분홍색 꽃은 초여름부터 피기 시작하다. 그 분홍색 꽃들이 올망졸망 피면 아담한 키의 여자 아이들이 머리에 꽃을 달..
[좋은수필]낙화 / 김희자 낙화 / 김희자 수월관 뜰에 진 왕벚꽃이 서럽도록 곱다. 까치발을 딛고 담을 넘은 바람이 꽃 진 자리에 슬며시 눕는다. 떨어진 꽃잎이 바람에게 몸을 맡긴다. 축 늘어진 나뭇가지에서 못다 내린 눈꽃이 내린다. 꽃이 꽃답게 피는 날은 고작 열흘. 꿈결 같은 며칠이 지나면 꽃은 다시 새 생..
[좋은수필]보리밭 / 김상환 보리밭 / 김상환 눈보라 삼동을 견딘 풋보리가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온 들녘에 파릇파릇 생기를 불어 넣으며 봄은 우리 곁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유년의 봄은 우리에게 보리밭 밟기와 지긋지긋한 김매기로 무리한 노동을 강요했고, 쌀 한 톨 섞이지 않은 꽁보리밥이 밥상 위에 올라..
[좋은수필]물지게 / 류영택 물지게 / 류영택 "수정아!" 등 뒤에서 딸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누가 내 이름을 부를까?' 딸아이는 다소 놀라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고, '저 여편네가 웬일이야!' 아내는 돌아보기도 전에 상대가 누군지를 알아챈 것 같았다. '언제부터 아내의 호칭이 바뀌었나!' 나는 의아한 ..
[좋은수필]쇠죽 / 이정연 쇠죽 / 이정연 시골에서 한 며칠간만이라도 머물러 있을 수 있다면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막 눈이 녹은 양지쪽 산에서 관솔이나 솔방울을 주워 가마니에 담아오는 일도 하고 싶고 허드렛물로 쓰던 샘을 치우고 바위틈에서 퐁퐁 솟는 샘물이 이윽고 샘에 차고 넘쳐서 미나리꽝으로 ..
[좋은수필]별수 없다 / 박양근 별수 없다 / 박양근 난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친구들이 자랑을 하여도, 어느 날 갑자기 직장동료들이 만면에 웃음을 날리면서 호들갑을 떨어도 난 그렇지 않을 거라 작정하였다. 너도 별수 없을 거라 콧방귀를 뀌었으나 마이동풍을 자처하였다. 나만큼 마음이 무거운 선배 교수조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