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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갈랑이의 긴 외출 / 이강촌

cabin1212 2014. 6. 6. 06:30

갈랑이의 긴 외출 / 이강촌

 

 

지금도 어디에서인가 갈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 울음소리를 따라 앞 개울가를 서성거리기도 하고 뒷동산을 오르내리기도 한다. 꼭 나는 부르는 것 같은 울음소리, 확인하러 올라가 본 언덕엔 이름 모를 새들만이 노래를 부르짖고 있었다.

갈랑이는 우리 집 어미 닭인 노랑이가 지난 삼월에 처음 출산한 아홉 마리 병아리중의 한 마리다. 그때 알에서 깨어난 지 이틀밖에 안된 갈랑이, 겨우 배냇물이 마른 갈랑이를 엄마 노랑이가 곁을 주지 않았다. 아니 곁을 주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쫓아다니면서 없어져 버리라는 듯, 쫓고 물고 흔들어댔다. 다른 새끼들에게는 온화하고 자상하기 그지없는 노랑이가 갈랑이에게는 모질기 짝이 없었다. 며칠 지켜보고 있노라니 아무래도 갈랑이가 다칠 것만 같아 종이 박스에다가 임시 거처를 만들어 놓고 엄마 노랑이의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고백하자면 갈랑이는 노랑이의 친자가 아니었다. 엄마 노랑이가 알 품을 기미를 보이자 이웃 농가에서 알을 몇 개 구해다가 노랑이가 낳은 알에 섞어서 품게 만들어 주었었다. 이웃집의 토종닭들이 너무 예쁘기에 종자를 받을 욕심으로 노랑이 몰래 입양을 한 셈이었다. 그런데 다른 것들은 색깔이 비슷해서인가 받아들였는데 눈에 띄게 다른 색깔의 갈랑이는 지금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사연도 자기를 내치는 원인도 알 리 없는 갈랑이는 구석에 쪼그리고 있다가 엄마가 한눈을 파는 사이에 얼른 엄마 품속을 찾아 들어가 숨어버리기도 하고, 모이통 옆으로 몸을 숨기기도 하면서 간절하게 엄마 곁을 원했다. 갈랑이의 엄마를 향한 구애의 모습은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짐승의 행동으로는 가히 감동이었다.

이틀 동안 닭장을 떠나지 못하고 지켜보면서 갈랑이를 받아달라고 간청했지만 노랑이의 갈랑이에 대한 학대는 여전했으며 조금도 받아드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 애처로운 사연을 알게 된 어린 손주들과 가족들이 각별하게 갈랑이를 사랑하고 돌보았지만 갈랑이의 눈은 늘 슬픔으로 가득했다. 컴퓨터에 엄마 닭 노랑이와 형제들의 사진을 올려놓고 가족들을 만나게 만들어 주었더니 목을 길게 빼고 컴퓨터 안의 갖고들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면서 떠날 줄을 모르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꽃방석에 앉혀두어도 나는 슬프기만 하다. 나는 엄마가 무지 좋은데 그리고 형제들과 함께 놀고 싶은데, 그립고 보고파 엄마’

날이 갈수록 갈랑이의 눈은 더욱 슬픔에 젖었다. 그런 사연을 안고 나와 함께 집 안에서 살게 된 갈랑이, 그 가여운 갈랑이를 혼자 두지 않으려고 산책길에도 안고 다니고 텃밭에 나갈 때는 박스에 담아서 곁에 두고 밭일을 했다. 그렇게 돌보다가 보니 갈랑이는 정말 나를 엄마로 아는제 나의 손바닥에서 잠을 자고 내 무릎 위에서 재롱을 부리면서 놀았다.

그렇게 보름쯤 되고 보니 갈랑이는 슬픔과 외로움을 딛고 생기를 찾아 가는 듯했다. 양쪽 옆구리에서는 갈색 날개가 돋아나고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폴폴 날기도 했다.

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산골의 조용한 봄날이었다. 종이 박스를 자기 집으로 알고 있는 갈랑이를 데리고 텃밭으로 나갔다. 텃밭 가장자리에 박스를 두고 풋나물을 속기도 하고 잡풀을 뽑기도 하면서 텃밭을 돌보고 있다가 잠깐 자리를 비웠었다. 그런데 그 잠깐 사이에 갈랑이가 없어졌다. 아무리 불러보아도 갈랑이가 보이지 않았다. 정말 잠깐 사이였다.

 

엄마 노릇을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허술한 집에 지붕도 없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종이박스에 폴폴 날기 시작한 갈랑이를 홀로 두고 자리를 비우다니…. 엄마 노랑이는 정대로 병아리를 멀찍이 두고 혼자 자리를 뜨는 적이 절대로 없지 않던가. 잠깐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돌아보고 또 불러 모아 품어주고 먹여주고 하지 않던가.

찾아다녔다. 뜰 구석구석을 찾아다니고 뒷산 언덕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개울가를 샅샅이 뒤지기도 해 보았지만 어디에도 주먹만한 갈랑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쪽으로 들고양이가 휘익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아~! 머리카락이 날을 세우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갈랑이가 내 곁을 떠난 지 몇 개월이 지났다. 꽃들이 한창 피는 봄날에 떠난 갈랑이는 봄이 가고 여름이 깊어가는 데도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닭장 안의 그의 형제들은 이제 몸뚱이가 엄마만큼 자라 장닭과 암탉이 되어 가는데….

오늘도 미안한 마음과 안타까운 심정으로 긴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는 갈랑이를 기다리며 뜰을 서성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