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동백여사 / 이예경
동백여사 / 이예경
“아, 꽃봉오리다!”
어머니의 들뜬 목소리가 집안을 깨운다. 삼십 년이 지나고서야 겨우 한 뼘 정도 자란 동백이다. 묘목으로 실패를 거듭했던 어머니가 씨앗으로 키워보겠다고 공을 들여 얻은 첫 작품이다. 씨앗은 해를 넘기고서야 싹이 텄다. 그 동백에 맺힌 작은 봉오리를 본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꽃봉오리인지 잎인지 확실치 않다.
어머니와 동백의 첫 인연은 아버지가 울릉도에 근무할 때였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방학에 맞춰 울릉도 여행길에 올랐다. 터미널 부근에서 하루를 묵고 이른 아침에 탄 배는 저물녘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울릉도의 아침은 눈에 덮인 순백의 세상이었다. 사진에서나 보았던 멋진 풍경에 아침도 거른 채 산책길을 걸었다. 어머니는 학교 화단 동백나무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눈 속을 밀고 나온 선홍빛 동백꽃에 넋을 잃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분이었지만 가족에게는 무심한 편이었다. 오죽하면 친구분께 제자의 취직을 부탁하러 가니 ‘이젠 자네 자식 부탁하러나 오게.’하더라는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섬 근무를 끝내고 육지로 오던 날이었다. 울릉도에서 눈 속의 동백꽃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던 어머니가 생각났던 것일까. 부석에 심은 작은 동백을 어머니에게 선물했다. 선물을 받아든 어머니의 표정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눈에 띄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자식 돌보듯 기울인 정성에 동백은 사계절 싱싱한 잎으로 보답했다. 어머니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동백 잎은 윤기를 더해 갔다. 그날도 동백에 물을 주러 나가신 어머니가 소리쳤다. “아이고, 이를 어째!” 동백이 없어진 것이다. 어머니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우리가 단독주택에서 살던 때는 대문을 거의 열어두고 지내던 시절이었다. 품 안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예쁜 것에 탐심이 생겼던 것일까. 누군가 마음먹고 들고 간 것이 틀림없었다.
동백에 들인 어머니의 정성을 아는 아버지는 다시 구해 주겠다며 다독였지만 어머니의 안타까움 달래지는 못했다. 그 후 우리 가족은 ‘동백’이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동백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만큼이나 아버지의 마음도 서운했을 터이다. 다시 구해주겠다던 아버지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먼 길을 떠나셨다. “병구완이라도 좀 더하게 해주지...,” 당신 건강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성껏 간호했는데도 서둘러 떠난 남편에 대한 아쉬움을 어머니는 그렇게 표현했다.
아버지 가신 지 십년이 지나고 서산으로 휴가를 갔을 때였다. 길가 큰 동백나무 밑에 여러 그루의 어린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이를 발견한 어머니의 눈이 빛나는가 싶더니 손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어머니답지 않은 모습에 놀란 형제들이 극구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손수건에 싼 동백 묘목을 신줏단지 모시듯 감싸 안고 돌아와 온 정성을 다해 심고 돌보았다. 입양한 동백이 활착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그 동백은 시름시름 앓다가 꽃도 한 번 피우지 못하고 어머니 곁을 떠났다.
동백을 떠나보낸 뒤 어머니는 밤이면 슬그머니 거실로 나가 컴퓨터를 켜 무엇인가 적곤 했다. 오밤중에 무얼 하시냐고 물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숨겼다. 평소 식품이나 건강 정보에 관심이 많았기에 그와 관련된 검색이라 여겼다. 아는 게 병이라며 적당히 하시라고 했더니 동백에 대한 자료를 검색했노라고 털어놓았다. 뜻밖이었다. 상실감이 더 강한 애착을 불러온 것이었을까? 오매불망 동백 생각뿐인 것 같았다.
동백은 장미보다 예쁘지 않고 라일락처럼 향이 매혹적인 꽃도 아니다. 그런데도 어머니가 왜 그렇게 동백에 집착하는지 궁금했다. “너희 아버지가 가져온 잃어버린 동백 때문에.......” 어머니는 말끝을 흐렸다. 당신은 동백을 통해 아버지와 교감하며 혼자된 허허로움을 달래고 있었던 게다. 긴 세월 아무도 모르게 나눈 사랑 이야기를 듣는 듯 가슴이 뭉클해왔다. 그 속내를 읽지 못하고 집착이라 넘겨짚은 나는 무심한 딸이었다.
동백꽃은 피어 있는 시간이 다른 꽃에 비해 짧다. 그것이 아쉬워서인지 나무에서 한 번, 떨어져서 한 번, 두 번을 핀다. 나무에서 활짝 피었을 때만큼 떨어져서도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 꽃이다. 동백꽃 필 때면 어머니는 그 옆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떨어진 동백꽃을 주워와 애틋하게 보곤 했다. 그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숱한 밤을 온통 동백 생각으로 보내며 딸에게조차 쑥스러워 말 못했던 어머니. 그 세월만큼이나 길고 지극한 동백 사랑에 이젠 누구도 끼어들 수가 없었다. 우리 형제들은 그런 어머니를 ‘동백 여사’라 불렀고 당신도 그 애칭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두어 달 전 긴가민가하던 봉오리에 붉은 기운이 선연하다. 앙증맞은 그 동백은 아버지가 선물했던 부석의 동백과 똑 닮았다. 은근한 눈길로 동백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꽃말을 알고 계셨으리라. 꽃봉오리에 보내는 어머니의 눈길에 그리움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