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저녁의 노래 / 이은정
저녁의 노래 / 이은정
노래는 내면을 대변한다. 기쁠 때는 혀가 춤추듯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오지만, 슬플 때는 느린 곡조에 마음이 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애달픈 선율에 노래하는 이의 울적한 마음까지 보태어지면 노래는 슬픔이라는 감정에 불을 놓는다. 간단히 반주로 마신 한 잔 술에 얼근한 기운이 보탬을 더하면 결국 노래는 한(恨)이 되어 벙어리 말문 터지듯 터져버리고 만다. 그때 부르는 노래는 이미 노래가 아니다.
작은 어촌 마을에 세간을 푼 지가 벌써 일 년이 훌쩍 넘어간다. 마을의 중앙길가에 떡 하니 서 있는 우리 집은 마을 주민이라면 하루 한 번씩은 지나다니는 전봇대 같은 존재이다. 부러 마당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매일 같은 시각 우리 집 담을 넘어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이제는 자연의 소리가 되었다. 인간도 자연의 하나라면, 인간이 내는 소리도 지저귀는 저 새들의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가끔은 구식 카세트 플레이어를 옆구리에 차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기계도 나이를 먹는 건 사람과 다르지 않은 모양인지 한 번씩 마찰음이 들리는 것에 사람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농어촌지역의 연령대가 고만고만하다보니 들리는 노래들은 트로트 메들리가 대부분이다. 가끔은 나도 남의 노래자락에 어깨를 들썩대기도 한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생겼다. 신나는 리듬에 모두가 엉덩이를 씰룩대며 지나갈 것처럼 보이지만 늘 그렇지만은 않다.
실상 그렇다. 리듬이 신명난다고 해서 어찌 즐겁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웃고 있으면서도 종종히 눈물이 나는 게 사람이고, 슬프고 괴로워도 이를 악물고 웃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인지상정이 빠지면 곤란한 인생. 나도 보통의 사람이기에 흥겨운 가락에도 안색에 그늘이 가득한 사람들에게 마음이 쓰인다. 생업을 이유로 우리 집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주로 신나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낙조에 바다가 물들 즈음 들려오는 노래는 그것과 사뭇 다르게 애달프기만 하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바다 위에서 목숨을 걸고 가장노릇을 해 온 어부들의 저녁은 선착장에 매어놓은 낡은 선박의 벗겨진 시멘트처럼 생기가 없다. 만선하지 못한 어선의 가벼움과는 반대로 근심을 한가득 싣고 귀가하는 어부들의 노래는 무겁고 서글프다. 일평생 허리를 굽혀야 먹고 사는 노동에 이력이 났을 농부들의 저녁은 그들의 허리처럼 힘겹게 굽어가고, 공복에 마셔댄 알코올의 취기는 한 서린 노래를 불러들인다. 그렇게 저녁 무렵이면 땅거미를 비틀면서 우리 집에 흘러드는 곡조들 속에는 가장 나약하고 정직한 아비 된 자들의 슬픔이 스며있다.
저녁이 되면 우리 집 앞은 한(恨)을 내려놓는 길목이 된다. 식솔이 있는 집에 도착하기 전에 그 한(恨)을 조금씩 부려놓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고된 생에 흔들리는 가장을 보면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탄 식솔들이 불안해 할까봐 염려하는 것이리라. 늙기는 해도 부러지지 않는 고목나무 기둥으로 언제까지나 건재하고 싶은 가장의 바람일 것이다.
날이 저물고 구슬픈 노래자락이 대문을 두드리는 날이면 나는 마당을 밝히는 전구를 켜곤 한다. 내 집 앞에서 다 뱉고 가시라는 의미이다.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쏟아내고 가시라는 마음이다. 가시는 길 어둡지 말라는 배려이다. 마음 같아서는 내 집 담벼락 아래 낡은 의자 하나 준비해서 누구든 그 자리를 부리게 하고 싶다. 그믐이 건네는 서슬 퍼런 달빛과 스산한 파도 소리가 물러진 마음의 단추를 풀어버리게 할 것이다. 그때, 내가 밝힌 전구가 그들의 나약해진 발걸음을 바다가 아닌 가족이 있는 집으로 향하게 해 주지 않을까 조금은 욕심을 내어본다. 애써 터진 노랫소리가 남의 집 앞이라 주눅 들지 않도록 나는 가만가만 발꿈치를 들고 움직인다. 대면 없이 높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한 사람은 노래를 하고 한 사람은 그 노래를 듣는다. 두 사람 모두 수모(誰某)이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 날 아무 시 아무나 와도 좋을, 그런 집에 나는 산다.
단 한 번도 아버지의 노래를 이해해 보려 하지 못한 못난 여식의 마음으로 마당을 밝힌다. 술 취한 아버지의 노랫소리는 언제나 귀찮고 지루한 주정(酒酊)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힘겨웠을 수많은 밤, 가족들에게 외면당한 아버지는 뉘 집 담벼락 앞에서 한 서린 노래를 부려놓으셨을까. 누구든 한 사람은 내 아비의 노래를 들어주었을지도 모른다. 그 믿음과 감사로 인해 저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길을 밝혀줄 깜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아버지의 그 마음을 다 알지 못하는 나의 결함은, 저물녘 담을 넘는 노래를 들으며 더욱 성숙하리라 믿는다. 간간한 바닷바람 속에 그보다 더 짠 눈물을 숨기고 살았을 늙은 아비들의 노랫소리가 좋다.
담 너머가 조용한 오늘, 모두 무탈한 저녁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