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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슬픔에 대하여 / 최민자

cabin1212 2018. 9. 30. 07:05

슬픔에 대하여 / 최민자  

 

 

 

슬픔이 슬픔을 덮쳤다. 큰물이 개여울을 휩쓸어 가듯, 날벼락 같은 소식 하나가 잔챙이 슬픔들을 삼켜 버렸다. 잊을만하면 심장을 찔러 대던 가시 파편도 어디로 숨었는지 잠잠해졌다.

슬픔에도 약육강식이 있는가. 서열싸움에서 승리한 수컷이 무리를 장악하고 하렘의 우두머리로 등극하듯이 느닷없이 급습한 알파 슬픔이 해묵은 슬픔들을 제압하고 평정했다. 크고 힘센 슬픔 앞에서 여타의 조무래기들은 순식간에 꼬리를 내려 버렸다. 플랑크톤이 물벼룩에게, 물벼룩이 고등어에게, 고등어가 다랑어에게, 다랑어가 백상아리에게 잡혀 먹는 바닷속 위계처럼, 빛도, 소리도, 물방울도, 자본도, 약한 놈이 센 놈에게 흡수합병당하는 게 물 밖 세상의 이치인 모양이다.

슬픔의 세계에서 가장 힘센, 치명적인 포식자는 당연히 죽음이다. 소리 없이 덮치는 이 종결자에겐 대적할 만한 천적이 없다. 그가 타나타기 전까지 슬픔들은 목도리도마뱀이나 무당개구리처럼 몸뚱어리를 부풀리고 색깔을 과장하며 실제보다 더 큰 존재감으로 일상의 평화와 영혼을 잠식한다. 그러나 죽음,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대적할 만한 슬픔은 없다. 죽음은 컴컴한 바닥에 칩거하는 심해어처럼 조용히 지느러미를 펄럭거리며 크고 컴컴한 아가리 안으로 일순 덥석, 목표물을 삼킨다. 불시에 쳐들어와 불문곡직 한 생을 종결시키는 끝판왕, 어떤 사사로운 걱정거리도 무화시켜 버리는 무소불위의 불가항력 앞에서 모든 슬픔은 사소하다.

예기치 못한 불운이 연속되는 상황에서 설상가상 맞닥뜨린 오빠의 죽음은 식구들을 불시에 침몰시켰다. 아니 아프다. 슬퍼서 아픈 게 아니라 슬프지 않아서 더 아프다. 살아 오래 고통 받던 그가 고통 없는 나라에 안착했으리라는 마음으로 애써 슬픔을 무마하려 하는 내 영악한 무의식이 참담하다. 유독 아픈 손가락이었던 아들의 안부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구십 노모의 마음을 외면하고 현실을 숨겨야 하는 중압감도 만만찮다. 젊은 날 치러 낸 참척慘慽의 슬픔으로 진즉 지옥을 경험하고 계신 분들께 또다시 같은 슬픔을 얹어드릴 수 없어 형제들 모두 입을 닫기로 하였다. 언제까지 속일 수 있을까. 연신 두드려 대는 노인들의 노크 소리에 쥐 죽은 척 귀를 틀어막고 있는 상황,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슬픔은 힘이 세다. 봉인된 슬픔은 더 힘이 세다. 내 안에 살면서 나를 가두는 슬픔은 누구를 만나고 싶은 의욕도, 다른 일에 집중할 의지도 빼앗고 꼼짝 않고 저에게만 집중하라 명한다. 가시울타리보다 더 힘센 슬픔의 위리안치圍籬安置. 어디에도 도망칠 구석이 없다.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슬픔에도 천적이 있을까. 있다면 당연히 시간뿐일 것이다. 시간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

35도가 넘는 열대야가 열흘도 넘게 기승을 부리던 날, 더위 잘 이겨 내시고 건강하시라는 인사에 전화기 너머로 아버지가 답했다. 그려, 걱정 마. 근디 더위는 이기는 것이 아녀. 전디는 거지. 맞다. 그래, 견디는 거다. 견디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슬픔도, 더위도, 찢어지는 아픔도 앉은자리에서 견뎌 내야 한다. 싸우고 물리치고 타파하는 대신 온몸으로 결연히 통과해 내야 한다. 불사조가 불에서 살아 나오듯 견디고 살아남아야 한다. 어떤 비책도 소용이 없는 상황에서는 속수나 무책이야말로 유일한 방편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