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처음과 마지막의 관계 / 김남수
처음과 마지막의 관계 / 김남수
대장암 수술을 하고 구들방 신세가 되어버린 시어머니. 이빨 빠진 호랑이가 따로 없다. 며느리 셋이 달려들어도 이길 자신 있다고 호언장담하시더니 병 앞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시어머니의 단골 메뉴는 늘 곰삭은 멸치젓갈이었다. 삭은 멸치 머리를 떼어내고 일일이 살을 발라서 마늘, 고춧가루, 청양고추를 다져 넣어 짜고 매운 양념 젓갈을 만들었다. 삶은 배추나 미역, 우엉 잎을 쪄서 쌈을 싸 드셨는데 얼마 전부터 입맛이 없다 하시며 밥을 통 못 드신다.
잦은 설사를 하기에 우겨서 검사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장과 직장 사이에 이미 암이 퍼졌다고 했다. 진작 병원을 찾았더라면 병을 키우지 않았을 텐데, 생각할수록 후회가 되었다. 연세 들면 모든 것이 약해져서 설사하고 밥맛이 없어지는 줄 알았다. 자식들은 발등에 불 떨어지자 병원에 달려가서 살려달라고 매달렸다. 병원에서 구십이 넘은 고령이라 수술을 꺼렸다. 자식들이 애원 하니 수술은 해 주겠다며 각서를 쓰라고 했다.
수술은 열 시간이나 넘게 걸렸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대기실의 빨강 전광판이 저승사자 눈빛같이 섬뜩했다. 백기를 들고 왔지만, 개선장군같이 나갈 수 있을까? 자꾸만 약한 마음이 들었다.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데 백지장 같은 얼굴로 시어머니가 수술실에서 실려 나왔다.
수술은 성공이랄 것도 없이 인간이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배설 욕구를 빼앗아 갔다. 입으로 먹는 동물이라면 그것 또한 꼭 필요한 것인데, 주치의가 배변을 옆구리에 풍선을 달고 하라 한다. 시어머니는 의사의 손만 거치면 시원하게 볼일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텐데, 상실감이 크다. 어머니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아들이 하얀 거짓말을 했다.
“몇 개월만 고생하시면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어머니는 모르고 계시는지 알고도 모르는 척하시는지 모호한 미소를 지으셨다.
한 달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하는 날이었다. 무거운 솜이불과 옷 보따리를 끌어안고 아주버님과 형님이 어머니를 막내인 우리 집으로 모셔왔다. 동생 집이 편하다고 가시려고 했다며 형님은 묻지도 않는 말을 늘어놓았다. 계단을 쓰러질 듯 오르는 시어머니 뒷머리가 하얀 토끼털같이 펄펄 날려 마음이 애잔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시어머니 옆구리에 붙어있는 풍선이 공기를 불어 넣은 듯 부풀어 올랐다. 바쁘게 일회용 장갑을 끼고 비닐봉지를 씌웠다. 왼손은 비닐봉지를 잡고 오른손은 아랫배를 주무르듯 풍선을 누르자 배설물이 쏟아졌다. 낮에 먹은 우엉 쌈과 젓갈의 비릿한 냄새가 방안에 번졌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같이 속이 울렁이는데 그것을 받아주는 풍선이 너무 고맙다. 회복하는 동안 자극적인 음식을 삼가라는 말은 밀어내고 손바닥을 벌려 쌈만을 고집하니 시어머니의 몸에는 늘 곰삭은 젓갈 냄새가 났다.
옥상에 얹어둔 큰 물통을 욕실로 내렸다. 몸이 가벼운 시어머니를 안고 목욕을 시키니 시어머니의 얼굴이 함박꽃처럼 피어났다. 수술 후 누워만 계셨으니 볼록한 엉덩이 살이 구덩이처럼 패였다. 소파에 비스듬히 다리를 올려 하얀 살결을 자랑하신 것이 어제 일 같은데 어느새 종아리가 검버섯으로 얼룩졌다.
홀쭉하게 들어간 골진 배에서 아들 셋이 나와 어머니 젖을 먹고 자랐다고 생각하니 시어머니 가슴도 만져보고 싶었다. 통통하던 가슴이 빈 껍질만 남았다. 시어머니만 볼 수 있는 곳도 자신의 손처럼 씻겨드려서인지 어색해하지 않았다. 어린아이처럼 물장난도 치고 응석도 부렸다. 멀게만 느껴지던 시어머니와 더 가까워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말끔하게 씻은 시어머니는 한 삼 일 살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며 장난스럽게 웃으신다.
비록 풍선을 옆구리에 달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수술도 받고 최선을 다해주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손 놓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면 자식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만큼 살았으면 되었지, 더 살리려고 하느냐.”
말은 그렇게 하셔도 표정은 밝다. 노인들은 습관처럼 빨리 죽어야 한다는 말을 곧잘 하신다. 그 말을 믿는 사람이 있을까? 자식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미안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겠는가. 부모 마음은 자식들과 오래오래 정 나누며 같이 살고 싶을 것이다.
유복자 아들(남편)을 잘 키워주셨고, 손자 손녀를 돌봐주고 산후조리까지 편하게 해주신 그 은혜 갚을 길이 멀기만 한데 시어머니의 기력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진다. 내 삶에 밑거름이 되어주신 은혜를 백 분의 일이라도 갚는 심정으로 기꺼이 배설물을 받아내고 기저귀를 채운다.
시어머니는 점점 아기가 되어간다. 누가 부모와 자식은 처음과 마지막의 관계라고 했던가. 부모는 자식의 처음을 돌봐주고 자식은 부모의 마지막을 돌봐주는 관계다. 부디 자식들 곁에 오래 머물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