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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천재일우(千載一遇) / 박경대

cabin1212 2018. 10. 14. 06:47

천재일우(千載一遇) / 박경대



 

학창시절, 동물원으로 소풍을 갔을 때였다. 맹수우리를 관람하던 중 호랑이에게 절을 하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을 보게 되었다. 그 광경이 신기하여 왜 그러시냐고 여쭈었더니 범은 산신령이야라고 하였다. 우스꽝스러웠지만 할머니의 진지하신 모습에 웃을 수가 없었다.

호랑이에게 관심이 가지게 된 것이 그즈음이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우리나라의 산에 아직 호랑이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동물원 직원과 연세가 많으신 분들에게 두루 물어 보았지만 실제로 야생의 호랑이를 본 사람은 만날 수가 없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그러한 자료를 찾기도 어려웠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을 뒤지다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잡힌 적이 있다는 기록을 보게 되었다. 그것이 한국에서 목격된 마지막 호랑이라고 하였다.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동물로 대접 받는다는 기록은 여러 곳에 있었지만 야생호랑이가 있다는 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만큼 만나기 어려운 동물이어서 할머니는 산신령이라고 하셨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야생호랑이가 없다는 확신을 하고 난 뒤에는 호랑이에게 가졌던 호기심은 그만 흐지부지해졌다.

제대 후, 우연히 일본의 동물사진가 길야신의 책을 보게 되었. ‘밀림의 왕자라는 제목으로 인도에서 야생호랑이를 촬영한 사진집이었다. 그 책과 만남의 순간, 잊고 있었던 호랑이에게 다시 매료되고 말았다. 책장을 넘기며 기껏 산이나 들에서 곤충을 찾아다니고 철창 속 동물을 촬영하는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작품집을 구입하여 직장 동료에게 번역을 부탁하였다. 책을 여러 번 정독을 하였는데 읽을수록 야생의 호랑이를 만나보고 싶어 인도로 떠나는 꿈을 꾸기 시작하였다.

조금씩 돈을 모아 방학을 이용하여 가기로 마음먹었다. 당시에는 해외여행이 자유화가 되기 전이라 나가는 것이 힘들었지만 대학에 적을 두고 있어 비교적 쉽게 여권과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요즘은 없어진 반공교육과 신원조회를 받았으며 호텔과 비행기에서의 예절도 교육과목에 있었던 시절이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이라 두려웠고, 인도어라고는 나마스테한마디 인사말만 알고 있었다.

직항노선이 없어 방콕에서 환승하여 델리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두 시였다. 문도 떨어지고 없는 버스를 타고 안개 자욱한 새벽길을 달려 델리로 향하였다. 캄캄한 버스안의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자 갓 서른의 나이였지만 잔뜩 긴장되었다.

한참을 가던 버스가 숲길을 벗어나니 드문드문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시선이 부담스러웠고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호텔 간판이 보이자 버스를 세웠다. 방의 걸쇠를 걸고 편한 마음으로 긴장을 풀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독특한 향을 풍기는 인도의 아침을 맞았다. 창을 열고 밖을 보니 신비스러운 이국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지프를 빌려 호랑이 보호구역으로 출발했다. 비포장도로를 7~8시간 달려 도착한 그곳은 숲과 물이 조화를 이루는 원시림의 정글이었다. 수없이 마주치는 사슴과 영양들 그리고 물가로 나와 몸을 말리는 악어와 이름 모를 새들이 나를 흥분시켰다. 그러나 보름동안의 촬영에도 불구하고 호랑이를 볼 수는 없었다. 아쉬움이 많았지만 귀국일이 되어 돌아오고 말았다.

그로부터 2년 후, 다시 인도를 방문하였다. 며칠 동안 부지런히 찾아 다녔으나 번번이 허탕만 치고 있었다. 일정의 반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저녁 늦게 로지에서 맥주를 마시며 허탈함을 달래고 있는데 안면이 있는 관리인이 눈에 띄었다. 같이 한잔 하자고 불렀더니 무척 반가워하며 앞에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손짓몸짓으로 이어가던 중 관리인이 좋은 정보 하나를 일러 주었다. 자기 친구가 전날 바위산 근처에서 호랑이가 큰 영양을 사냥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맥주를 몇 병 하였지만 귀가 번쩍 띄는 소식이었다.

다음날 아침 카메라를 챙기며 오늘은 꼭 한 번 만나기를 기원하였다. 그곳은 지프로는 갈 수가 없어 코끼리를 타고 바위산으로 갔다. 네 사람이 타고 정글을 다니는 코끼리를 촬영의 편의를 위해 비용을 감수하고 단독으로 빌렸다.

이틀 전에 본 호랑이가 아직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며 산 주위를 돌아다니던 중 갑자기 코끼리가 진행을 멈추고는 괴성을 질렀다. 긴 코를 흔들며 앞발을 번쩍 드는 순간 코끼리를 다루던 조련사가 한 곳을 가리키며 타이거라고 낮지만 단호하게 외쳤다.

20m 저편에서 우리를 노려보며 으르릉대고 있는 동물은 분명 야생 호랑이였다. 그 옆에는 큰 영양 사체 한 구가 있었다. 어떻게 사진을 찍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더 접근하고 싶었으나 사냥감 옆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고 코끼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호랑이가 아직 그곳에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사냥감이 커 옮길 수 있는 크기까지 먹고 있는 듯하였다. 호랑이는 가끔 물을 마시기 위하여 근처 웅덩이로 가는 일 외에는 계속 사냥감 옆에 머물렀기에 다음날도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었다.

3일째 되는 날, 뼈 몇 개만 남기고 호랑이와 영양의 사체는 사라지고 말았다. 조금은 섭섭하였지만 이틀 동안의 만남으로 만족하고 그 곳을 떠났다. 그렇게 시작된 호랑이 찾기는 중국의 북동부를 비롯하여 7년 동안 계속하였다.

그 결실로 98년 호랑이해를 맞이하여 개인전을 가질 수 있었다. 전시회 중 어르신 한 분이 호랑이 사진 앞에서 한참을 머물면서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저분도 산신령을 만나는 중인가? 생각하며 왜 그러느냐고 장난스럽게 여쭈어 보았더니 기를 받고 있다고 하셨다. 기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어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작품이 좋다는 이야기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아직까지 호랑이를 직접 보았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 나의 경험은 천재일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귀한 사진이라니 기가 나올 법도 한데 나는 자주 접하니 늘 건강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