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반전(反轉) / 은종일

cabin1212 2018. 12. 3. 05:55

반전(反轉) / 은종일

 

 

 

여남은 평, 한 뙈기 텃밭농사가 일상의 에너지를 샘솟게 한다. 씨앗을 심고, 물을 길러다 주고, 싹이 나는 것을 보면서 설렘을 키워간다, 새 생명이 발아하고, 자라고, 결실을 맺는 텃밭의 경이로움과 쏠쏠한 수확의 재미, 이것이 아내의 한결 같은 텃밭 사랑의 변이다. 거름주기, 밭갈이, 파종하기, 정식하기, 솎아주기, 물주기, 김매기, 울타리 돌보기 등 넘치는 일거리도 그저 즐길 거리쯤으로 여긴다.

아내가 장만한 텃밭이어서 아내가 주인이고 나는 일꾼이다. 일머리 트는 것은 아내 몫이고, 힘쓰는 일이나 심부름은 나의 차지다. 종묘상회에 가서 상추씨를 사온 것도, 텃밭을 갈아엎어서 두둑을 만든 것도, 파종을 한 것까지도 일꾼인 나의 몫이었다. 너무 깊게 묻어서 발아가 늦다는 아내의 지청구까지도.

봄비가 그친 아침녘, 마음이 부추겨서 찾아간 텃밭에선 상추 새싹들이 부신 눈을 부비며 싱그러운 새 세상으로 얼굴들을 치올리고 있다. 흙을 밀어 올리는 소리에 두 귀를 두둑에 걸어본다. 자기보다 수십 배, 아니 수백 배의 무게를 떠밀어 젖히고서 나온 여린 싹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뒷날 파릇파릇하게 자란 상추 무더기 속에서 솎기 작업을 했다. 어린 싹을 솎아 참기름을 넣고 된장찌개에 비벼 먹는 식도락을 떠올리면서. 솎기는 촘촘히 있는 것을 군데군데 뽑아 성기게 하는 것이다. 솎아주어야 먹음직스럽게 자란다. 그냥 내버려두면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같은 환경에서도 어떤 것은 웃자라고 다른 어떤 것은 생육조차 부실하다. 끊어질세라 망가질세라 연한 상추 줄기를 잡고 조심스럽게 솎기를 하려다가 문득 움찔대는 손끝을 느꼈다. 순서가 뒤바뀐 생과 사의 현실 앞에서다. 잘 자란 것은 뽑혀나가고 시원찮은 것은 남아서 끝까지 살다가 어떤 것은 꽃피워 씨앗까지 품어낸다. 상추 입장에서 나의 손은 그저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는 저승사자의 올가미뿐이라는 생각에서다.

상추 솎기는 언제나 튼실하게 자란 것부터다. 부실한 것은 뽑아본들 먹을 것이 없으니 의당 밭에서 가장 잘 자란 것부터 솎는다. 생사의 뒤바뀜이다. 적자생존이 아닌 반적자생존이고, 자연선택이 아닌 반자연선택이다. 적자 입장에서는 인위적 처사가 그저 부당하고 부당할 것이다. 천부당만부당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이 작동하는 세상사이고 보면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친구 S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더니 정말 모를 일이더구나!" 하면서 들려준 그의 직장동료 K의 이야기다. 민간 기업에 근무하면서, 내부 경쟁자들은 경영간부나 임원진에 뽑혀 임기를 마치고 회사를 떠났지만, 뽑히지 못해 후배들에게까지 밀리고 치이면서 구박덩이로 남아 있었던 K였다. IMF때 막차로 승진되었다. '마른 걸레도 짜기' 경영으로 사장자리에 올랐다. 훗날 공기업 사장으로까지 발탁되었다. 자리를 옮겨서도 공기업 고유의 가치 경영보다 긴축경영이 자신의 소명이자 앞서는 가치라며 주특기인 '마른 걸레도 짜기'로 명성을 드높였던 인물이다.

K사장도 끝까지 남아서 이룬 대기만성이었다. 반전의 쾌거였다. 부실한 상추여서 미리 솎기지 않고 남아서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듯이, 일희일비,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기 경영으로 인고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는 생각 때문에 그의 기억에 밑줄이 그어졌던 모양이다.

상추밭에서 전화를 받는다. 아들보다 더 사랑스런 손자 녀석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유학을 그 녀석은 서울에서 지방으로 유학을 갔다. "많은 동기생들 가운데 공부 잘 했던 동기생은 크게 성공을 하지 못했단다."라는 나의 격려에도 "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못다 한 공부 대학에서 다 할래요."라며 물 받은 상추처럼 싱그럽게 웃는다. 그렇다. 실패는 곧 기회라고 했다. 반전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니까.

잘 자란, 웃자란 상추만 뽑혀나간다. 붉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그득하게 쌓인다. 뽑히지 않은 비실비실한 상추들이 내일로 가는 푸른 끈은 야무지게 붙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