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민달팽이 / 이필선
민달팽이 / 이필선
무언가 손에 잡히는 느낌이 물컹하다. 씻고 있던 배춧속에서 민달팽이가 나왔다. 땅에 떨어져 떡고물 같은 흙가루를 덮어쓴 민달팽이가 힘겨운 듯 기어간다.
애당초 내 인생도 민달팽이와 다를 게 없었다. 저처럼 벗은 몸으로 세상에 나왔다. 다르다면, 지금은 비 새지 않는 지붕 아래 산다는 것뿐이다. 민달팽이도 마구 눈비 맞으며 산 건 아니다. 제 몸 숨길 배춧잎이든 땅속이든 동가숙 서가숙하면서도 잘 살아 왔을 터다.
나도 민달팽이처럼 이곳저곳 경계 없이 살았다. 변변한 집 한 칸 마련하기까지 어두운 곳에서 은둔자처럼 기 펴지 못하고 산 세월이 길다. 겉껍질 없이도 밍글밍글 잘 사는 민달팽이와 달리 외투까지 껴입고 살았지만 속내는 엄동설한에 쩍쩍 갈라 진 손등처럼 메마르기 이를 데 없었다. 겨울 강어귀, 삭풍을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 쓰며 흔들리는 마른 버들잎처럼 날을 벼리듯 살았다.
또래들보다 이르게 결혼을 했다. 번갯불에 콩 튀기듯 급히 한 결혼답게 남편은 올곧은 직장도 없었다. 뒤늦게 직장을 갖게 된 곳이 낯설고 물선 서울이었다. 눈 뜨고 다녀도 코 베어 간다는 서울이고 보니 사는 것이 호락호락할 리 없었다.
가난한 신랑은 단칸방 하나 구할 돈조차 없었다. 본 적도 없는 반지하방을 구했다. 거대한 관 같은 지하방이었다. 말소리마저 쩡쩡 울려 퍼졌다. 남편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나왔지만 나는 부른 배를 잡고 곧 낳게 될 둘째를 생각하며 태연한 눈빛으로 남편을 설득했다. 적어도 그곳이라면 우리 네 식구가 발 뻗고 잘 정도는 될 성 싶어서였다.
전원주택 화보에나 나올만한 높은 부잣집 주차장옆 작은 방에 우리 보금자리를 틀었다. 주인집 여자가 외출할 때는 딸각대는 구두 굽 소리가 멈춰지고, 듣그럽기 짝이 없는 셧트문 올리는 소리가 차갑게 들렸다. 다시 두어 발짝 또각대는 소리가 멈춰졌나 싶으면 차 문이 열렸다. 이어‘부~릉!’소리와 함께 방문을 향한 배기구로 매연 가득한 꽁무니바람을 남기고 달아났다.
보증금이 조금 더 많은 곳인 반대쪽에는 날마다 전선 꼬는 부업을 하는 중년 아줌마 가족이 살았다. 보증금이 더 적은, 주차장 바닥보다 낮은 자동차의 배기구 방향에 우리가 살았다. 그 방과 우리 방이‘ㄱ’자를 이루고 살면서 코너에 부엌 하나를 칸 질러 두 집이 나눠 쓰고 있었다. 부엌이랄 것도 없는 곳의 경계인 벽에 내 정수리높이만한 곳에 작은 바람구멍 하나가 있었다. 그곳으로 가난한 정이 들락댔다.
그때 생애 처음으로 돼지 뼈로 만든 국을 접했다. ‘새댁~’이라고 부르는 소리와 함께 국그릇이 넘어왔다. 두 팔을 높이 들어, 낙타봉 만큼이나 수북한 돼지 뼈 위로 송송 썬 대파를 올린 뚝배기를 받아 내렸다. 받으면서 들던 낯선 음식에 대한 거부감과는 달리 구수한 냄새는 이미 내 후각을 자극했다. 두툼한 살코기를 다 덜어내고 앙상하게 남은 뼈만 우리고 또 우려내기를 반복했을 돼지뼛국이었다. 그 생경한 우윳빛 돼지뼛국 맛으로 집 없는 세입자 민달팽이들은 그렇게 더불어 살게 되었다.
날이 거듭되어 주인의 외출시간을 알아갈 즈음, 낮에는 아기를 업고 가게 앞 볕 바른 곳에서 서성댔다. 주인이 나가고 나면 직접 닫아주는 호의를 마다하고 종일 셧트를 올려놓거나 여자가 돌아와 주차하고 나서야 셧트를 내리고 방으로 들어가고는 했다.
그곳에서 사는 내내 남편은 녹초가 되도록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건조해진 몸에 자신을 지키는 하얀 점액질을 쏟아내어 다시 무장하는 민달팽이처럼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나기를 거듭했다. 밀린 피로를 잠으로 대신하고 태연히 또 이튿날을 맞이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제 몸 지킬 껍데기 하나 없이 알몸으로 기어 다니는 민달팽이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이었다.
첫돌 지난 딸을 데리고 상경해서 둘째를 그 집에서 낳았다. 출입문이라야 방문 한 짝뿐인 방이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 올 먼지와 매연이 진저리나도록 싫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테이프와 비닐, 얇은 이불 등으로 문바람을 막아내는 게 일과인 듯 살았다.
작은 아이가 6개월 되던 때였다. 문을 열면 해를 바로 볼 수 있는 곳으로 미끄러지듯 이사를 했다. 그 날,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가느다란 전선 꼬는 부업을 내게 가르쳐 준 돼지 뼈 민달팽이 아줌마가 울었다. 그녀는 적시고 있던 습기를 죄다 잃어버린 양 건조한 모습을 한 채 눈물을 감추느라 등 돌려 우리를 배웅했다.
바퀴가 도사리고 있을 것 같던 어두운 곳에서 벗어 나왔지만, 그곳 역시 단칸방에 곤로 하나 겨우 놓을 수 있는 좁은 부엌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구중궁궐이 부럽지 않았다. 민달팽이가 그릇을 기어 타고 다녀도 잘 모를 만큼 어두컴컴하던 부엌에서 지상으로 올라왔으니 무엇인들 부러웠을까. 부엌문을 열고 나가 모퉁이에 고추장 항아리를 놓아둔 곳에 햇살이 들었다. 작은 장독을 투과한 따사로운 기운을 고스란히 받아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후로 좀 더 나은 공간을 향한 희망으로 불만 할 겨를조차 없이 살았다. 오직 뼛속 힘까지 다 그러모아 사느라 이를 악물었다. 다른 도리가 없었다. 죽은 듯 웅크리고 있다가 눈치껏 내 길을 갈 뿐이었다. 남편을 탓할 일도 아니었다. 애초에 호화로운 지붕을 달고 다니는 달팽이 같은 사람을 만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저 주어진 현실을 감당하기 위해 묵묵히 제 갈 길을 찾는 민달팽이처럼 기어왔다.
얼마만큼 왔을까… 푸른 잎을 갉아먹다 지쳐 땅에 나동그라졌다가도 다시 곧추 기어가는 민달팽이처럼 나도 제법 갖춘 삶을 흉내 내며 살고 있다.
하던 일을 끝내고 민달팽이를 찾는다. 힘겹게 꿈틀대던 모습은 어디 가고 그 새 말간 몸으로 수돗가 옆 장독대를 향해 가고 있다.
길고 어두운 터널 같은 시간을 벗어나 무연히 사는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