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마지막 미소 / 박헌규
마지막 미소 / 박헌규
가슴이 덜컹했다. 혹시 밤새 무슨 변고라도 있었는가? 이른 새벽에 고모님이 급히 나를 찾는다는 전화 연락이 왔다.
고모는 올해 일흔다섯의 나이로 병원에 계신다. 삼 년 전에 수술한 암 덩이가 완전히 죽지 않고 되살아나 온몸에 전이가 되어 담당 의사의 말로는 짧게는 보름, 길면 한 달이라고 했다. 그러나 병실에서 뵌 고모님의 의식은 너무나 또렷했다.
"조카야 어젯밤에는 죽은 너거 고모 아재가 꿈에 나타나서 난데없이 등산을 가자고 하더라. 한참을 따라갔더니 '입산 금지'라고 쓰인 철망이 앞에 막혀 영감쟁이는 그 위로 넘어가고 나는 그냥 돌아왔다. 그런데 다시 온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이번에는 따라가야 될 것 같다. 니가 바쁘지만, 내 들어갈 집터 하나 마련해 다오."
평소에 고모는 좀 별나다 싶게 집 타령을 많이 했었다. 당신 사후에 가야 할 세 평짜리 작은 유택하나 마련해 두지 못한 것에 대해 순탄치 못한 지나온 삶을 반추하듯 한탄 섞인 푸념을 자주 늘어놓곤 했었다. 그때마다 내가 걱정하시지 말라고 했더니, 오늘 아마 그 숙제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피골이 상접한 얼굴, 복수가 차서 손닿으면 금방이라도 어떻게 될 것 같은 배를 보면서도 고모가 간밤에 철망을 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고모부가 다시 온다.'라는 말이 자꾸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고모는 일찍이 남편 여의고, 슬하에 딸 하나를 데리고 친정집 곁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측은지심이 우러나올 정도로 외롭고 힘든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고모가 달포 전에 심한 감기 증세로 딸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주사한대 맞고 약이나 한 봉지 받아서 집에 돌아갈 줄 알았다. 종일토록 좁은 병실에서 소독약 냄새 맡으며, 천장만 바라봐야 하는 신세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병원에 온 지 이틀 만에 일반병실에서 중환자실을 거쳐 이제는 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완화동 병실까지 왔다.
완화병동은 이름과는 다르게 한 번 들어가면 제 발로 걸어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곳, 이승에서 갈 수 있는 마지막 병실이다. 저승 문이 열릴 때까지 잠시 머무르는 대기실이다. 뚜렷한 치료, 주사도 약도 없다. 이따금 간호사가 찾아와서 저승사자가 다녀간 흔적을 더듬는, 의례적으로 한번 휙 둘러보고만 가는 곳이다. 오직 하느님, 부처님의 대변자인 것 같은 호스피스가 옆에 앉아 어린 아기 잠재우듯이 듣기 좋은 고운 말만 골라 해 주는 것뿐이다. 이곳에서 죽으면 모두가 천당에 가고, 극락왕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대기자의 표정은 모두가 평안하고 천사와 같은 모습이다.
잠시 잠에 빠진 고모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저승 문턱 앞에서 피어나는 미소, 마지막 생의 끈을 놓아 버려서일까. 어떠한 가식도 섞이지 않은 맑고 고운 미소이다. 저 미소 뒤에는 사랑하는 가족, 일가친지들과 영원한 이별의 아픔 있다는 것을 고모는 알고 있을까?
이승과 저승의 경계 문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천근만근 납덩이를 매달아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오래 전 저세상으로 가신 아버지의 멋쩍은 웃음, 미소가 떠올랐다.
아버지도 돌아가시기 전 두어 달 동안을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날 밤은 내가 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었다.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병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졌을 때 갑자기 아버지의 침상이 움직였다. 거동이 불편해 화장실 가는 걸음도 혼자서는 해결치 못하던 아버지가 온 힘을 다해 버둥거리며 침상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침상 밑에 누워서 선뜻 일어나기가 싫었다. 잠든 척하고 실눈을 뜨고는 지켜보고만 있었다. 침상에서 겨우 내려온 아버지는 곧 넘어질 듯 비틀비틀하며, 맞은편 환자가 사용하는 사물함 서랍 속을 조심조심 뒤지고 있었다.
한밤중에 너무나 뜻밖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가슴이 떨려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혹시 다른 사람이 보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두려워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마 그때만큼 마음 졸여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다른 환자들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숨을 죽이고 조용히 하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졸지에 아버지와 나는 공범이 되었다.
아버지는 담배 한 개비를 훔쳤다. 그러고는 라이터를 잡았다. 아니, 여기서 불을 댕기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순간, 나의 몸은 강한 눌림에서 일탈한 용수철처럼 튕겨져 아버지를 향해 나아갔다. 급히 화장실에 가는 척 아버지 손을 낚아채고 입원실 밖 복도로 끌듯이 나갔다. 그리고 어린아이 어르듯이 "아버지!"하고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그때 아버지의 표정은 희미한 전등불빛 속이었지만, 너무나 생생하게 지금도 남아 있다.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가 자위행위를 하다 부모에게 들킨 모양처럼 어찌할 줄을 몰라 한참이나 겸연쩍어하다가 소리 없이 웃기만 했다.
일흔아홉 살의 노인이 밤중에 사늘한 병실 벽에 기댄 채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 순박하고도 조용히 웃으시던 그 모습은 아직 세상 물정에 점염되지 않은 어린 아기의 표정과도 같았다.
건강할 때 아버지는 하루 세끼 밥은 굶어도 담배는 못 거른다고 할 정도로 담배를 가까이했다. 입원하고부터 담배 없이 견디기가 아마 당신 몸속에서 자라는 독기 어린 병마와 싸우기보다 더 어려웠으리라는 것을 내가 알았을 때는 이미 아버지는 이승에 계시지 않았다.
자식 앞에서 담배 한 개비 도적질한 것이 아주 큰 몹쓸 짓을 한 것처럼 무안해서 그날 이후 아버지는 나를 보면 평소에 하시던 "니 바쁜데 또 왔나" 하는 말씀 대신 그날 밤 그 미소로 대신했다. 그리고 한 달여 뒤에 아버지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그 미소를 보이시면서 다시 못 올 먼 길을 가셨다.
비록 육신은 이승을 떠났고, 또 떠나겠지만, 아버지와 고모의 그 순진무구한 미소만은 내 가슴에 영원히 새겨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