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둠벙 / 윤승원

cabin1212 2019. 5. 23. 05:50

둠벙 / 윤승원  

 

 

 

오아시스 같은 그것은 논 언저리에 있었다. 논의 낙관 같기도, 동굴 같기도 한 주변엔 초록 이끼가 둥글게 테를 둘렀다. 거울처럼 맑은 물 위로 구름이 흘러가고 바람을 수를 놓았다. 키 작은 수양버들이 종일 긴 머리를 감고 있는 그곳을 둠벙이라 불렀다.

박 씨 아저씨네와 우리 집은 논둑을 사이에 둔 논 이웃이다. 둠벙은 아저씨 논에 있었다. 가뭄 땐 논에 물을 대기도 하고 흙 묻은 손이나 농기구를 씻기도 했다. 작은 연못엔 여러 가지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서 자연도감 같았다. 개구리, 물방개, 우렁이, 소금쟁이, 물땅땅이가 물풀 사이로 헤엄을 치는가 하면 실잠자리며 산제비나비가 물 위를 맴돌며 날아다녔다.

시골길은 산비탈 에움길이 아니면 농로가 전부다. 에움길에는 상여 집에 있어 무서웠지만 친구들과 어울렸을 땐 즐겨 걸었다. 그러나 혼자 일 땐 대부분 지름길인 농로를 이용했다. 이른 아침 등굣길엔 보리 이삭에 맺힌 이슬이 보기 좋았고, 하굣길엔 둠벙에 피어나는 물달개비나 부레옥잠, 생이가래를 보는 즐거움도 컸다. 어느 날엔 물뱀을 보고 기겁을 했던 적도 있다. 개구리밥이 모자이크처럼 수면을 가득 메웠는데 그걸 헤치면서 구불구불 다니는 것이었다. 뱀이 따라오기라도 하는 양 숨이 턱에 차도록 마을로 내달았다.

들일하다 새참을 먹을 때 어른들은 둠벙가에 자리를 잡았다. 특히 고수레를 할 때는 그곳을 빼놓지 않았다. 논에 물이 마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리라. 어린 나는 흰 고무신을 물에 띄워 놓고 뱃놀이를 했다. 까딱거리며 고무신 배를 띄우면 맞은편으로 바람이 밀어주었다. 어느새 수평선이 펼쳐지고 나를 실은 흰 돛단배가 마음의 물결 위를 떠가곤 했다. 가을걷이가 끝날 즈음에는 미꾸라지를 잡았다. 씨알이 굵은 미꾸라지는 오래 두면 이무기가 되거나 용이 된다고도 했다. 비가 오는 날엔 정말 이무기가 승천하는가 싶어 둠벙이 있는 들녘을 바라보기도 했다.

시골생활은 지루하고 때로는 힘들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농사일을 도와야 했고 일이 없을 땐 종일 심심했다. 농번기 땐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는 기차를 타고 멀리 도회지로 떠나고 싶었다. 나는 자주 둠벙을 찾았다. 그곳에 가서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친구들과의 언짢은 일들도 풀어졌다. 물속을 들여다보면 열두어 살 계집애가 새초롬히 일렁이고 있었다. 그럴 때면 들녘 끝으로 아스라하게 기차소리가 지나갔다.

박 씨 아저씨는 밤낮없이 술에 절어 살았다. 어느 날, 건천 오일장에 소 팔러 갔다가 다음 날 새벽에야 왔다. 그런데 넋이 빠진 사람처럼 헛소리를 하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팔다리는 가시에 긁힌 자국에다 피투성이가 되었으며 옷은 온통 젖었고 진흙범벅이었다. 허리춤에 있어야 할 소 판 전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천날 만날 술만 퍼마시더니 차라리 죽으라며 아주머니는 악다구니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이후로 얼마간 아저씨는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앓아누웠다. 도깨비에게 홀렸다는 것이다. 물웅덩이라고 해서 다리를 걷었더니 가시 구덩이였고, 가시밭이라고 해서 옷을 내렸더니 물웅덩이였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전대를 흘린 모양이라고 했으나 평소에 노름을 좋아했던 사람이라 아무도 믿지 않았다. 도깨비에게 홀린 곳은 다름 아닌 그 집의 둠벙이었다. 그렇게 혼이 난 아저씨는 술과 노름을 멀리하고 농사에 열심이었다.

우리 마을엔 유일하게 아저씨네만 둠벙이 있었다. 유난히 가뭄이 길었던 어느 해 아저씨는 우리 논에 물꼬를 터주었다. 둠벙에서 흘러나온 물이 가문 논으로 들어갈 땐 그 고마움을 이루 표현할 수 없었다고 아버지는 두고두고 말했다. 그간에 두 사람은 툭하면 삿대질을 하며 싸우던 사이였다. 둠벙을 갖고 있었으나 가뭄에도 물길을 내주지 않으니 아버지는 괜스레 논둑을 타박하고 트집을 잡았던 것이다. 물꼬를 터준 이후부턴 새참으로 국수나 막걸리를 나눠 먹을 만큼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둠벙은 박 씨를 완전 바꿔 놓은 도깨비 웅덩이라고 소문이 났다.

영화 <마농의 샘>은 가뭄으로 빚어지는 끊임없는 다툼과 사건들을 다룬 영화다. 양치기 처녀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과 방관자들에게 복수를 한다. 샘물의 원천을 아는 마농이 물줄기를 바꿔버리자 마을 사람들은 가뭄으로 고통을 받는다. 주민들이 과거를 반성하며 기우제를 지내자 마농은 원한을 풀고 물길을 열어준다. 이후 샘물은 누구의 것도 아닌 주민 모두의 것으로 마을은 평화를 찾았다는 내용이다.

둠벙은 어디에서 물이 샘솟는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를 날이 없었다. 희한하게 다 퍼냈는가 싶어도 하룻밤 지나고 나면 다시 물이 채워졌다. 그렇다고 물이 하염없이 솟아 넘쳐흐르는 일은 없었다. 팔 할 정도가 차면 더 이상 차오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웅덩이가 신령스럽다며 귀하게 생각했다.

계영배라는 술잔은 차면 기울어져 그 안의 내용물이 다 쏟아진다. 둠벙이야말로 그런 과유불급의 이치를 제대로 가르쳐준 존재였다. 그런 영향을 받은 것일까. 나는 어릴 때부터 남아서 버리는 것보다 오히려 조금 모자란 상태가 편했다. 남으면 어딘지 불안했다.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모자람이 근검절약을 몸에 배게 만들어준 건 아닌가 싶다. 둠벙이 가르쳐준 지혜이다.

가끔씩 버스에서 한 정거장 전에 내려 시골길을 걸어간다. 봄이면 노란 양지꽃이며 흰 조팝꽃이 여름엔 까치수염이며 나리꽃이, 가을엔 은빛 갈기를 휘날리는 억새 길은 언제 걸어도 정겹다. 그러다 둠벙이 있는 논 옆을 지나가게 되면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난다. 두런두런 하루의 피곤을 씻어내던 사람들이며, 가문 논으로 흘러가던 물줄기며, 고무신 배를 띄우던 일들이 떠올라 걸음을 멈추게 된다.

어릴 때 둠벙은 엄청 크게만 보였는데 지금 보니 한아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옛날은 그대로인데 내가 너무 먼 곳까지 와버린 것은 아닐까. 꿈을 잃어버린 것 같아 쓸쓸해진 등 뒤로 멀리 기차소리가 지나가고 둠벙가에 어린 소녀가 동그마니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