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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불편한 배려 / 최현숙

cabin1212 2019. 8. 11. 06:40

불편한 배려 / 최현숙


 

 

나이 탓일까 아이들을 보면 사랑스럽고 예뻐서 자꾸 눈이 간다. 통통해서 귀여운 아이, 콧물 범벅에 눈물로 얼룩진 아이,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아이, 불만을 품어 뾰로통해 입이 나온 아이도 다 예쁘다. 그런데 이런 예쁜 아이들이 어른들 때문에 상처받는 모습을 보면 마음 아프다.

지난 5월의 일이다. 초등학교 독서수업이 있던 날 , 2학년인 준이가 평소보다 기운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듯 울먹이는 얼굴로 들어왔다. 아이를 안아 주면서 어찌된 일인지 물어 보았다.

준이, 무슨 일이야?”

선생님, 나도 하늘나라에 있는 아빠한테 편지 쓰려고 했는데…….선생님이 나는 아빠가 돌 아가셨으니까 안 써 와도 된데요

5월은 가정의 달이라 학교와 사회에서 많은 행사가 열린다. 가족의 의미와 행복한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서 일 것이다.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는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님께 편지쓰기 행사를 한다. 그래서 준이네 담임선생님도 아이들에게 아빠에게 편지쓰기과제를 내 주셨나보다. 그런데 문제는 가족의 형태가 다양화 되면서 아빠와 살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가족에게 또는 부모님께 편지쓰기가 아닌 아빠에게 편지쓰기라고 콕 집어서 주제를 정해 놓았다는 거다. 선생님도 그 주제가 지닌 문제점을 뒤늦게 인식한 듯 준이를 배려한다고 생각해선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준이는 아빠가 돌아가셨으니까 안 써 와도 된다.”

하지만 이 말은 준이 마음에 큰 못이 되어 박혔다. 같은 반 친구들 앞에서 갑자기 아빠 없는 불쌍한 아이로 낙인 찍혀 버렸다.

준아, 너네 아빠 없어?”

돌아가셨어, 엄마랑만 살아? 진짜?”

아이들의 호기심 가득한 질문은 준이에게 상처를 남기는 돌이 되어 날아가 가슴에 푸른 멍을 남겼다. 준이는 학교에서 아빠가 없다는 이유로 놀림받을까봐 불안해졌다. 자기 잘못도 아닌데 단지 아빠가 없다는 이유로 위축되어 있던 아이인데 공개적으로 아빠 없는 아이가 되어버렸으니 준이가 행여 스스로 만든 소외감의 구덩이에 빠져 웅크리고 있게 될까봐 걱정된다.

요즘도 학교에서 그런 일이 있나 모르겠는데, 예전에 학기 초가 되면 가정환경 조사를 했다. 선생님께서는 많은 아이들 앞에서 자기네 집에 사는 사람, 전세로 사는 사람, 월세로 사는 사람?”, “신문 보는 사람?”, “부모님 직업은?”, “전화 있는 사람?” 등을 물으며 해당되는 사람은 손을 들으라고 했다. 일찍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수 없이 손을 들어야 했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질문은 너무 잔인했다. 어린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지 못한 어른들의 모질고 인정머리 없는 질문이었다. 부모가 없는 아이는 친구들의 동정어린 시선과 함께 쟤는 아버지가 없대!’, “엄마가 없대!” 라는 편견 속에서 출발해야했기 때문이다.

준이 엄마는 재중 교포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선족, 스물아홉에 준이 아빠를 만나 결혼하면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당뇨 합병증으로 혈액투석을 하는 시어머니를 모시며 남편과 행복한 신혼 생활을 하며 준이도 낳고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도 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희망을 키워가고 있을 때, 준이가 5살 되던 무렵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준이 아빠는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거푸집 붕괴 사고로 숨졌다. 그런 아픔 때문일까 준이는 아빠를 더 많이 그리워하고 엄마를 애틋하게 더 잘 챙기는 의젓한 아이다.

준이를 처음 만났을 때는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이었다. 첫날 <신기한 붓>이라는 그림책을 읽어 주었다. 중국에서 전해져 오는 이야기인데 마량이라는 가난한 아이가 착한 마음씨 때문에 얻게 된 신기한 붓으로 배고픈 아이들에게는 밥과 옷을, 혼자 일하시는 할아버지에게는 황소를 그려 주었다. 마량의 신기한 붓으로 그림을 그리면 무엇이든 그리는 대로 살아 움직였기 때문이다.

준이에게 신기한 붓이 생긴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신기한 붓이 생기면 , 아빠를 그려서 다시 살아나게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아빠가 죽었기 때문이에요. 아빠랑 같이 축구하고 싶어요. 아빠랑 축구하는 아이들보면 부러워요. 우리 집에는 아빠가 안경 쓰고 웃고 있는 사진이 있어요. 이런 생각하니까 아빠가 더 보고 싶어요.”

준이의 말을 들으니 어찌나 가슴이 먹먹하던지 할 수만 있다면 하늘나라에 가 계신 준이 아빠를 찾아 준이에게 데려다주고 싶었다.

준이에게 가족이 제일 소중하게 여겨지는 때는 엄마랑 아빠 산소를 갈 때라고 한다. 왜냐하면 아빠가 곁에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란다. 자신은 아빠를 많이 닮았기 때문에 엄마한테 잘 할 거라고 했다.

준이의 가정 사정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림책을 통해 준이의 마음에 고여 있던 생각을 알고 나니 더 안타까웠다. 그날 밤 준이와 엄마는 서로를 껴안고 보듬으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아들이 받았을 상처와 아픔이 가여워서, 준이는 자기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엄마를 위로하느라 말이다.

준이는 하늘나라에 계신 아빠한테 자기가 엄마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편지를 쓰려고 했단다. 꼭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편지를 써야하냐고 되물었다. 준이처럼 여린 아이에게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을 한 담임 선생님의 태도는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저지를 수 있는 실수이기도 하다.

준이와 같은 아이들은 아직 마음의 힘을 키우지 못한 상태이니 어른들의 실수에 상처를 받아도 어른들을 미워하지 않고 그저 마음 깊이 상처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문제다.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자기만족을 위한 배려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준이의 눈물이 가르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