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등(背) / 최양자

cabin1212 2019. 9. 10. 05:59

() / 최양자

 

 

 

그 누구도 자기 등을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없다. 등은 몸 전체로 보면 반 정도가 채 되지 않고 모양이 단순하여 볼 것도 없다. 밋밋하여 민둥산이랄까. 등은 표정이 없고 과묵하며 화장으로 가면을 쓸 줄 모른다.

미셀트루니에는 뒷모습에서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고 했다. 그러니 진실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등은 많은 것을 품는다.

등은 인체의 등받이고 버팀목이다. 심장을 다치지 않도록 감싸고 반듯한 체형을 갖도록 한다. 등받이가 부실하면 몸은 균형을 잃고 넘어질 수 있다. 등 가운데 척추가 내는 길을 따라 우리는 살아가지 싶다.

등은 감각이 유독 뛰어난 듯하다. 황무지 빈 들판처럼 보이지만 촉감에 능숙하여 접촉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신체에 모든 피부의 보편성을 가졌음에도 타인의 손이 등을 터치하는 것은 하늘에 떠 있는 별 만큼이나 높고 깊다. 부모와 자식 간의 등을 어루만짐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지. 잘하고 있다고. 너를 믿는다는 용기의 말이 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에게 칭찬의 토닥임을 받으면 얼굴이 붉어지면서 인정해주는 것에 마음이 달뜨기도 한다. 그것이 어지 초등학교뿐이겠는지. 남녀 사이에 깊은 포옹, 가슴과 가슴이 불타기도 하지만 서로의 등을 어루만지면 손바닥이 전하는 사랑의 메타포가 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은? 사랑의 싹이 트고 꽃을 피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꽃 진 들판의 쓸쓸하고 허무하듯이 등은 침묵으로 말한다. 깊은 슬픔은 아무 소리도 없고 표정도 없는데 묵직한 흔들림이 느껴진다. 친구로부터 배신의 칼날이 등에 꽂히면 속울음으로 출렁거린다. 등 돌리고 돌아설 때 등은 황량한 들판. 서릿빛 같은 냉랭함은 칼 끝보다 더 아프다. 등이 보이는 말이다.

등은 사람이 짓는 새둥지 같은 것. 자식들을 부화시켜 세상을 향해 날게 한다. 우리는 누구나 부모의 등 맛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빠 목마를 타고 키가 열 배나 커져서 동네 골목 친구들에게 으스대며 자신이 대장임을 공고히 하기도 한다. 그 시절의 세상은 얼마나 멋졌는지. 신이 날 때면 엄마 등을 말 탄 것처럼 두 발로 구른다. 엄마는 기쁜 나머지 나의 엉덩이를 등 위로 높이 더 높이 추어주며 가슴 가득 하늘을 안도록 해준다. 등에 업혀 듣던 부모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작은 내 심장 소리를 되돌려 느낌으로 속삭이던 꿈같은 많은 이야기, 나만 아는 살갗의 언어다.

흔히 얼굴이 나이를 반영한다고 하지만 어림없지, 등이야말로 세월을 어찌 그리도 잘 아는지. 자식이 떠나간 등에는 검버섯 잡초가 무성해지고 물기를 잃어버린 등은 마른 바람 타고 오는 관심의 허기에 목말라한다. 어느 때는 쓸쓸해지고, 어느 때는 기다림에 지친다. 등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함인지 때때로 가려워진다. 더러는 대나무로 만든 차가운 효자손이 효자로 둔갑하기도 한다. 긁은 자리에 인설이 피면 허기는 더 늘어나는 것을.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무거운 것은 등에 부린다. 앞서 걷는 사람, 등이 걷는다. 등은 30도쯤 앞으로 굽었고 지팡이도 들려 있다. 그 등에 놓였을 일상이 보이는 듯하다. 젊은 시절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대공원을 헤맸겠지. 무엇을 보여주면 머리가 좋아질까. 제비처럼 먹이를 물어 나르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일상의 밥벌이로 하루 종일 등 한 번 못 펴고 기지개 한 번 켜기가 쉽지 않았겠지. 너무 오랫동안 밥 때문에 등이 기운 건가. 다리에 힘이 부쳐 걷는 것이 위태롭다. 앞선 사람의 등이 하는 말을 우리는 다 안다. 등은 타인이 보는 삶의 거울이므로.

등에는 무게로만 측량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함께한다. 유아원 다니면서부터 노란 가방을 멘다. 이러 자신 체중의 반이나 되는 책가방을. 그리곤 컴퓨터까지 짊어져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가벼운 기기를 손에 들고 다니면서 은행 일도, 시장도 보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친구에게 수시로 어디서나 연락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공간의 개념이 서로 물리며 돌아간다. 점점 기기는 신속하고 가벼워지는데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등은 더 무겁다. 가벼운데 더 무거운 역설적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의 일상. 변화의 바람이 너무 커서일까. 김소연은 한 글자 사전에서 등에 대해 말한다. 동물은 평화롭고 생선은 푸르며 사람은 애처롭다. 가벼운 것들에게 등은 더욱 짓눌린다.

등은 인간의 삶과 죽음의 침대다. 태어난 아기가 강보에 쌓여 아기 클립에 눕는다. 그때 등의 느낌은 알래스카 얼음 위가 아니었을까. 매트에 인공적인 온도를 넣었겠지만 자궁 속 온기를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탯줄이 잘리는 순간 푹신한 태반과 따뜻한 양수의 기억은 버려야 한다. 어쩌면 앞으로의 삶을 살아야 함을 암시 받을 수도 있겠다 싶다. 우리는 힘들면 때때로 등을 펴고 눕는다. 사람이 생을 마칠 때도 고운 수의를 입혀 똑바로 뉘어 작별한다. 제일 낮은 자리가 이리도 편안한 것을. 이제야 등을 펴고 눈을 감은 채 푸른 하늘을 보며 편안히 잠든다. 등은 삶과 죽음이 함께하는 곳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