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처방전 / 정하정
처방전 / 정하정
곱슬머리에 작은 눈, 튀어나온 광대뼈와 입, 좁은 이마에 작은 눈, 내 얼굴이다. 예쁘장함이니 균형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어릴 때부터 거울을 피했다. 남이야 나를 어떻게 보든 내가 내 얼굴을 보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대학교 2학년 여름 방학, 순천 선암사에서 일주일의 수련회를 했다. 마지막 날, 스님은 마루 위에서 먹을 갈아놓고 우리를 한 명 한 명 불러 대면하였다. 내 차례가 되어 올라가니 소속 학과와 이름을 묻고는 일필휘지로 천아부장(天娥不裝)을 쓰셨다. 첫눈에 마주친 스님의 기가 너무 셌는지 꼼짝할 수 없었다. 힘 있게 써 내려가는 글씨를 넋 놓고 바라만 보았다. 읽기는 읽겠는데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껌벅껌벅했다.
“천아부장, 하늘 천에 예쁠 아, 원래 예쁜 것은 꾸미지 않아도 되는 것이여.”
더는 물을 새도 없었다. 마당에서 꿇어앉아 기다리는 학생들 때문에 바로 화선지를 들고 물러나야 했다. 스님 눈에 내가 하도 못생겨서 위안을 주는 말이었을까 의아심이 들었다. 스님이 나를 보고 표현한 ‘천아’란 무엇일까. 필시 나에게 준 처방전일 텐데 병명을 알아내지 못했다. 남편은 스님이 성형수술 하지 말라는 말을 이렇게 써 준 것이라고 농담조로 해석하기도 했다.
“쓸데없이 웃지 마래이. 너는 너무 웃는 게 탈이라.”
초등학교 졸업하던 날, 담임선생님께서 내게 당부하신 말씀이다. 사람을 만나면 나는 눈웃음부터 짓는다.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말은 못하고 상대방에게 호의를 표현하는 길이 미소밖에 없었다. 힘들어도 웃음으로 대응했다. 그러다 보니 웃지 말아야 할 곳에서도 웃었다. 심지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도 웃었던 모양이다. 보다 못한 남편이 나를 한쪽으로 데려다가 왜 그리 웃느냐며 핀잔을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내가 웃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그냥 사람을 대했을 뿐인데….
박물관에 전시된 금동관음상의 미소를 본 날, 어렴풋이 ‘천아’를 읽었다. 눈은 반쯤 감고 입꼬리는 살짝 올라갔다. 천 년 이상 웃고 있었던 백제의 미소이다. 녹이 슬었든, 코가 떨어지고 없든 아무리 못난 얼굴이라도 미소 띤 얼굴은 바로 ‘천아’였다.
미소는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예술이라고 한다. 요즘 나는, 웃던 내 모습에서 스님이 ‘천아’를 보았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산다. 늘 웃으며 살라고 처방을 내렸던 모양이다. 그 처방전 아직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