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청(靑)노인 / 박헌규

cabin1212 2019. 10. 13. 06:34

()노인 / 박헌규

 

 

 

아침 운동을 마치고 거울 앞에 섰다. 근육으로 뭉쳐진 탄탄한 가슴과 하체, 아직 쓸 만한 몸이다. 그런데 내가 노인이라니……. 인정하고 싶지 않다.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동네 골목 안에서 만난 젖먹이 어린아이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공 기관에서 알리는 문서화된 공식적 노인(老人)이다.

두어 달 전에 우편물 하나가 배달되었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 농협에서 온 것이다.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원로복지대학입학에 관한 안내문이다. 원서도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지금껏 접해 보지 못한 생소한 알림 내용들, 긴가민가하면서도 끝까지 훑어보았다. 이면 말미에 진한 검은색 굵은 활자에 한 줄이 시선을 붙잡는다. 올해 65세부터 75세까지라는 입학 자격 중 나이 조건이다. 출생 연도를 되짚어 보았다. 내 나이 법정 만 65세이다.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 애써 외면해 버렸다.

며칠 후에 업무 추진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입학을 권유하는 내용이다. 입학할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나는 원로가 못 된다고 하니 나이 65세 이상 노인이면 다 원로라고 한다. 노인이면 다 원로노인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듯 들린다. 그렇다면 원로복지대학이 곧 노인대학이다는 말이다. 순간, 내가 벌써 노인대학 입학을…….가슴 한쪽이 휑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원로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분야에 오래 종사하여 나이와 공로가 많고, 덕망이 높은 사람이라고 밝힌다. 한참 동안 나 자신을 고비샅샅 톺아보았다. 이거다 하고 남 앞에 내세울 만한 공로는 쥐꼬리만큼도 없다. 덕망 또한 눈을 씻고 봐도 찾을 길 없다. 남은 것은 남들 다 가지고 있는 나이뿐이다. 나이, 누군들 마찬가지지만 어떻게 살다 보니 저절로 예까지 왔다. 결코, 자격증도 훈장도 못 된다. 자연의 섭리에 거역하고자 하는 뜻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노인(老人)이라는 말에 낯선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예순다섯 살, 현재 우리나라 법적 숫자상으로 따지면 노()를 피할 방법은 없다. 이다(), 아니다(不是), 선택의 여지가 없다. 유년, 청년, 장년, 중년, 노년, 이제는 더 나아갈 곳이 없다. 긴 벼랑 앞에 다가선 기분이다. 그래도 그렇지. 인생 100, 120세 시대니 하는 판에 65세에 노인이라는 말을 듣기에는 억울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숫자의 간극을 보면 한중간이다. 아직은 내 의지대로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고, 가슴에는 화끈거리는 낭만이 숨 쉬고 있지 않은가.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70대에도 아저씨, 아주머니라고 한다고 한다. 그네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특별해서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유엔에서도 현대 의학 기술의 발달로 장수 국가가 늘어나면서 0~17세 미성년자, 18~65세 청년, 66~79세 중년, 80~99세 노년, 100세 이후를 장수 노인으로 하는 새로운 인류 동계학적인 표준 분류법을 발표했다는 기사를 근년에 대면한 적이 있다. 이 기준으로 하면 현재 나는 말년 청년에 해당한다. 너무 과분한가. () 앞에 억지 추태를 부리는 것 같아 웃음이 나온다. 달갑잖은 전화, 원로복지대학 입학을 하고 안 하고는 내 마음이다.하고 자위를 해 보지만, 어째 뒷간 볼일 보도 뒤처리를 안 한 기분이 든다.

입학일 사나흘 전부터는 매일 문자와 전화가 번갈아 가며 왔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면 열한 번, 열두 번, 그 이상이라도 찍겠다는 심정이 느껴졌다. 지역 농협 역점 사업 추진의 고충을 장구하게 늘어놓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약해진 탓일까. 평소 조합에 들를 때마다 서로 안부를 묻고 지내는 면식이 있어 박절하게 거절하기가 뭐해서 급기야 첫날 하루 가 보고 원서를 쓰든지 말든지 하겠다는 묘한 마음을 전했다.

입학식 날.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를 들으며 식장에 들어갔다. 간단한 의식 행사가 끝나고 진행자의 지시에 따라 앞뒤, 옆 사람들과 데면데면 인사를 나누었다. 첫 만남이라 그런지 모두가 머쓱한 분위기 속에 위 아랫물 지듯이 마지못해 영혼 없는 수인사를 하고는 지정한 자리에 앉았다.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반전이라도 시킬 양인지 첫 시간은 우리 민요 가락 수업이다. 태평가가사가 흥겨운 반주와 함께 정면 스크린 화면에 뜨자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팔십여 명의 신명이 넓은 강당 교실 안을 그들먹이 채웠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 하나

성화를 내어서 무엇 하나

속상한 일이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후략)

 

앞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다들 머리가 허연 초로들이다. 그들 속에 내 모습이 희미하게 겹쳐졌다. 문득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내 얼굴이 있다. 벽면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 나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너라고 별수 있나. 너도 이제는 곱다시 노인이다.라며 비웃는 듯했다. 노인 적응 훈련소에 앉아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강사가 내 속내를 읽기라도 하는 듯 우릴 청노인(靑老人)이라 불렀다. 아직은 청년의 기운이 남아 있고, 청년의 사고로 살아가는 사람, 노인이 아니고 노인 전 단계라고 했다. 물론 듣기 좋아하고 한 말인 줄 알지만, 싫지는 않았다.

기왕지사 노인의 대열에 들어섰다지만, ()노인으로 오래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결코 뒷방 늙은이는 되지 말아야지!하며 가슴에 불끈 힘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