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또 하루가 / 박경대
또 하루가 / 박경대
새벽녘, 꿈결에 들려오는 종소리가 듣기 좋았다. 법음에 삼라만상이 열리고 잠들었던 생명들은 깨어나리라.
백결 잿빛 옷 휘날리며 선한눈매 반쯤감은 무념무상의 스님이 법고를 마주한다. 아래에서 쳐 올리고 위에서 내리치는, 크고 작은 가죽의 떨림에 내 가슴이 울린다.
부전스님이 내는 목탁과 불경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오는데, 아직은 깜깜한 새벽…….
먼 산 위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이 아름답고, 바람과 벗하여 춤추며 노래하는 풍경 소리 듣기 좋다.
대중 방 선반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발우와 선방 앞 댓돌 위에 벗어놓은 행자승의 흰 고무신도 보기 좋다.
돌계단 사이에 생명으로 피어난 조그마한 민들레가 사랑스럽다.
목마른 길손을 기다리며 흐르는 저 맑은 물과 너럭바위에 놓여있는 표주박에는 듬뿍 정이 담겼다.
햇볕을 맞이하면서 마루위로 늘어진 대발의 그림자가 보기에 좋다.
창틀에 턱 괴고 비 내리는 뒷마당을 본다. 장독위로 떨어져 만드는 빗방울의 동심원이 예쁘고 그 소리 또한 즐거움이다.
한적한 오후, 주지스님이 조그마한 주전자로 하염없이 부어주시던 작설차 향에 잠시 신선이 되어본다.
공양주 보살이 저녁을 준비하는 바닥 낮은 부엌이 정겹다.
아궁이에서 ‘타닥타닥’ 싸리나무 가지 타는 소리 듣기 좋고, 나지막하게 깔린 메케한 연기도 싫지가 않다.
일주문 근처의 감나무에 달린 홍시는 참으로 달콤했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과 흐느적거리는 다리가 흐뭇하게 느껴지던 1080배였다.
큰 스님의 처소에서 아련히 보이는 저 작은 불빛들이 내가 아옹다옹 하며 살던 곳인 것을 느꼈을 때, 왠지 웃음이 난다.
캄캄한 밤, 법당에 등 기대고 촛불에 일렁이는 관음보살의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또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