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꽃술 하나가 우주를 흔들다 / 남홍숙
꽃술 하나가 우주를 흔들다 / 남홍숙
집주변에 개미, 거미, 도마뱀이 많이 산다. 가끔 내 방을 자기들 집처럼 드나드는 개미와 거미는 맘대로 퇴치 할 수 있는데 도마뱀은 영리하고 기민해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가 내 방으로 들어오는 시점부터 내가 그에게 끌려 다니기 일쑤였다. 호주에서 3년여를 이렇게 살다보니 언제부터인가 나는 도마뱀을 좀 더 심도있게 지켜보게 되었고, 도마뱀은 내게 인생의 아포리즘을 툭툭 던져주었다.
실패는 절박한 시간을 불러오지요.
풀씨만한 도마뱀의 까만 눈과 마주쳤을 때 내 심장이 파동을 일으켰다. 도마뱀은 나의 침실로 침입했고 이불 속까지 파고들어 내 맨살을 타고 잠시 머물렀다. 아무리 도마뱀이라지만 어쩔 수 없는 뱀의 족속이었기에 내 팔이 그를 방바닥으로 내동댕이친 건 필연의 순간이었다. 그도 불시착의 긴박한 사태를 알아차렸는지 생명의 존속을 위하여 쏜살같이 책장 뒤로 피신을 했다. 경악하는 마음을 잠재우며 책장과 벽 사이에 막대기를 넣어 아래위로 휘저었더니 도마뱀은 별 수 없이 책장 밖으로 튀어나왔다.
도마뱀 한 마리가 나의 온 신경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뭇 인간도 급급(岌岌)할 땐 자동차를 들어 올린답니다.
왜 그랬을까. 벽을 급하게 기어오르던 도마뱀이 멈칫 멈추었다. 도마뱀의 눈에서 불화살이 흐르고 있었다. 눈이라고 해봐야 까만 점 두 개에 니스 칠 한 듯이 번뜩이는 거였는데 그것이 내게 섬뜩하게 다가온 건, 도마뱀의 심중이 그만큼 위급하게 달아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명이 나에게 귀속되어 있음을 직감한 도마뱀의 눈매가, 불화살이 촉발될 만큼 날카롭고 뜨거웠을 터, 까만 눈 하나가 치열하게 불꽃 튀는 생 자체였다.
도마뱀의 까만 동공이 내 마음 깊이 박혔다.
누구나 삶의 중압감을 업고 살지요.
도마뱀이 감쪽같이 숨어버렸다. 침대까지 옮겨봤지만 오리무중이었다. 암담했다. 그러다 침대 밑 앵글과 매트 사이에 꼭꼭 숨은 작은 발가락을 보았다. 1센티도 채 안 되는 공간에 납작 엎드려 있던 도마뱀은 숨바꼭질할 때 머리카락을 보인 아이같이 내게 발각되고 말았다. 발가락이 흔들리는 꽃술처럼 1밀리 정도 꼼지락거렸다. 발가락의 작은 몸짓에서 그만큼 숨죽이고 극도의 불안감으로 숨어 있었다는 심경이 묻어났다.
하지만 나의 행동도 도마뱀만큼이나 주도면밀하게 진행되었다. 한 시라도 빨리 내 방에서 도마뱀을 퇴치해야만 하는 중압감이 나를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마뱀이 피신하기 위해 맘 졸이는 만큼 나도 그를 몰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내 안식의 밤을 위하여, 도마뱀의 생명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한 생명의 생사 앞에서, 내 안식의 밤은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때로 맘과 맘이 닿지 못한 채 살지요.
내가 아주 가끔 도마뱀의 종족을 살해하는 건 순전히 내 탓만은 아니다. 도마뱀이 살아있을 때 방 밖으로 내보내려 했지만 막무가내로 나와의 접속을 기피만 하니, 어쩔 수 없이 파리채로 태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우리 집 현관 앞에는 유리병이 준비되어있다. 그것은 덫이 아니라 구조 병(甁)인데, 병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도마뱀의 몸은 자유의 몸으로 방생(放生)되는데 폭탄이라도 되는 양, 병의 입구와 맞닥뜨리지 않으려 하니 나는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따져보면 나를 합리화하는 패러독스다.
도마뱀이 절대로 나를 해하는 동물이 아님을 알면서도, 오히려 유해한 곤충을 잡아먹는 이로운 동물인데도, 내가 불안하고 불편하다고 도마뱀의 생명을 멸한 것, 거기다 시체를 거둬주면서 미안한 척 한 것, 그것은 도마뱀과 나 사이에 낀 운명적 아이러니였다.
미성숙함은 인간적 한계입니다.
파리채를 탁 내리치는 순간 도마뱀의 꼬리는 잘려나가 꼼질 거렸다. 아직 꼬리도 살아있고 도마뱀도 살아있었다. 몸 전체의 3분의 1정도가 잘려나간 도마뱀의 토막 난 몸체, 쉴 새 없이 꼼질대며 고통을 표출하는 꼬리의 통증, 솔직히 그 두 동강 난 신체의 아픔에 나는 동화되지 못하였다. 단지 내 창자가 꼼질거리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징그럽다고! 그때 타인의 아픔 앞에서 몰인정한 나 자신의 속내를 확연히 보았고, 나 스스로에게 잘린 도마뱀 꼬리만큼이나 수치스럽고 자존심이 상했다.
도마뱀의 몸이 두 동강 난 것과 동시에 침대앵글에는 도마뱀의 꼬리에서 나온, 내 핏빛과 똑 같은 붉은 피가 묻었다. 그러나 도마뱀은 꼼질대는 꼬리를 두고 미련 없이 휙, 달아나고 있었다. 잘려나간 꼬리 터에서 나오는 피는 더욱 농 짙었다.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기어가는 도마뱀의 꼬리 잘린 모습을 보며 나는 오장이 메슥거리기만 했고, 꼬리를 두고도 미련 없이 달아나는 그를 매정하다고 생각했지, 그의 강인한 생명력을 그땐 인식하지 못했었다.
가끔,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관찰 당하며 살지요.
어느 날 저녁, 방 앞 유리창 밖에 달라붙은 도마뱀의 모습은 선명한 모형도 같았다. 발가락이 꽃술 같았다. 네 개의 발가락에서 보라색 꽃술이 묻어나올 것 같았다. 내가 손으로 유리창을 톡톡 쳐도 도마뱀은 움직일 수 없는 실험대의 물체처럼 발바닥을 유리창에 달라 붙이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 동안 나는 도마뱀의 발가락 개수는 물론 그의 살결, 살색에 관해 훤히 꿰뚫게 되었다. 도마뱀에 관해 인터넷 검색까지 해보았다.
좋아하는 곤충이 귀뚜라미라는 것, 누군가는 도마뱀을 돈 주고 분양받아서 애완동물로 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보기만 해도 학질을 띠는 도마뱀인데 어떤 사람은 돌보아준다는 사실을 보다니, 살아가는 방식이 참 다양하다는 걸 느꼈다. 나 자신도 도마뱀의 귀여운 발가락을 진즉에 관찰했더라면, 그를 멸하기 위해 파리채까지 준비하진 않았을 거다.
내미는 손 하나에 우주가 흔들리지요.
뱀의 족속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내치려고만 하던 내 선입견이 어여쁜 발가락 하나로 인해 와해되었다. 평소 밉게만 보던 사람에게서 굉장한 매력을 발견했듯이, 늦게 발견한 꽃술 같은 발가락 하나가 나의 온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도마뱀만 보면 냉혈동물같이 차갑게 변하던 마음이 따스하게 변하게 되었고, 도마뱀을 향해 사랑의 눈길을 보내주었다. 그러자 도마뱀도 알아차렸는지 유리창 밖에서 나에게 꽃술 같은 손을 조용히 내밀었고 우리는 서로 화해를 했다.
손 하나가 나의 온 우주를 흔들었다.
이제부터 도마뱀을 조건반사적으로 내칠 게 아니라 마음 한켠에 들이기로 했다. 내 삶 속에 들어온 어떤 구차하던 것들도 돌이켜보면 다, 내 삶을 풍요하게 채워주는 소중한 운율이고, 미워하던 것들은 편협한 나의 마음 때문이지 절대적으로 미운 자들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때로 나의 지능을 능가하던 도마뱀의 본능을 보며 살아갈 의지가 그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신실한 속성을 보았다. 존재의 생명을 부여잡기 위하여 때로 쫓기고 피신하면서 자신의 몸의 3분의 1을 잃고도 피 흘리며 살려고 애쓰는 흔적은 내 과거의 상처이기도, 지친 삶에 몸부림치던 나의 애잔한 모습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