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산 사람의 밥 / 권현옥

cabin1212 2020. 4. 2. 06:14

산 사람의 밥 / 권현옥

 

 

 

누구야 빨리 받지 않고……

속으로 핀잔이 올라오려는데 구석에 놓은 내 가방이 생각났다. ‘혹시 동생 핸드폰 소린가 하면서 가방을 가만히 들어보니, 맞다.’

“OOO핸드폰입니다. 저는 언니 되는 사람인데요. 실례지만 어떻게 되시죠……. , 그러시군요, 실은…… OO이가 오늘 새벽 세상을 떠났거든요…… 심근경색으로요……

병원 관계자는 치료비와 입원비 정산을 요구했고 장례 관계자는 가족을 쫓아다니며 일사천리로 무언가를 선택하게 했다.

조문객들이 오기 시작했고 식당에서는 밥이 차려졌다. 육개장과 무홍어무침, 전과 떡, 그리고 음료수와 술, 과일, 어딜 가도 똑같은 음식이 차려졌고 가족들은 충격과 슬픔을 생으로 둔 채 문상객을 맞아야 했다.

밥으로 대접하지 않는다면 조문객들은 고인을 위해, 고인과 관계된 가족과의 인연을 위해, 얼마의 위로의 시간과 대화의 시간을 필요로 하겠는가. 어쩌면 얼마를 넣어야 할까를 고민하고 흰 봉투를 들고 서 있는 시간보다도 더 빨리 스쳐지나갈 타인의 죽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상이 차려지고 육개장에 밥을 말고, 먹는 둥 마는 둥 하지만 먹어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일 게다. 그러면서 사망의 경위를 묻고 병에 대한 경험과 지식과 위로를 보태어, 이 슬픔도 그 많은 일과 중의 하나라고 넌지시 죽음의 무게를 덜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릴 적 상갓집에서 사람들이 밥을 먹고 떠들고 술을 먹고 슬픔을 잊고 있는 모습이 의아했다. 그러나 조문객으로 드나들면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구나하고 쉽게 이해하게 됐다. 그러나 오늘 나는 조문객이 아니다.

오래전 어느 원로 소설가가 자식을 잃고 며칠 후에 밥을 먹다가 어찌 자식을 잃은 에미가 배가 고프다고 뱃속에 밥을 넣었단 말인가하고 목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토해냈다는 글이 생각났다.

어찌 동생을 잃은 자리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어제 저녁 동생이 중환자실에서 안정을 찾고 있다는 말에 금방 병원 밖으로 나가 동태찌개를 사 먹고 오지 않았던가. 점심 한끼 굶고 급하게 지방으로 내려간 내 배가 그리도 중해서 말이다. 동생은 있다 먹을게 옆에 놔둬하고는 그걸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제 내가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냐고 밥을 경멸했다. 배가 고파 올 일마저 경멸했다. 아니 더 이상 배가 고파 올 리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영정을 바라보며 믿기지 않는 현실을 부정하면서 울었다. 그러나 부정하면 할수록 익숙해졌다. 정말 너는 거기 있고 나는 여기 있구나.

하루 밤을 새우고 아침이 되자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너는 배가 고프지도 힘이 빠지지도 않지만 나는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힘이 빠졌다. 주위의 어름들은 산 사람은 먹어야 한다고 먹는 일을 재촉했다. 이 상황에서 밥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먹어라 먹어라하는지 어제는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제 떠밀려 육개장 국물을 마셨다.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뜨거운 국물이 싫지 않았다. 좀 살 것 같았다. 그래도 밥은 먹지 않으리라. 슬픔이 고집이 되어 버렸다.

입관을 지켜보며 오열을 터뜨리고 망하니 앉아 있다가도 조문객이 오면 나 역시 뭘 좀 드시라고 재촉했다. 식사를 하고 왔다는 사람에게도 그래도 뭘 좀 드세요라는 말만 계속했다. 누구라도 먹어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점심때가 되자 또 웃어른들이 산 사람은 기운을 차려야 한다고 자꾸 먹으라 했다. 억지로 육개장 국물을 한술 떴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밥을 한 숟가락 넣었다. ‘미쳤군, 동생이 죽었는데 지금 밥이 들어가고 맛있게 느껴지다니.’ 내 입에 진저리가 쳐졌다. 죽지 않을 만큼만 먹으라고 스스로 꾸중했다.

이제 보니 장례식장에서의 밥시간이란 하루 종일을 차지했다.

중간 중간 영정을 바라보며 슬픔에 빠졌다가고 먹는 일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저녁엔 나도 육개장에 밥을 말았다. 한 숟가락의 밥은 공복을 일깨우면서 와락 입맛을 끌어당겼다. 너는 안치실에 싸늘하게 누었는데 나는 밥을 먹는구나 하면서도 먹어졌다.

밥을 조금 먹고 나니 기운이 돌고 웃을 일도 사이사이 생겼다. 조문객들은 일상 속에 과정일 뿐이니 내가 그 속에서 슬픈 표정만 지을 수가 없었다. 몇 시간 안 되지만 잠도 잤다.

발인하는 날 아침 국물을 후루루 또 마셨다. 일정이 빡빡하기에 빈속으로는 힘들 것 같았다. 화장장의 뒷산은 이른 가을 햇살에 아직 진록임이 부끄러워 서둘러 흔들리는 것 같았다. 이글이글 춤추는 열이 연통 위에서 빛으로 반짝였다. 햇살 속에서 반짝이는 열과 나뭇잎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오열을 터뜨렸지만 누군가가 갖다 준 피로회복제를 마셨다. 정말 산 사람이 먹어야 하는 이 의욕이 치욕적이었다.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갔다던 대천 바닷가에 동생을 보내고 돌아오던 길에 따라온 동생친구들이 말했다. 동생과 잘 가던 칼국수집이 있으니 거기에 들러 먹고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같이 와준 친구들이 고맙기도 했고 동생이 잘 먹었던 칼국수니 그러자 했다. 어둠은 그 사이에 내려앉았고 빨간 칼국수는 가스 불 위에서 바쁘게 끓고 있었다. 기다리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잠시 밀쳐놓고 소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달짝지근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

그래, 우리는 또 먹는구나.’

밥을 먹을 수 있는 나는 앞으로 또 올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고 참아도 되고 폭발해도 된다. 그러니 나는 그것들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 슬픔을 잊기 위해 모두들 칼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있다 먹을게해놓고 가버린 동생의 밥그릇을 잊기 위해 나는 또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