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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파워와 품격 / 시오노 나나미

cabin1212 2020. 4. 11. 06:17

파워와 품격 / 시오노 나나미

 

 

 

얼마 전 이탈리아에서는 마피아 대책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던 판사 팔코네가 고속도로 위에서 폭발물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마피아의 기원과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발전에 대해서는 이탈리아 편지의 한 장을 할애하여 쓴 적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기로 하겠다. 그 책은 1972년에 씌어졌는데, 그것을 쓴 계기는 시칠리아에서 최초의 사법관계자로서 희생당한 수석검사 스칼리오네의 죽음이었다. 최근 20년 사이에 사법관계자의 살해, 그것도 마피아의 소행으로 보이는 사건은 무수히 많다. 적어도 20건 이상은 될 것 같다. 그리고 20년 전만 하더라도 마피아의 세력권은 시칠리아 서반부 뿐이었지만, 지금은 시칠리아 전부는 물론이고 남이탈리아의 칼라부리아 지방, 프리아 지방, 나폴리를 중심으로 하는 캄파냐 지방까지 잠식하고 있다. 지방마다 그 이름은 다르지만 어쨌든 무법적인 조직이다. 또한 그것은 이탈리아의 하반신을 마비시키는 난치병이다.

생각만 해도 소화불량에 걸릴 것 같아서 거기에 대해서는 쓰지 않기로 하겠다. 다만 로마 법무성으로 전근한 판사 팔코네가 주말마다 시칠리아의 팔레르모로 가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자극했다.

팔레르모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50대 중반에 살해당할 때까지 모든 세월을 마피아를 상대로 지냈던 그였던 만큼, 주말마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피아는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세력권 밖에서는 별로 사건을 일으키지 않는다. 죽일 생각이라면 대도시인 로마 쪽이 더 쉽고 간단할 것 같은데, 그들 나름의 어떤 의식(儀式)이 있는 모양이다. 팔코네는 법무성에서도 세 번째 정도의 지위에 있고, 신설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 마피아 종합대책국의 책임자가 될 것으로 지목되었다. 그런데 그는 팔레르모 공항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고속도로의 다리 아래 설치된 대량 폭탄에 의해 동행하던 아내와 경호원 세 명이 함께 토요일 저녁에 살해당하고 만다.

로마에서 타는 비행기 시간도 기밀 사항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정도는 첩자에 의해 간단히 알아낼 수 있다. 시한폭탄이 아니라 리모컨 작동에 의한 폭발이었을 것이다. 그런 위험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왜 팔코네는 주말마다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갔던 것일까.

내 아들의 말로는 시칠리아 사람은 결코 고향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아들은 매년 여름을 시칠라아에서 보낸다. 당연히 그에게는 시칠리아인 친구가 많다. 대지주인 농원 경영자의 아들도 있고 어부의 아들도 있다. 그 소년들은 성인이 된 뒤에도 먹고살기 힘들지 않는 한 시칠라아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아들은 말했다.

피렌체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절반은 일본인의 피를 가진 아들은, 그들과 같은 집착심이 자신에게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을 잘 알 것 같긴 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칠리아는 마피아에게 침범당하고 있다. 왜 시칠리아 사람들은 시칠리아를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변혁은 일부가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영화 표범(Il Gattopardo)을 비디오로 다시 볼 생각이 난 것은 거기에 대한 해답이 이 영화 속에 있을 것 같아서였다.

루키노 비스콘티가 감독한 이 영화는 1963년에 제작되었다. 원작자는 시칠라아의 명문귀족으로 그의 할아버지를 모델로 삼았고, 이 작품을 쓴 뒤 죽었다. 무대는 1860년대의 시칠리아. 이탈리아 통일 시기의 어느 공작가(公爵家)의 이야기이다.

스토리만 요약해도 정해진 원고 량의 열 배는 될 것 같아서 생략한다. 영화도 세 시간이나 된다. 그러므로 시간이 많을 때 천천히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영화이긴 하지만 책 한 권을 읽을 때처럼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만 짚고 넘어갈 생각인데, 그것은 북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온 인물이 공작(公爵)에게 통일된 후의 이탈리아 국회의원이 되어달라고 설득하는 장면이었다. 당신처럼 격변하는 시대에 대해 냉철한 인식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치사한 일에는 절대로 손을 더럽히지 않는 인물이 통일된 이탈리아에는 필요하다고 하면서.

그러나 공작은 거절한다. 자신은 과거와 너무 긴밀한 관계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그러나 토리노에서 온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다. 시칠리아 민중의 비참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공작 당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상원의원이 되어 적극적으로 건국에 참가해야 한다는 것이 북이탈리아 사람의 의견이었다. 거기에 대해 골수까지 남이탈리아 사람인 공작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시칠리아는 변하지 않는다. 시칠리아 민중 자신이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2500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다른 민족의 식민지였던 시칠리아에서는 누가 지배자가 되든 상황이 번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도 토리노에서 온 사람은 매달린다. 당신 같은 인물, 당신이 속하는 상층 계급의 사람이 소극적인 태도를 가지면 결국 별 볼일 없는 인간이 지배자가 되고 말 것이라고.

거기에 대해서는 공작도 공감했다. 사자나 표범이 사라진 뒤에는 남의 약점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챙기는 일에만 여념이 없는 자칼이 온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다. 그러나 자칼의 대두를 막는 사자나 표범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는 어디까지나 당당한 사자이며 표범이었지만, 당당히 물러나는 것만이 자신의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공작은 자신을 대신하여 어떤 인물을 추천한다. 공작가의 소유지 관리를 하면서 재산을 모은 자칼처럼 비열한 남자로, 돈도 있는데다가 눈치 빠른 졸부이다.

북이탈리아에서 일부러 남시칠리아까지 와서 설득을 시도하던 새 정부의 요인은 그 추천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공작을 중앙으로 발탁하는 것도 포기하고 돌아간다.

이 이야기로부터 100년이 지나고 있다. 시칠라아는 공작의 예견대로 되어갔다.

지배계급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몸가짐에서 얼굴까지 종족이 다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풍당당한 사람들이 여는 화려한 무도회는 사라지고, 바로크 건축의 화사한 저택도 하인이 없어지자 무너져간다. 그렇다고 해서 실업자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남의 집 일을 돕는 것보다는 공장 노동자 쪽이 더 인간적이 삶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아무도 하인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 공장의 운영을 능률적이며 건설적으로 수행할 책임 있는 인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마피아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공장이 실업자를 흡수하지도 못한다.

즉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것이다. 무서운 것은 모든 것을 바꾸어도 하나도 바뀐 것이 없는 그런 현상이 시칠리아뿐만 아니라 남이탈리아 전체에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사람의 열정으로는 손댈 수 없는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주 공무원의 아들, 즉 중산계급으로 태어나 마피아 상대의 업무를 수행할 목적으로 자식까지 두지 않았던 판사 팔코네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시칠리아가 애당초 단추를 잘못 끼우게 된 원인이 표범에 나오는 공작과 같은 시칠리아인이 적극적으로 공직에 나아가지 않은데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 시점에서 사자나 표범이 제일선에 나서서 힘을 길렀더라면, 자칼들이 대두를 저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두 종류가 있다. 바로 어떤 종류의 일을 태연하게 저지를 수 있는 인간과, 죽어도 할 수 없는 인간이다. 이 차이는 계급이나 교육 정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연령의 차이도 아니고 남녀의 차이도 아니다. 그렇다면 스타일의 차이가 아닐까. 다른 말로 하자면 품격이 될 것이다. 품격도 파워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는 순간, 그 사회는 자칼이나 하이에나의 손아귀에 떨어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