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속은 얼고 땀은 나고 / 권현옥
속은 얼고 땀은 나고 / 권현옥
움직였으므로, 생명체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물고기가 톡, 톡, 톡, 스타카토로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내 눈이라도 건드린 것처럼 나는 눈을 꿈뻑했다. 어항은 좀 촌스러웠지만 살아있는 것을 볼 수 있어 신선했다. 얼마 전 엄마는 도둑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정을 주었다가 어느 날부터 오지 않자 괜한 공허 하나 끌어안고 지내더니 작은 어향을 갖다 놓았다.
들여다보니 맘은 경쾌해졌는데 시야가 흐렸다.
“물이 흐리네, 물 갈아줄 때 수돗물 그대로 쓰면 죽으니까 하룻밤 가라앉히고 써요.”라는 나의 말이 떨어지자 엄마는 어항을 번쩍 들고 부엌으로 갔다.
바가지에 어항을 기울여 들이부었다. 물만 쪼르륵 어항에서 빠져나갔고 물고기는 따라 나가지 않았다. 유속에 놀라 필사적으로 역류해 벽을 붙잡았는지 어항 벽에 찰싹 붙어 있었다. 실치포 같기도 했고 어쩌면 시체라고 하기조차 성에 안 차는 작은 지푸라기 같은 거였다.
물을 갈아주려다 다 죽인 꼴이 된 것 같아 엄마와 나는 당황하였다. 바싹 얼어붙은 마음은 ‘수돗물은 안 된다’라는 생각만 붙잡고 있었나 보다. 정수기 물을 잽싸게 받아 어항에 한 컵을 들이붓고 말았다. 벽에 붙어 있는 물고기를 물에 띄워야겠다는 급한 맘이었다.
물고기는 벽에서 떨어졌으나 둥둥 떴다. 스타카토는커녕 가볍기 짝이 없는 무게로 배를 내밀고 떴다. 등도 있고 배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도 못할 만큼 작은 것이 배를 내밀었다.
“안 움직여요, 다 죽었나봐. 어쩌지.”
“아, 정수기 물이 너무 차구나.”
순식간에 이 작은 물고기를 다 죽이고 보니 죄책감과 절망감이 왔다. 엄마는 원래대로 되돌려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바가지에 있던 물을 다시 어항에 들이부었다. 물고기는 마찬가지로 둥둥 떠 있었다.
황망한 부유물만 바라보았다. 몇 초가 지났을까.
하나 둘 물고기가 움직였다 그리고 모두 움직였다.
‘찬 물에 기절했었구나.’
그 작은 물고기의 충격을 내가 모를 리가 없다. 얼기로 치면 우등생이었던 나다.
마늘 줄기 삶은 물에 동상으로 언 발과 손을 녹이는 일이나 언 맘 때문에 생긴, 죽기보다 싫은 수치심을 녹이려고 이불 속에서 애쓴 적이 많은 나였다.
초등학교 음악시간, 선생님은 풍금에 맞춰 한 소절씩 따라 부르게 하고 마지막 소절까지 다 부르고 나면 “누가 나와서 불러볼까” 하셨다. 아이들은 “권현옥이요” 큰 소리를 질러댔고 나는 그 순간부터 얼기 시작했다. 내 음은 자리에 앉아있을 때와 아이들 앞에 서 있을 때가 달랐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으로 자리에 돌아와 앉으면 왜 그렇게 얼어서 그렇게밖에 부르질 못했는지 속이 상했다. 마늘 줄기 삶은 물에 언 손발이 차츰 녹아간 것처럼 그렇게 적응이 되어 가리라 기대도 했다.
그러나 얼어버리는 반응은 여전했다. ‘누가누가 잘하나’ 방송프로를 우리 학교에서 녹화할 때 나는 떠밀려 마이크 앞에 섰다. 입이 얼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며 전주가 끝나갈 무렵인데도 첫 음은 언 채로 목을 막았다. 드디어 토한 건 눈물과 함께 “으앙”이라는 처참한 가사뿐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수치심을 숨기려 했지만 낯가림이라는 솔직한 놈은 늘 함께 다녔다. 이겨보려고, 어니 어울려 보려고 방송국 출입을 하기도 했다. ‘누가누가 잘하나’ 프로에 참석해서 손을 번쩍 들어 용감한 척도 했다. 그러나 얼마나 간절히 안 뽑히기를 바라면서 손을 들었던가. 얼고 난 뒤에는 자꾸 자신만 들여다보는 민망한, 그래서 나는 내 자신에게 조금씩 불편한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찬 기운과 어울린 반응―얼다, 난 그렇게 시원찮은 반응을 거듭하면서도 따뜻한 기운과 어울린 ‘어른’이 되었다. 따뜻하고 뜨거운 기운과 어울려 몸과 맘의 반응이 일어나고 드디어 ‘어른’이 되었다는 것, 완전한 성숙의 어울림이 아니라 해도 어화 둥둥 ‘얼운(15세기‒사랑하는)’ 님을 만나 ‘어른’의 대접도 받아봤으니 한 뿌리의 이 단어가 신기할 뿐이다.
내 삶을 관통해 온 시간은 이제 어우르는 온도도 조금 바꾸었다 보다. 덜 얼기도 하고 조금 더 빨리 녹기도 한다. 속은 얼어 있어도 겉으론 태연한 척도 해진다. 찬 기운에 견딜 수 있는 지방층도 두꺼워졌다.
그러나 아직도 톡, 톡, 톡 움직였던 여린 마음이 남았는지 진땀이 나오는 게 부끄럽다. 속은 얼어 있어 식힐 열도 없는데 땀은 왜 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