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복원 토기를 바라보며 / 강돈묵
복원 토기를 바라보며 / 강돈묵
여러 차례 박물관에서 토기를 관람하였지만 이번처럼 굽다리바리가 눈에 들어온 적은 없었다. 빗살무늬 토기에는 간결한 형태의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점과 선을 연속적으로 새겨 넣어 얼핏 보기엔 단순한 듯하면서도 복잡한 아름다운 무늬다. 유액을 바르지 않아 흙 위로 점과 선, 그리고 빗살무늬 같은 것들이 아무런 꾸밈도 없이 수수하게 드러난다. 그 무늬의 결을 맞추어 완벽하게 복원된 토기였다.
여러 조각으로 난 것을 정성들여 복원한 솜씨가 오늘 따라 나의 시선을 잡았다. 모양의 특이함이나 제작 기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는 터라 관심 밖이었고, 오직 그것을 복원한 솜씨에 나는 탄복하고 있었다. 분명 이것들은 발굴될 때는 산산조각이 되어 흩어져 있었을 것이 뻔하다. 한 곳에 모아 놓은 것이 아니고, 여기저기 흙 속에 묻혀 있었을 것이었다. 그것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수거해 잘 세척하여 접합시켰을 토기 수술 전문가들의 땀이 느껴졌다.
이렇게 복원된 토기는 여러 점이었다. 부서진 조각이 모두 수거된 경우도 있지만, 더러는 빠진 부분을 때워 넣은 것도 있었다. 수습된 조각들은 모두 원형에 맞추어 제자리를 찾아주고, 없어진 부분은 석고나 합성수지 같은 복원재로 처리하였다. 조각들을 이리저리 견주어 맞추었을 복원 참여자들의 모습이 일순간 뇌리 속으로 지나간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땀을 흘렸을까. 서두르지 않고 인내하며 작업을 수행했을 그들의 수고가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참을 복원된 토기를 살펴보다가 문득 견치석을 쌓은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지석의 여러 모양을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면서 석축을 쌓았던 기억이 고개를 든 것이다.
나는 건설공병으로 군 생활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짧은 기간이었다. 공병부대로 배속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훈부로 근무처를 옮길 때까지 몇 개월의 경험이었다. 전혀 경험이 없는 건공분야로 배속되어 칠 주의 교육을 받고 곧바로 건설 현장에 투입되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태풍과 홍수가 심하게 지나가는 바람에 매일 밤늦도록 막노동을 해야 했다.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마을 한가운데로 물길이 난 동네를 복원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끼니도 작업 현장에서 해결하면서 일했다. 동네의 흔적이 사라진 황폐한 곳에 수로를 다시 내고 집도 복원하며 농경지도 정리하여야 했다. 그 당시 졸병이던 나는 수로 복원 작업에 투입되었다. 무거운 돌덩이를 나르고 들어 올리고 돌려가며 맞추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며칠 작업을 하고나니 해머를 들 기운조차 없었다.
수로 복원 작업은 강둑을 견치석으로 쌓아 올려야 한다. 하나의 돌을 올리고 그것을 이리저리 맞추다가는 모난 부분이 있으면 해머로 두드려 돌출 부분을 제거하고 맞추었다. 그러다가 돌이 잘못 깨어지면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작은 돌로 틈을 채워나갔다. 크고 작은 돌로 고이고 채우며 둑을 쌓았다. 너무 큰 돌은 정을 대고 두드려 쪼개어 사용하였다. 대개의 경우 돌을 그대로 온전히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모두 우리의 생각에 따라 해머로 두드려서 깨고 쪼개고 하여 사용하였다. 비록 일의 속도는 늦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강둑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흐뭇하였다.
조각난 토기를 복원한 것이 어쩌면 그리도 견치석 쌓은 모양과 담았을까. 토기의 조각은 쌓아놓은 견치석의 축소판이었다. 제멋대로 금이 나 있는 모양도 똑같다. 토기를 복원한 사람들의 수고도 내가 견치석을 쌓은 수고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일어 한참 동안이나 토기 전시실에서 떠나지 못했다. 깨어진 토기를 맞추어 원형을 되찾는 작업이나 사라져버린 수로를 견치석으로 다시 만들어내는 일이나 모두 역사의 복원이었다. 한참동안이나 건설공병이던 때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토기 전시실에서 머물던 나는 번뜩이는 섬광에 눌려 해머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되었다. 그곳에서 황급히 빠져나오고야 말았다.
분명 달랐다. 토기 복원 전문가들과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들은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대하는 사람들이었다면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깨어진 조각을 최대한 원형대로 맞춰주려 노력했지만, 나는 있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나의 욕심에 따라 해머로 깨고 부스고 하며 견치석을 쌓았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삶의 태도를 유지하였다면 나는 아니었다. 내 생각에 어긋나면 망치로 두드려서 깨고 부스고 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비단 견치석 쌓기에 머문 일이 아니었다. 지금껏 살아온 삶이 너무 이기에 찬 것이었다. 나의 것, 나의 일만을 생각하고 모든 것이 내 의도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니 내 삶은 견치석처럼 망치로 쪼아놓아서 거칠고, 모난 곳이 많았을 것이다. 이 모난 부분들이 얼마나 많은 세월을 주위에 부딪치며 갈아야 조약돌처럼 매끄러운 돌이 될까.
금년 휴가에는 대학의 유물 복원실에서 실시하는 역사체험에 참가해서 토기 복원도 배워야겠다. 그러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내 가슴에 돋아난 이기의 모서리를 다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