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감동을 주는 글이 곧 재미있는 글 / 정호경
감동을 주는 글이 곧 재미있는 글 / 정호경
‘재미있는 수필쓰기’라 하고 보니 먼저 그 개념 규정에 당황하게 된다. 단순히 흥미 위주의 읽을거리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문학적 감동을 주는 향기 있는 문학수필을 가리키는 말인지 분명히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 문제는 어떻든 흥미(재미)없는 문학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왜냐 하면 문학의 생명은 흥미이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우리가 밤을 새워가며 소설을 읽는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재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 아무리 고상하고 근엄한 인생을 논한 고전이라 할지라도 지식과 교훈만이 있을 뿐, 재미가 없다면 누가 밤잠을 안 자고 읽을 것인가. 재미에는 반드시 감동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시의 경우는 어떠한가. 짧은 몇 줄을 통해 소설 한 권 분량 속의 인생을 표현하자니까 거기에는 은유나 상징 등 고도의 표현 기법을 구사하여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줌으로써 문학적 재미라 할까, 삶의 향기를 안겨 주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시는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재미를 가장 많이 맛볼 수 있다는 소설마저 우리의 손에서 서서히 떨어져 나가고 있다. 그러면 수필은 어떤가. 시나 소설보다 더 큰 문제를 안고 고민 중에 있다. 다시 말해 수필의 문학성과 흥미(재미)이다. 그렇다면 신변잡기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수필의 문학성이 구제 받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여기에서‘재미있는 수필 쓰기’라는 문제가 제기된 것이 아닌가 싶다.
말하기나 글쓰기에서‘재미’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후천적인 수련이나 노력 이전에 타고난 소질이 우선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는 관계 서적을 통한 연구나 노력으로 그 기능을 습득할 수도 있겠으나 고등교육을 통한 학식과는 거리가 먼 항간의 필부필부(匹夫匹婦)에게서도 재치 있는 익살을 듣기도 했던 기억을 상기한다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일이다.
나의 선친은 짤막한 한문 정도를 해득하는 정도의 서당 출신이다. 그런데 그분이 앉은 자리에서는 언제나 웃음판이 벌어진다. 이야기의 종류도 가지가지여서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장소에 따라 화제도 달라진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할아버지 제삿날에 제사상을 차려 놓고 새벽닭이 울 때까지를 앉아 기다리기란 여간 따분한 일이 아니다. 선친은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남녀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다.
옛날 어느 가난한 농민이 종일 논일을 하다가 해가 저물어 집에 들어와 며느리가 차려온 밥상을 보니 묵은 김치 한 가지뿐이었다. 그래서 얼른 생각난 것이 서까래 아래 달아매어 놓은, 말로만 맛을 보는 참게다리였다. 언제나 하는 대로 말하라고 며느리에게 시켰다. 며느리가 서까래 아래 매달려 있는 참게다리를 올려다보며“게다리”하면 시아버지의 밥숟갈은 입으로 올라갔다. 시아버지의 밥숟갈을 드는 것을 보고 며느리가 또“게다리”를 말했는데도 시아버지의 밥숟갈이 올라가지를 않아서 못 들은 줄 알고 한 번 더 “게다리” 하고 말했더니 시아버지는 콧등에 주름을 잡으며 “아가, 짭다(짜다).”하더란다. 농부 시아버지의 익살스러운 이야기를 통해 나의 선친은 가난 속의 즐거움을 우리에게 가르치려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말해 보자. 옛날 우리나라에서 장사를 하며 살고 있던 중국 사람이 이가 아려 치과에 가서 앓던 이를 빼게 되었다. 의사에게 값을 물으니 100원이라고 하면서 두 개를 빼면 150원이라고 하는 말에 장사머리가 잘 돌아가는 중국 사람이 그 계산을 놓칠 리가 없었다. 두 개 빼는 데는 50원이나 싼 맛에 괜한 생니를 하나 더 빼어 달라고 하더란다. 이는 중국인의 투철한 경제관념을 우리에게 알려 준 예이다. 선친은 주로 저녁 식사 후에 가족이 다 모인 자리에서 판을 벌여 사회, 문화, 경제, 교육, 시사 등에 관한 학술적인 강의가 아닌,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교육하였다.
나는 선친의 말재간이기보다 어려서부터 들어온 이야기를 통한 익살을 열심히 익혔고, 나뿐만 아니라 나의 형제 그리고 누이동생까지도 익살이 대단한 것을 보면 선친의 익살 재간을 형제자매가 공동으로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대단한 유산이다. 익살도 유전인가.
그런 유전성 때문인지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벌써 이태준의 재미있는 단편 ‘복덕방’을 읽었고, 중학 4,5학년 무렵에는 김유정의 해학성에 반해 버렸다. 그의 단편 ‘동백꽃’을 비롯하여‘봄․봄’ ‘금 따는 콩밭’ ‘소나기’ 등에서 많은 익살을 배웠다. 이 외에도 이상의 단편‘날개’와 수필‘권태’그리고 오영수와 오유권의 소설에서 인물묘사나 대화를 통해 재치 있는 익살의 맛을 보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수필에서는 그다지 영향 받은 작품은 없었으며 일본의 소설가이며 수필가인 우치다 햑켄(內田百間)의 익살이 또한 대단했는데, 그의 수필집으로는‘百鬼園隨筆集' ‘無弦琴' ‘鶴’등이 있으며 우리말로 번역한 수필집으로는 ’범우에세이선’에 들어 있는‘연주회 다음날’이 있다.
끝으로 다시 한 번 되풀이하거니와‘재미있는 수필 쓰기’에서‘재미’라는 말은 덮어놓고 웃기려고만 하는, 저속한 표현의 웃음거리가 아닌, 문학적 감동을 주는 향기로운 수필을 달리 표현한 것이라 함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수필에서 ‘재미’의 의미를 자칫 오해했다가는 품위 없는 코미디 대본이 되고 말 것이라는 말을 부언해 두고 싶다. 내가 웃기는 말을 했는데, 독자는 웃지 않고 발톱만 깎고 앉아 있었다면 그 염치없음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수필도 시, 소설, 희곡 등과 다름없는 문학의 한 장르임에 틀림없다면 여기 제시한‘재미있는 수필쓰기’가 의미하고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