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오르지 못할 나무 / 김선화
오르지 못할 나무 / 김선화
길을 가다가도 잘 생긴 나무에 반한다. 오르고 싶은 충동에 목을 주억거리며 높이를 재어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사이, 내가 저만치 윗가지에 올라앉아 여유를 부리는 것 같기도 하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라!”
이 말은 사춘기에 들어선 내게 어머니께서 즐겨 쓰던 말이다. 얼마나 들었는지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저 정도면 몇 걸음에 오르겠지.’ ‘저 나무는 밑동이 너무 굵어서 안 되겠어.’ 하는 정도를 가늠할 줄 안다. 어렸을 적 나무에 올라보았기 때문이다. 여성이 나무를 탔다니 의아해할 일이나, 남동생들과 어울려 자란 덕에 맛본 현상이다. 밤나무나 은행나무에도 올라보았지만, 감나무의 표피는 매끄럽지 않아 딛고 올라서기에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그래서 울안의 감나무에 자주 오르내리며 매미도 잡고, 목청껏 노래도 불렀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새빨간 홍시도 따먹을 수 있었다.
이처럼 나무 타기를 즐기던 나는, 오르는 나무에 스스로 접목되곤 하였다. 그래서 그 나무가 자라면 내 꿈도 덩달아 자란다고 생각했다. 목표지점까지 올랐을 때 몸을 휘감는 전율이란 그 어느 것과도 비교가 안 되었다. 나무에 오르는 쾌감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 맛을 아는 탓에 어머니의 나무에 대한 강론을 무조건 순응하기가 어려웠다.
오르지 못할 나무에 대한 해석은 자기 분수를 알고 처신하자는 뜻이 강하다는 걸 안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해보지도 않고 지레 포기하는 경우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다. 무모한 모험은 미리 헤아려 삼가야겠지만, 나는 결정적인 기로에 섰을 때 수없이 예의 그 나무를 떠올리며 나를 눌러야만 했다. 학업에 대한 열망이나, 너른 세계로의 동경, 그리고 청년기에 겪었던 사랑에 대한 열병 등은 모두가 그 오르지 못할 나무와 연관되어 있었다. 저벅저벅 올라가면 못 오를 일도 아니건만 어머니는 매정할 정도로 내게 단호하셨다.
오래 전, 첫 수필집을 엮을 때의 일이다. 모촌 선생은 내 원고뭉치를 들고 두 눈을 꼬옥 감으셨다. 그러고는 한 마디 물어볼 게 있다 하셨다.
“어떻게,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글 쓸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가? 난 그게 궁금해.”
실로 정곡을 찌르는 말씀이었다. 이제껏 그 누구도 그걸 물어오지 않았고, 나 역시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이다. 글을 왜 쓰는가? 또 어떠한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해서는 수없이 자문했지만, 내가 꼭 글을 써야할 사람인가 하는 자질문제는 따져볼 여지가 없었다. 그 정도로 뜻한 바를 향해 달려오기에 여념이 없었다고나 할까. 그러던 중 느닷없는 스승의 하문(下問)을 받아, 내면에 깔려있던 그 무엇이 뜨겁게 솟구치는 걸 느꼈다. 핏줄 앞에서도 내비치지 않았던 말들이 그렇게 켜를 이루었을 줄이야.
처음으로 그 육중한 말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바다의 괴물로 통하는 용오름이 해저바닥을 헤집듯이, 40년 가까이 응축시켜온 삭지 않은 기운들이 펄떡펄떡 살아 일어서고 있었다. 그건 굽이굽이 돌아온 세월에 대한 안타까움이고 가난했던 역사에 대한 반발이며, 또 그렇게 순응하며 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개인의 운명에 대한 회한 같은 것이었다. 작은 몸뚱이로 끌어안고 있는 삶의 편린들이 포화상태였다. 그러면서도 정작, 내가 글을 써야할 사람인가에 대해 의심을 품어보지 않은 점이 스스로도 의아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견했다.
걸어오는 동안, 수중의 것을 다 버린다 해도 이 기운만은 놓을 수 없다고 속으로 얼마나 울부짖었는지 모른다. 그건 자존심이었다. 현실의 악조건을 뛰어넘어 영혼을 걸러내는 작업은 온전한 나만의 보물이었던 것이다. 그것만은 세상의 그 어떤 훼방꾼이라 해도 침범할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이었다. 그러한 것을 어떻게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으랴.
토하는 듯한 내 음폭엔 이미 가는 떨림이 묻어있었다.
“방금 선생님 말씀을 듣고 저도 처음 생각해 봤는데요, 제가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점이 스스로도 신기합니다.”
그러자 선생은 안면 가득 미소를 띠며 목소리에 힘을 얹으셨다.
“아, 글을 쓰게끔 되어있는 사람이 안 쓰고 사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어!”
순간 나는, 말 못하고 여미어온 가슴속 멍울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그 어떤 길에서보다 넘기 힘든 가로막 하나를 넘었구나 싶었다. 그랬다. 이상(理想)의 세계를 향해 내달리지 못하는 답답함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조차 어려울 것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좀처럼 꺾이지 않는 딸자식의 기운을 꺾느라고 어머니의 고충은 어떠하였으랴.
몸통이 굵어 밑가지가 없는 나무 아래서는 아무리 올려다보며 용을 써 봐도 소용없는 일이다. 몇 발짝 오르다가 미끄러지기 일쑤다. 그러한 것을 재담 좋은 사람들은 도끼로 찍으며 오르면 된다하고, 또 사다리 놓고 올라가면 된다고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 길을 헤쳐 온 나로서는, 융통성이 없어 그랬는지 동경하는 세계란 아득하고 아득했다. 그래서 감당키 어려운 기운이 솟구칠 때면, 내 안의 뜰에 ‘오르지 못할 나무’를 한 그루 늘려 심었다. 그건 동경의 대상에 대한 그리움의 실체였다.
그런데 그 나무들은 세월이란 물기를 먹으며 묵묵히 나를 키웠던가 보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어느새 꿈꾸는 나무가 되어, 내 안에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어쩌면 그 덕에 지금 이만큼이나마 스스로를 다독일 능력을 안고 사는 게 아닌가 싶다. ⎯그 많은 말들을 책에 묶는 몇 편의 수필로 함축하고 있었는데, 그걸 알아보신 스승 앞에서 나는 하마터면 무너질 뻔하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르지 못할 나무 그늘을 서성이고 있을까.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의 가슴속에 자리 잡은 아늑한 초원을 그곳에서부터 울려나오는 숲의 태동(胎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