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치열하게, 황홀하게 지다 / 조재은
치열하게, 황홀하게 지다 / 조재은
노을 사진을 본다. 노을 속에서 그가 태어났다. 아니 억새 사진을 보니 그의 고향은 억새밭인가 보다. 섬에 가면 언젠가부터 그곳을 찾는다. 아무리 찾아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을 풍경인 줄 알면서도 시선은 한곳에 머물지 못한다. 혹시 『은은한 황홀』에 찍힌 그 순간을 한쪽이나마 만날 수 있을까 하여 눈길이 방황한다. 그의 눈에만 보였던 바람은 사진 속에서 영화처럼 움직인다. 빛의 조화, 오름의 곡선, 은은한 황홀이 아니라 눈을 밝히는 충격이다.
김영갑 사진작가.
잠들어 있는 오름을 셔터소리가 흔들어 깨우자 지금껏 지나는 사람에게 침묵하던 오름은 그의 열정적 구애에 모습을 드러낸다. 곡선을 가리고 있던 옷을 벗고 오름과 바다는 힘껏 그를 끌어안는다. 김영갑의 카메라 속으로 들어오려고 온갖 매혹적인 모습으로 유혹한다. 그는 기꺼이 그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주며 나를 다 가져가라, 환희에 차 절규한다.
“사진을 찍다 순교하겠다, 여한 없이 사진을 찍다가 웃으며 죽고 싶다.”(「이어도를 훔쳐 본 작가」 안성수)
순교란 말은 입 밖에 내면 안 되었다. 순교자의 흔적은 아주 오래도록 아프게 남아 있고, 그 삶은 후대 사람 기억에 각인되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김영갑은 햇빛이 만드는 생명의 신비를 카메라와 함께 몸으로 체험한다. 그는 바람을 연인같이 가슴에 안고 안개에 세포 하나하나까지 내 주며 뼛속까지 스며드는 안개와 혼연일치가 되는 절묘한 오르가슴을 느꼈다 한다. 자연과 깊은 교감을 나누고 예술의 엑스터시를 경험했던 김영갑. 외로웠던 그에게 신은 더 이상 필요한 게 없다고 생각해 자연의 순교자로 만드신 것인가.
“찰라刹那는 75분의 1초(0.031초)에 해당하고 모든 것이 찰나마다 생겼다 사라진다.”고 불교에서는 가르친다. 눈 한번 깜박여 본다. 숨 한번 깊게 들여 마신다. 이것보다 짧은 순간에 셔터는 눌러져야 한다. 찰나의 예술. 그가 택한 잔인한 예술의 속성이다. 숨 한번 못 쉬고 렌즈에 몰입했던 정적의 시간. 피 말리는 짧은 순간이라도 숨겨진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는 이 염원 한 가지를 이루려고 소진되어 가는 자신의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켈란젤로가 「다윗」 상을 조각할 때, 4m 넘는 거대한 카라라 대리석이 품고 있는 다윗 모습을 찾아내려고 깊게 대리석을 응시했다. 그리고 다윗 이외의 것을 정과 망치로 쪼아내며 마침내 「다윗」상을 탄생시켰다. 조각이 완성되자 조르조 바사르는 고대로부터 그리스 로마 현재까지 제작된 조각상은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시스티나 성당 천정화를 그릴 때는 꼼짝없이 며칠 동안 작업에만 몰두해서 심하게 부은 다리 때문에 장화를 벗을 수가 없었다. 장화를 당겨 벗으면 살갗이 장화에 붙어 있어 함께 떨어질 것 같아 가위로 장화를 잘랐다 한다.
‘예술가의 고통은 감상자의 희열이 된다’는 말은 예술가를 절벽 끝으로 몰아가며 가지고 있는 재능을 다 껴내 놓으라는 채찍 같다.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완벽한 모습을 보이라고 감상자는 돌 던지듯 요구한다. 작품은 얼매 속 씨앗 같아서 성숙의 아픔을 참아내야 한다.
17년 전 갤러리 두모악 문 앞에서 힘겨운 작은 소리로 그가 말했다.
“이거 드리고 싶은데요. 제가 무거워서 더 들고 있을 수가 없어요.” 긴 사진통을 들고 버틸 힘이 없어 두 팔을 떨며 서 있는 그를 보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사진통은 이미 루게릭병이 진행된 팔에서 미끄러져 내리고 있었다. 갤러리 전시 사진의 영상이 아직 남아있는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미의 극치는 슬픔이라고 했던가. 그의 시진에 젖어있는 고요한 슬픔은 작은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내 사진은 외로움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그의 말처럼, 오름 위 노을과 어우러져 홀로 있는 나무는 의연하게 침묵으로 맞선다. 강인한 초월, 그러나 그 외로움은 연약하지 않다.
‘오늘만은 평소와 다른 흥분에 휩싸였다. 안개의 색감, 새소리와 한낮의 적막감, 원시의 자연, 나의 기분은 최고로 달아올랐다.’ 다수가 한철 보는 억새를 봄부터 겨울까지 보고 산 대가일까. 병의 고통과 싸우면서도 그는 제주의 신비를 찾아 마주했다. 예술을 향한 열정과 무서운 몰입이 빚은 열매들을 보며 생각한다. 신비 속에 홀로 느끼는 황홀을 마주한 순간. 그는 기쁨에 떨었을 것이라고.
예술가로서 그를 불행하다 할 수 있을까.
사진 속 자연은 순간을 영원과 합일시키며 지금도 외롭게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