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음치에게 박수를 / 최 종

cabin1212 2020. 6. 28. 06:19

음치에게 박수를 / 최 종

 

 

 

울음소리다. 퉁겨지듯 일어나 골방을 향해 걸어간다. 앓는 소리도 아니고, 저런! 노랫소리다. 조용히 뒤돌아 마루로 나오면서 피식, 실소를 터뜨린다. 골방에 들어가 한껏 목청을 틔우고 싶었나보다.

아내는 실버합창단원이다. 내가 보기에는 영락없는 음치인데 대단한 합창단원이라도 되는 것 같다. 지금 연습하는 곡은 요들송으로 유명한 합창단이 자주 불러 좋은 반향을 일으킨 노래란다. 아내는 이 곡을 예의 울기도 하며 앓기도 하는 목소리로 부엌에서도 방안에서도 스스럼없이 부른다.

노인이 되면 정확한 음정을 내기 어렵고 음역도 좁아진다. 음색마저 변해서 옛날의 내 목소리 아닌 엉뚱한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소리가 좀 높이 올라가면 쉰 목소리가 목구멍을 긁어 파는 듯하여 듣기에도 거북하다. 원래 아내나 나나 노래를 잘 부르는 축에는 들지 못했다. 음치라는 말은 듣지 않았지만 지금은 별 수 없이 음치중 상음치가 되고 말았다.

가끔 우리는 노래방에 들러 음치가 되어버린 목소리를 확인할 때가 있다. 노래를 부르면서 스스로 들으면 쉭쉭 세월 흘러가는 소리가 진하게 묻어나왔다. 반 박자 정도 틀린 음정은 애교로 봐줄 수 있겠는데,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모든 곡이 비슷한 음정으로 계속 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그렇게 노래가 끝났을 때, 우리는 손뼉 치며 웃으면서도 눈물겹도록 짠한 마음이 깊이 고여왔다. 거기 허망한 시간이 노래방의 조명 불빛을 따라 빙빙 돌고 있었다.

당신이 하는 일을 반대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말을 꺼내자마자 아내는, “무슨 섭섭한 말씀을!” 바로 내 말에 반박했다. 자신이 몇 번을 못 나오겠다고 해도 단장이 사정하다시피 꼭 나오시라고 하소연했단다. 제법 인정받는 귀하신 몸이라는 투였다. 합창단 이야기를 할 때면, 아내는 눈빛을 번쩍이며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화음이 되기 위해서는 합창단원 모두가 약속된 음정이 나와야 한다. 한 사람이라도 다른 소리를 내면 지휘자가 바로 지적하며 혼내주는 것을 음악 영화에서 본 기억이 있다. 얼마나 지적을 당할까 싶다. 연습 중 혼자 부를 때가 있을 것이다. 아내는 진지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듣는 사람들은 기막히게 재미있다는 듯 웃음보를 터트린다면. 생각만 해도 창피한 일이다.

아내는 자신이 어느 정도 음치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음치의 심각성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어떻게 그 음정으로 청중 앞에서 입을 딱딱 벌리며 노래랍시고 부를 수 있다는 말인가. 다른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도대체 음치도 우대하는 합창단이 있다니 알 수 없는 일이다.

합창단은 성원이 되어야 하니까 한 사람이라도 붙잡아 두고 싶어서, 단장은 아내에게 꼭 나오라고 말했을 것만 같았다.

정 나가고 싶으면 당신은 합창할 때 소리는 내지 말고 입만 따라 하면 어떻겠소?”

너무 자신감 넘치게 불러 음치 본색을 드러내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한마디 해주었다. 완강한 반대는 아닌 것으로 들었는지 아내는 푸욱”, 바람 빠지는 웃음을 터뜨릴 뿐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아내는 합창 단원 중, 자기 나이가 뒤에서 세 번째라고 했다. 왕 언니는 면했으니 다행이라고 하면서, 감히 대중 앞에서 당당히 노래를 부를 용기를 가졌다는 게 스스로 대견하다는 태도였다. 일흔여섯 살 나이는 염치도 한참 두꺼워지게 하고 수줍음도 모르게 하나 보다.

아내는 합창단이 너무 좋단다. 한때는 기타를 배우겠다고 음악교실을 다녔다. 서너 달 다니면서 힘들어하더니 슬그머니 그만 두었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어학 공부에 열중했다. 거의 4년 이상을 열심히 해오더니 웬일인지 요즈음 시들해진 것 같다. 이제 무료를 달랠 방법으로는 합창단에 들어가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는 성싶다.

아내는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와 돌아올 때의 얼굴빛이 달랐다. 나갈 때는 들뜬 사람처럼 기쁨을 감추고 있는 듯 보였는데, 돌아올 때 얼굴은 어쩐지 허우룩한 빛이 역력했다. 아픈 친구들이 많더라고 하면서 그들의 얼굴에서 자신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신나는 일은 없을까. 어디 재미 붙일 딱 좋은 일거리는 없을까. 합창단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내는 몹시 밋밋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내가 합창단을 쉽게 그만두지는 않을 것 같다. 내일은 오래전부터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이라고 했었다. 그 약속도 무시하고 합창단 모임에 가겠다고 하니 내가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음치여도 좋고 소리를 겨우 낼 정도여도 좋다. 늙은 세상 살아가면서 어디에 한껏 마음을 붙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모른다. 자신을 귀히 여겨주며 반갑게 맞아주는 곳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노년의 큰 행복이 되지 않겠는가. 그래 좋다. 얼마든지 당신 말대로 크게 목청 돋우어 불러제껴 보시라. 가성과 진성을 오르내리던 골방의 요들송은 이제 알프스산맥이라도 흔들 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