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실존 / 신재기

cabin1212 2020. 6. 30. 05:50

실존 / 신재기

 

 

 

 

영화 변호인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고문 경찰관이 국밥집 아들 진우를 고문, 문초하다가 너의 사상이 뭐냐고 닦달한다. 그는 아마 공산주의자 빨갱이라는 자백을 원했을 것이다. 대학생 진우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머뭇거리자 경찰관 차동영은 진우를 폭행한다. 고통의 순간을 넘기기 위해 진우는 얼떨결에 실존주의라고 말한다. 거의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공산주의민주주의둘 중 하나여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실존주의라는 말을 하자 경찰은 화를 내면서 진우에게 더욱 가혹한 고문을 가한다. 간단하지 않은 이 말은 국가 권력의 폭력성이라는 영화 본래의 주제에서 비켜나 있지만,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철학을 벗어나서 일상에서도 실존이라는 말을 가끔 사용한다. ‘실존현실존재혹은 사실존재를 간단하게 표현한 말로서 본질존재의 반대 개념이다. 세상에 모든 존재는 그 이름에 해당하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측면을 가진다. 사람은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동물과 달리 이성을 가진 만물의 영장이란 점에서 보편적인 존재다. 하지만 개인으로 인간은 자기만의 특수한 상황에서 살아가고, 그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한 번뿐인 인생이다. 인간 존재는 고정된 명사형이 아니라 현실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사형이다. 이처럼 존재의 우연성이나 개별성이 바로 실존이다. 우리는 인간이란 보편적인 개념 안에 있으면서도 개별적인 존재자로 실존한다.

인간은 보편적인 가치와 윤리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대부분의 일상은 우연적인 현실의 연속이다. 정신적인 가치나 이념으로 살아가기 이전에 몸으로 먼저 부딪치고 반응한다.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 명제는 이런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김춘수의 시 이야기를 해보자. 그의 시 에서 모든 존재는 그것에 합당하는 이름이 붙여졌을 때 존재로서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하지만 그 후 시인 김춘수는 언어의 개념이 주는 폭력성을 인식하고 존재의 순수함을 드러내기 위해 무의미시를 실천한다. 언어의 개념보다 육체성이 존재를 순수하고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개념이 삭제된 존재의 의미는 성립 불가능한 모순이다. 이는 개념과 이데올로기의 획일성에 대한 저항이다.

인간 삶에서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작동하는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실존을 통제하고 자유를 억압한다. 영화 변호인은 국가 공권력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짓밟는지를 잘 보여준다. 일레인 글레이져 겟 리얼’(GET REAL)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데올로기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으며, 하나의 의미가 다른 것의 정반대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프로파간다처럼 이데올로기 역시 분명한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비밀스럽다. 은밀한 이데올로기는 꼬리표나 배지, 어떤 주위가 아니다. 그것은 책략, 숨겨진 의제, 환영에 관한 것이다.” 익명적이고 은밀한 이데올로기가 개인의 심리를 움직이고 종국에는 폭력적인 악마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숨은 책략이 언제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낼는지 누구도 모른다.

지금 내 앞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 즉 실존은 이데올로기나 객관적인 가치보다 앞선다. 우리는 오랫동안 정신이 늘 몸보다 위에 있고 위대하다고 들어왔다. 그렇게 교육받기도 했다. 그런데 현실에서 피부로 와 닿는 것은 주관적인 만족과 몸의 편안함이다. 주관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것을 천박하다고 매도하는 것도 일종의 이데올로기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의미 있는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가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내가 현재 이 땅 위에 발붙이고 살아있는 실존이 최소한 비인간적인 폭력에 의해 훼손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시간과 공간에서 내가 살아 있음으로써 이 세상도 존재하고 의미를 지닌다. 영화 변호인에서 공학도 진우가 고문을 받으면서 뱉은 실존주의는 실존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임을 역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