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아들집 이사 / 허정란
아들집 이사 / 허정란
이른 아침에 백운 호수의 산책길을 걷는다. 이곳은 백운산과 청계산을 둘러싸고 계곡의 맑은 물이 흘러든다. 한 무리의 잉어 때를 만난다. 세상에, 내 팔뚝보다 더 굵고 큰 녀석들이 입을 벌름거리고 있다. 유연하게 헤엄치는 모습에 활력을 얻는다.
여름이 들 무렵 아들이 직장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엄마, 아빠 함께 놀러 오세요. 대형 티브이가 들어왔으니 영화도 한 편 보시고요.”
여가를 내어 여름 한 철 쉬었다 가라고 한다. 그러잖아도 올 팔월 한 달은 시간을 잘 쪼개어 써야 할 형편이었다. 정리되지 않는 원고를 손보자니 마음이 바빠졌다. 방학이 되면 조용하고 시원한, 거창 엄마의 빈집으로 갈까 생각 중이었다. 아들의 부름을 받고 솔깃해진다. 더구나 방방이 에어컨이 있다니.
의왕시로 이사한 아들 집은 새로운 시가지라서 조용하다. 산속에 아파트 단지 하나를 뚝 떼어다 놓은 분위기다. 혼자 사는 새 아파트는 살림살이가 없어 오히려 시원시원하다. 대짜배기 텔레비전이 한쪽 벽면을 채워주며 인테리어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해외 돌직구로 들어온 티브이는 국내보다 저렴하다. 선명하고 큰 화면으로 스릴러를 제공하며 늦은 밤까지 효자 구실을 한다. 아들은 상도동의 빌라를 전세로 놓고 근무 조건이 좋은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사 후, 출퇴근 시간의 단축과 함께 여유로워진 생활은 부모의 걱정을 덜어준다.
시집온 후 사십 년 가까이 남편이 손수 지은 단독 주택에서 살았다. 시어른을 모시고 대가족으로 지냈던 세월만큼이나 집도 노후가 되어간다. 때로는 환경의 변화를 주고 싶어 이사를 생각해 보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쉽지 않다. 애착과 물욕을 끊어 버리고 홀가분하게 살라고, 내 안에 비움의 소리로 일렁인다. 가지런함으로 사방이 확 트인 흰 벽면의 정갈함이 그리운가 보다.
자리가 잡혀가는 아들의 모습에 감회가 깊다. 직장을 따라 서울 생활 십 년 차다. 대학 졸업반 때 한 학기를 앞두고 취직이 되어 서울로 떠났다. 당시 아들한테는 신경을 못 썼다. 법인회사의 대표인 남편은 경영난으로 허덕이며 급기야 큰 병을 얻어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갑자기 휘몰아친 태풍 속에서 가족 모두가 거리로 내몰리지는 않을까, 두려웠지만 유일하게 하느님을 믿고 매달리는 길밖에 도리가 없었다.
아들은 묵묵히 맏이의 역할을 했다. 남은 등록금은 알아서 학교에 대출금 신청을 했고 월급을 받으면 학자금으로 꼬박꼬박 얼마씩 보내왔다. 휴일과 쉬는 날은 반납하고 회사 일에 골몰했다. 컴퓨터 앞에서 좁아진 가슴팍은 헌칠했던 체격을 눈에 띄게 왜소해 보이게 했다.
고시촌이라는 동네를 아들을 통해서 알았다. 한 평이나 될까, 제대로 발을 뻗고 몸을 돌리기도 어려운 방이었다. 그나마 한 뼘 크기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숨통을 터 주었다. 무지하게 비싼 월세에 놀랐다. 뚜렷한 대상도 없는 누군가에게 화가 났다. ‘사람이 발이나 뻗고 잠이나 잘 수 있게 해 두고 돈이라도 받던지.’ 말로만 듣던 서울 물정을 따갑게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사 철이 되면 일 층 방을 세놓는다. 서울 고시촌에 비하면 턱없이 좋은 환경이다. 근래에 혼자 사는 할머니 한 분이 방을 계약했다. 세입자가 원하는 대로 청을 다 들어주었더니 흔쾌하게 이루어졌다. 계약 후 남편에게 좋은 일이 있다고 알리니 방을 너무 헐값으로 주었다고 한다. 전세금 천만 원과 월세 십만 원을 깎아 달래서 기분 좋게 ‘그러자고’ 계약을 했었다.
복잡한 서울은 언제나 기라성을 이룬다. 자연히 지방과 대도시의 방값은 극과 극일 수밖에 없다. 혼자 계시는 할머니에게서 친정어머니 모습이 겹쳐지고, 고시촌 좁은 바닥에서 책상 밑으로 발을 넣고 잠이 드는 아들 입장이 되는 이사 철이기만 하다.
요즘 들어 ‘꿈은 이뤄진다’라는 소망이 내 안에 다가와 신비롭다. 아들은 서울에서 몇 차례의 이사를 거쳐 호수가 있는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오래전부터 숲과 호수가 있는 산골짜기를 꿈꾸었듯이, 지금 아들이 탄탄한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자신의 능력을 펴 보일 수 있음은 아마 그 어려운 시기를 견고하게 다져놓은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십 년이라는 긴 기간은 하느님께서 남편과 우리 가족을 측은지심으로 지켜 주신 은총의 시간이라 믿는다.
아들딸이 행복하게 사는 게 부모의 꿈이기도 하다. 자식들을 통해서 꿈을 환히 지켜본다. 청년실업자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젊은이들의 꿈이 반짝반짝 빛났으면, 빌어본다.
식구들과 백운 호숫가를 나선다. 푸르른 벼가 나폴거리는 좁은 논길을 한 줄로 걸으며 오랜만에 맹꽁이 울음소리를 듣는다. 맹꽁 맹꽁 맹꽁,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