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뜰에서 삶을 캐다 / 정복언
뜰에서 삶을 캐다 / 정복언
일상이 잔잔한 물결이다. 평온하게 하루하루를 껴안는다. 코로나19로 인한 ‘집콕’ 생활이지만 따분할 겨를이 없다. 에어컨 도움으로 불볕더위를 이기며 책장을 넘기기도 하고 몇 줄 끄적이기도 한다. 정기구독과 지인들이 보내주는 문예지에 더하여 도서관에서 대출해 오는 서적들로 읽을거리는 풍성하다. 마음 당기는 글을 졸졸 따르며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공책에 적어 놓기도 한다.
그런다고 책상에 붙박이처럼 붙어 앉아 독서에만 몰입하는 건 아니다. 자주 마당을 들락거리며 머리를 식히기도 하고, 자연의 삶을 눈여겨보기도 한다. 마당의 소소한 풍경과 자그만 변화가 생기의 세포를 일깨운다. 마음에 여유를 주고 성찰의 문을 밝혀준다.
내 발걸음 소리가 스몄을 마당은 10년 전 처음 인연을 맺은 곳이다. 묵은 주택을 사고 이사하면서 집 주변의 묵정밭 같은 대지를 정리해 뜰을 만들었다. 잔디를 깔고 정원수와 화초도 심었다. 손바닥만 한 텃밭도 마련했다.
울타리 북쪽은 나지막한 곶자왈 동산과 이어져 수많은 생명체가 무시로 넘나든다. 뜰 안은 조금만 살펴보아도 다인종 대식구의 삶터임을 알 수 있다. 까치 직박구리 제비 참새들이 무시로 공중에 길을 내고 크고 작은 나비들도 날개를 달았노라고 자랑한다. 까마귀쪽나무에 몸을 숨긴 채 휘파람새가 목청을 다듬고 두꺼비가 음치인 줄 모르고 사방으로 울음을 토해낸다.
만나고 싶지 않은 지네와 뱀은 물론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노린재와 노래기, 이름 모를 벌레들도 자주 눈에 띈다. 새끼 거미들이 먹잇감을 노리며 곳곳에 거미줄을 치고, 잎말이벌레도 뒤질세라 화초 잎을 돌돌 말아 둥지를 튼다. 새들의 입질을 막으려고 비닐봉지로 싸놓은 무화과가 벌어진 곳엔 수많은 개미가 몰려들어 만찬을 즐긴다. 생명체는 생명 보전을 최우선 과제로 부여받은 존재임이 아닐까 싶다.
무성한 국화잎 사이에서 가끔 메뚜기를 만난다. 파란색의 몸통이 참 귀엽다. 살짝 건드리면 폴짝 뛰는 솜씨가 놀랍다. 때론 방아깨비를 붙잡아 옛날 아잇적으로 내달리기도 한다. 두 개의 뒷다리를 잡으면 위아래로 몸을 움직이며 방아 찧는 모습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마음을 읽지 못하고 여러 마리 구워 먹었던 어린 시절이 참회해야 할 몫으로 남았다. 애잔한 배고픔이여, 그때의 보시에 머리 숙이나니.
얼마 전에는 슬픈 진객을 만났다. 죽은 사슴벌레였다. 대부분 곤충은 징그럽다는 인식을 앞세워 다가오는데 사슴벌레는 예외적으로 귀족 중의 귀족이다. 가만히 손바닥 위로 놀려놓았지만 움직일 수 없는 껍질은 생명체의 자화상 같다. 어이 숨을 거뒀을까. 벽체 바닥을 따라 분말 살충제를 놓은 게 문제였을까.
일전에는 다시 행운을 맞았다. 이번에는 살아있는 사슴벌레였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집어 들었더니 몸부림이 제법이다. 나는 이미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고향 집의 울타리 구석엔 커다란 구실잣밤나무가 동백나무들과 이웃하고 있었다. 매미 소리가 땡볕만큼 달아오를 때면 나무 그늘에서 가끔 사슴벌레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놈의 턱을 붙잡고 벌리려 하면 그놈은 오므리며 힘자랑하는 게 아닌가. 왼손 검지를 턱 사이로 밀어 넣으면 사정없이 조인다. 때론 피가 흐르기도 해 어리석음을 깨닫던 그때 그 놀이는 어디로 흘러갔을까.
이제는 그만 놓아 달라고 여섯 발가락으로 손바닥에 까칠한 메시지를 전해 온다. 나는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자고 되뇌며 울타리 밖 동산으로 가만히 내려놓는다. 대부분 생명은 명줄 놓으면 볼품없이 사라지는데, 사슴벌레는 온전히 몇 달을 버티면서 껍데기의 귀중함을 토로한다. 생명체의 흔적, 구체화한 삶의 흔적은 지워져도 누군가의 기억에 남았으리.
요즘 정성을 쏟는 식구가 하나 있다. 동네를 산책하다 마주치는 길가의 무궁화 같은 접시꽃에 눈독을 들이다 씨앗을 두어 개 따다 심었더니 싹을 내밀었다. 두 손바닥으로 하늘을 바치는 모습이 앙증맞다. 물뿌리개로 마르지 않게 물을 주는 일는 즐겁다. 무더위로 싹이 타 버리지 않도록 우산으로 그늘을 만든다. 짓궂은 바람이 우산을 날려버려도 허허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돈이 안 되는 일에 마음을 두면 건강해진다고 했던가. 나이 들면서 행동반경은 줄어들고 나를 반겨줄 사람도 적어진다. 그러나 자연은 변함없는 정을 베푼다. 마당은 어머니의 품을 잃지 않는다. 온갖 응석을 부려도 다 받아 준다. 심고 매고 뽑는 즐거운 놀이터다. 그러면서 배운다. 생명은 경이롭고 아름답게 순환한다. 머지않아 홍시에 취하고 단풍에 가슴 탈 게다.
바람은 바람의 길을 가고, 나는 즐겁게 하루를 보내며 다시 맞을 것이다. 인생의 종점에는 나를 기다리는 선물이 있다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