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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아버지의 낮달 / 안 숙

cabin1212 2020. 11. 29. 06:10

아버지의 낮달 / 안 숙

 

 

 

낮달 바라기를 한다. 삐죽삐죽 날이 선 빌딩 사이로 손바닥만 한 하늘 조각이 보인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대모산 능선 한 뼘쯤 높이에 낮달이 떠 있다.

날빛을 잃은 낮달은 서녘 하늘에 떠 있기도 하고 동트기 전 여명에 흰무리처럼 떠 있기도 한다. 맑은 날에는 빛을 잃은 그림자처럼 힘없이 하늘에 떠 있을 테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낮달은 보고 싶을 때 아무나 볼 수 있는 달이 아니다. 시월 달개비 바람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달이지 싶다. 그리고 낮달은 그리움을 안고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달이지 싶다.

초겨울 낮달은 얼음조각처럼 시려 보인다. 하나둘씩 피어나는 그리운 얼굴 같은 조각달은 가슴에만 피어난다. 여덟아홉 살 때 보았던 낮달은 꽃상여가 떠나던 날 거푸 하늘에 떠 있었다. 낮달은 외로운 시인의 누군가에게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 달이라 했던가. 외로운 누군가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은 볼 수 없는 달이지 싶다.

늦은 봄이었다. 옆집에서 곡성이 터졌다.

"아이고아이고."

울음소리가 한낮의 공기를 찢을 듯 팽팽했다. 며칠 뒤 하얀 소복을 한 그녀는 마당을 나서는 꽃상여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 몸부림쳤다. 바닥을 쓸고 있는 흰 치맛자락에 피눈물이 얼룩졌다. 꽃 같은 아내와 막 돌 지난 아들 하나를 남겨 두고 옆집 오빠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그렇게 떠났다.

나는 어른들 뒤에 숨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었던 것 같다. 서럽고 무서웠던 꽃상여, 아버지가 떠났을 때보다 여덟 살에 처음 보았던 그날의 꽃상여와 낮달이 더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마당에 한낮 불볕이 쏟아지는 오후였다. 지붕 위로 무명 저고리가 올라가고 무어라 외치고, 생살을 에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뒤뜰에서 놀던 소꿉을 팽개치고 안방으로 달려갔다. 모기장 쳐 놓은 요 위에 아버지가 반듯이 누워 계셨다. 가족이 울부짖는 소리에 감았던 눈을 겨우 떠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한 사람 한 사람 돌려보다 내 얼굴에서 잠이 멈추더니 젖은 눈을 힘없이 감으셨다. 그리고 다시는 눈을 뜨지 않으셨다.

그날도 하늘엔 낮달이 떠 있었다. 왜 사람이 숨을 거두는 날은 낮달이 뜰까. 어린 나를 슬프게 하였다. 그날 후 슬플 때 낮달은 눈물을 담아 놓는 그릇같이 보였다. 그리고 낮달은 영혼이 살고 있는 집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아버지는 기이하게 생긴 닭 볏,, 새 깃털. 용꼬리 장식을 한 꽃상여를 타고 햇볕이 강렬한 유월에 떠나셨다. 우리 가슴에 오뉴월 서리 멍울을 남기고 동네를 한 바퀴 휘돌아 떠나가셨다.

아버지는 소년 시절 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날품을 팔아가며 야간중학교를 다니셨다고 한다. 빛을 잃고 하늘을 배회하는 낮달처럼 한이 많은 삶을 사셨던 것 같다. 누구를 향한 원망인지, 내가 죽으면 저놈들 다 잡아갈 거라 하시며, 문병 오는 사람들이 보기 싫어 돌아누우셨다. 다른 집안은 넝쿨에 오이 열리듯 자손이 번성했다. 종손인 우리 집은 할아버지 때부터 자손이 귀했다. 아버지는 내 남동생을 잃은 슬픔이 지병으로 깊어져 마흔을 겨우 넘기셨다. 술을 많이 드셨고, 슬픈 노래를 부르며 벗은 상의로 길바닥을 쓸며 집으로 돌아오시곤 하였다고 한다. 돌 전 외아들을 하늘나라 보내고 어린것을 외롭게 혼자 둘 수 없어 서둘러 뒤따라 가셨던 것일까. 낮달은 언제나 나를 서럽게 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아득하다. 어떤 이유든 자식을 남겨 두고 먼저 떠나시다니. 그렇게 잊으려고 애쓰며 살아온 시간이 얼마던가. 그 원망도 빛이 사위어질 만큼 낮달이 흘러간다.

어느 시인의 <낮에 핀 달>처럼 서편에 낮달이 떠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하늘에 낮달이 떠 있다

 

아버지, 당신의 하늘에도 낮달이 피나요? 그리움이 하나둘씩 지워진 낮달에 이제 아버지는 계시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종일 하늘바라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