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일체유심조 / 박경대

cabin1212 2020. 12. 4. 05:48

일체유심조 / 박경대

 

 

 

신호등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잠시 정차한 동안에도 잡다한 생각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언제부터인지 내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뭔지 모를 짜증스러움 때문이다. 괜히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 본다. 도로 양쪽으로 서 있는 화려한 건물들이 괜스레 나를 주눅 들게 한다. 여태껏 살면서 왜 저런 건물도 하나 가지질 못했나 하는 허무한 생각에 씁쓰레한 웃음만 나왔다.

며칠 동안 종잡을 수 없는 날씨까지 우울함을 보태고 있다. 하늘의 뜻과 인간의 행동들이 더해져 나타나는 현상이라 도리는 없다. 그래도 하루 걸러 비 오고 이틀 걸러 눈 오는 게 짜증이 난다. 오늘은 흙먼지로 온통 누런 세상이 되어 버렸다. 서너 달 만에 큰마음 먹고 차를 닦아 놓았더니 오후에 흙비가 내렸다. 날씨처럼 나의 영혼에도 칙칙한 가루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지방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이 재테크에 소질 없는 아버지를 믿고 봉급을 보내온다. 그 덕에 난생처음으로 펀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주가의 등락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차 컴퓨터에 접속하다 보니 딴 일은 할 수 없다.

여유 없는 사람이 증권을 하면 심장병 걸린다.’ 는 누군가의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닌 것 같았다. 다소 덜 위험하다는 적립식 펀드도 이런 마음인데 직접 투자하는 증권은 오죽하랴. 오 년여 동안 넣었지만, 적금보다 수익은 적다. 가끔 통화하는 아들이 돈의 안부를 물어오면 잘 키우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나 자신이 없다. 증시 때문인지 주변에서의 일들조차 성에 차지 않아 마음이 무겁다. 하긴 쇠로 만든 기계도 고장이 나는데 사람의 기본이 늘 좋을 수가 있으랴.

며칠 전, 이웃에 있는 표구점 주인과 차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스님 한 분이 표구하고 싶다면 작품을 가지고 오셨다. 작품은 두 점이었다. 한 장은 큰 붓으로 단번에 쓴 듯 필체에 힘이 느껴지는 자였다. 화선지에 간격과 중심을 잡기 위하여 접은 흔적은 보였지만 아주 깔끔하였다. 다른 작품은 일체유심조였는데, 그 글은 내가 늘 가슴속에 간직하던 원효대사의 글이라 무척 반가웠다.

당나라로 유학을 하러 가던 중 동굴에서 해골에 담긴 썩은 빗물을 마시고 크게 깨우치신 대사께서 모든 것은 마음의 지배를 받는다.’며 하신 말씀이 일체유심조이다.

운전 중에 라디오에서 법정 스님의 입적 소식이 들려왔다. 긴 세월 사찰을 드나들었지만 한 번도 뵌 적이 없었다. 그러나 존경하는 분의 입적 소식에 가슴이 조여 왔다. 이승에서도 가진 것이 별로 없었던 스님은 모든 것을 버리고 가셨다.

모든 것을 버려야 다 얻을 수 있다.” 선문답 같은 스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마음을 비우면 너무 편하다. 또한 풍요로워진다. 그 경지가 모두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리라.

사찰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 한다. 걱정을 없애는 곳이라는 뜻이다. 화장실에 가는 것으로 걱정거리가 없어질 만큼 마음을 비우고 살아가라는 것일까. 인연으로 만났던 대부분 스님은 목욕을 하고 나면 탐심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셨다. 화장실과 목욕으로 욕심 없는 대만족이라는 그 수련의 깊이는 어느 정도일까. ‘무소유의 실천이 가정을 가진 우리 같은 범부들도 가능할까. 그저 남의 소유를 탐내지 않는 정도면 나름 괜찮을 것이리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며칠간 나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헤집고 다닌 실체가 드러난 것 같다. 그것은 우중충한 날씨도 황사도 아닌 내 마음속의 욕심이었다. 펀드를 해약하고 적금으로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 순간,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 나름이다.’ 라는 말을 실감하였다.

스님! 극락왕생하시고 다음 생에는 인연 닿아 꼭 한번 만나 뵉고 싶습니다.

내일쯤엔 맑은 봄비가 한번 내리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