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겨울을 나며 / 정복언

cabin1212 2021. 1. 25. 06:26

겨울을 나며 / 정복언

 

 

 

싸늘한 바람이 마당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빠져나간다. 한 잎도 남기지 않고 떠나보낸 낙엽수들이 깨금발로 코앞의 입춘을 바라보고 있다. 삭막한 풍경이 마음에 스며들어 몽롱한 영혼을 깨운다.

겨울은 사계의 종착역이다. 인생의 저녁놀이다. 나이 들수록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남은 시간을 헤아리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냥 가끔 던지는 질문만으로도 휘어지는 삶을 곧추세운다.

여린 햇살에도 감사하며 생의 절정에 이른 나무들이 있다. 흰 장수매 분재가 꽃을 피워 새해를 축하더니, 설중매도 하얀 웃음으로 설날을 기다린다. 흙덩이를 밀치고 세상으로 솟아오른 수선화도 몽우리를 재촉하고, 후레지아도 뒤질세라 푸른 잎새들을 촘촘하게 밀어 올린다. 비파나무는 가지마다 뭉텅이로 피어난 꽃이 어울리더니 열매를 풍성히 잉태했다. 북풍한설도 마다치 않고 영그는 만삭의 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비운 듯 채우고 채운 듯 비워내는 자연의 조화는 또 어떻고.

겨울처럼 결핍과 허기로 포만하고 싶다. 허공의 여백을 푸르게 색칠하고 봄을 맞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