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신발 한 켤레 / 고태현
신발 한 켤레 / 고태현
며칠 전 후배 L과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안부를 묻던 중에 아프리카 오지로 떠난 후배의 사촌 누나인 수녀님의 소식을 물었더니, 구랍(舊臘)에 돌아가셨단다.
몇 년 전 공항에서 무거운 배낭을 지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짐이 있는 걸 보니 어디 멀리 가시는가 봐요?”
“멀리 가지, 임지(任地)인 아프리카 오지(奧地)로 가는 길이야.”
연배로 치면 쉴 때가 가까운데 먼 길을 떠나신다는 말에 낯선 타국에서 병이라도 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아니, 왜요? 젊은 수도자들도 많은 데 나이 드신 수녀님께서 그 멀고 힘든 곳으로 가야해요?”
“그곳에도 하느님이 계시고, 그분이 그곳으로 부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기쁘게 떠나고 있어. 나는 괜찮아,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잖아. 기꺼이 부름에 따르고 싶어. 나중에 만나면 맛있는 밥 사드릴게.”
힘들어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오늘에 집중하며 순명(順命)의 길을 걷고 있는 수도자의 모습은 평온하기만 했다.
눈길이 그녀의 신발에 멈췄다. 헝겊 신발이 심하게 낡아서 이역만리(異域萬里)로 떠나는 사람의 신발로는 여정(旅程) 중에 찢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될 정도로 부실했다. 신발 한 켤레를 사드리고 싶은데 공항에는 신발가게가 없었다. 신발 구할 돈이라도 드리고 싶은데 하필이면 수중(手中)에는 카드들만 있고 신발값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는 잔돈푼만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말하고는 현금인출기를 찾아 다녀오는 동안 그녀는 벌써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못내 서운한 마음이었다.
1980년대 후반, 봉사활동을 위해 소록도에 갔던 나는 그곳에서 수십 년을 묵묵히 나병(癩病) 환자들을 돌보던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수녀님을 뵌 적이 있다.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헌신적인 모습을 보았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고 계셨다. 두 수녀님들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한글까지 깨친 ‘한국 할머니’였다. 사람들은 그들을 ‘할매’라고 불렀다. 그들은 그들의 선행이 밖으로 알려지는 것을 극구 꺼렸다. 나이가 든 두 수녀님들은 거의 평생이라 할 44년 동안 헌신하다가 늙어서 이웃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2005년 홀연히 고국으로 돌아갔다. 떠나기 하루 전, 병원 측에 이별을 통보했다. ‘사랑하는 은인들에게’란 편지 한 장 남기고, 낡은 여행가방 하나만 들고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다.
몰로카이 섬에서 나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돌보다 감염되어 돌아가신 다미안 사제, 남을 대신해서 굶어 죽는 길을 택한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 이들은 버리고 비우고 베풀면서 정작 세상사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고 보여줬던 분들이다. 왜 신산(辛酸)한 고난의 길을 자원하며 가는가. 이들의 행위는 사해동포(四海同胞)를 사랑하는 인류애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의인(義人) 열 사람이 없었던 소돔과 고모라는 결국 불지옥이 되었다. 드러나지 않는 선량한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와 선행으로 오늘의 내가 신(神)의 벌을 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평화와 사랑을 향한 열망은 보답을 바라지 않는 무한의 선행이 되어 신(神)의 자비를 이끌어 내고 있지 싶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사회는 지탱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한 사람들의 감추어진 희생과 노고에 터 잡아 세상은 멸망하지 않고 있을 터이다. 참담한 곤경 속에도 생명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섭리는 숨어 있다. 사막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음은 맑은 샘물이 있어서 그렇듯,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밤하늘을 여전히 밝히고 지키고 있는 별빛처럼, 우리 사는 세상 어딘가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들의 선함과 곡진한 정성이 세상을 정화(淨化)하고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직도 미망(迷妄)에 흔들리며 해매고 있는 나는, 지니고 있는 쓸데없는 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지금 머무는 이 세상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남겨야 할까.
훗날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그녀가 속한 수도회로 봉사자 지원 요청이 왔는데, 너무 멀리 떨어진 오지이고 생활하기가 불편한 곳이라서 지원자가 아무도 없자 스스로 지원했다는 것이다.
철없던 시절, 신앙생활을 이끌어 주었고, 늘 나를 위해 기도해주던 그녀였다. 늘 푸근하고 고마웠던, 말이 없고 속정 깊은 누님이었다. 내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만나면 손을 잡아주며 늘 기도하고 있다며 다독거려주었다. 나는 편하거나 바쁜 날들에는 잊고 살다가, 힘들고 괴로운 날에만 수녀님 생각이 났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잊지 않았을 것이다.
한두 해에 한번 나오는 짧은 휴가 때에도 작업복을 입고는 농사일을 거들며 휴가 기간을 보내고 떠나던 그녀다. 온화한 미소와 겸손하면서도 열정적인 믿음, 조용한 기도생활, 진정한 사랑과 헌신은 일상의 묵묵한 충실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녀는 가난한 집에서 성장하여, 홀어머니를 두고 수도자 서원(誓願)을 했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그녀는 장례 때 내가 나서서 도와줬던 일들을 두고두고 고마워했다. 슬퍼하는 나를 애써 위로했다.
“우리 어머니, 무남독녀인 나만을 의지하며 살았는데, 내가 돌보아드리지 못해서 죄송했어.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면 엄마 곁에 머물며 오래오래 같이 지낼 거야. 그래서 웃으며 보내드리려 하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네.”
마음으로 보고 영혼으로 감응하는 것으로 우린 함께 할 수 있다.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넉넉한 사랑과 신뢰가 있다면 한 하늘 아래 함께 숨 쉬며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그녀는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사랑했던 그곳으로, 인간다운 품위를 지니고 고향으로 돌아가듯이 평온하고 담담하게 갔으리라. 봄여름이 가고 서늘한 가을이 오고 다시 겨울이 오듯이, 나에게도 언젠가는 가을이, 그리고 죽음이 찾아올 것이다. 훗날 영원의 땅에서 꼭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잠시 머물다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는 세상, 아낄 것 없이 모두 베풀어주고 저 세상으로 가길 원했던 수녀님, 저 세상으로 떠나신 날은 절망의 끝가지에 새 소망이 꽃피는 날이자, 그토록 그리웠던 사람들 만나고, 그토록 힘겨웠던 세상의 짐을 벗는 날은 아니었을까. 이 밤 어느 하늘에 별이 되어 나를 내려다보며 미소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 소풍 마치고 웃으며 떠났으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밀려드는 슬픔은 어쩔 수 없다.
그때 마련해주지 못했던 신발 한 켤레가 못내 마음에 걸려 슬프다.
‘수녀님, 죄송합니다. 훗날 다시 만나는 날, 신발 한 켤레 꼭 선물해드리고 싶습니다.’